다음 날, 부리나케 서점으로 달려가서 학습법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000 공부법』 『0000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 『자기주도학습이 0000 만든다』가 있었고 세 권 모두를 샀다. 세 권의 책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기주도학습을 강조하고 있었다. 배우는 것과 실력 향상과는 인과관계가 없으니까 배우는 데 힘쓰기보다 익히는 데 힘써야 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많이 배우고 잘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배운다고 많이 알게 되는 것 아니고 실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라고 쓰여있었다. 잠을 충분히 자야만 공부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세 권 모두 강조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였고, 또 재수생과 중고등학생들을 12년 동안 가르쳤으면서도 조금도 생각지 못하였던 이야기였다. 먼저 『자기주도학습이 0000 만든다』를 읽어나갔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눈물이 났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에서 오는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자신이 학원 원장이었음을 확인한 눈물이었고, 초등학생 아들딸을 가진 아빠로서의 눈물이었다. 학원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았다. 서른여덟 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오라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농사일? 못할 것 같다. 공장? 몸도 마음도 힘들 것 같은데. 장사? 자신이 없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있긴 있었다. 교사. 그런데 가능성이 희박했다. 서른여덟 살 아닌가? 만 40세까지 가능하긴 하지만 기회가 주어질 뿐 실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겠는가?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더 읽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책을 계속 읽는 일은 나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장 넘기는 일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3 배수 법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업 한 시간을 받으면 세 시간을 복습해야 실력이 된다고도 했다. 옳았다. 이렇게 쉽고 단순한 법칙을 왜 몰랐단 말인가? 왜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단 말인가? 에빙하우스라는 사람이 말한 망각곡선에 대한 설명에도 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복습하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기억해 낼 수 없다는 이야기에 박수를 보냈다. 반복해야 하니까, 반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학원 수업을 들으면 반복하여 익힐 시간을 가질 수 없으니까 사교육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였다. 배움도 중요하지만 익힘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 익히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고, 익힐 시간 확보를 위해 사교육을 해서는 안 되고…… 읽어갈수록 괴로움은 켜져 갔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갈수록 고통은 깊어만 갔다. 감성은 책을 불태워버리라 하였지만, 이성은 책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도 몰래 튕겨 나오는 ‘아하!’라는 감탄사를 조용히 씹어 삼켰다. 그러나 씹어 삼킨다고 해서 삼켜지는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확인했다. 인성교육은 차치하고 지식 전달자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하였던 나 자신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공부하는 방법도 알지 못한 채 참고서에 나와 있는 지식을 앵무새처럼 전달했을 뿐이고, 문제집에 나와 있는 정답 골라내는 방법을 스킬이라면서 전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동안 목소릴 높여서 가르친 3천 명 넘는 재수생과 고등학생 중에 ‘선생님께서 잘 가르쳐주셔서 성적이 올랐습니다.’라고 말한 학생이 열 명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님께서 격려해 주셔서…’ ‘선생님께서 잘 이끌어주셔서…’라고 말한 학생은 그래도 해마다 열 명 이상씩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 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던 나는 나쁜 선생이었다. 가르쳐주는 것에 만족했을 뿐 아이들에게 배움이 일어났느냐에는 관심 가지지 못했던 나는 자격 없었던 선생이었다.
학생에게 지문의 내용을 설명해 주고 분석해 준 다음, 문제 풀이에 필요한 사항들을 설명한다. 문제의 정답이 무엇이냐고 묻고 왜 정답이 ①번 아니라 ③번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학생에게는 처음이지만 나는 이미 여러 번 보았던 지문과 문제이기에 책을 보지 않고도 지문 내용을 설명해 줄 수 있고 문제 풀이 방법도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학생은 충분히 알지 못하였는데 선생인 나는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아이들의 생각은 멈춰 버린다. 공부는 어려운 일이 되고 재미없는 일이 되고 만다. 알겠느냐고 묻기는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만 하면 안다고 대답해 버린다. 나도 아이들이 알았으리라 착각한다. 나는 열심히 가르쳤음에도 아이들의 실력은 향상되지 못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