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늦게 온 깨달음, 학원 문을 닫다(3)

by 권승호

과외를 마치면서 매번 부탁하긴 했다. 반드시 문제를 풀어놓으라고. 그런데 학생은 매번 풀어놓지 않았다. 왜 풀어놓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시간이 없어요’였다. 그랬다. 몸은 하나였고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이었다. 국어 과외를 하는 학생 대부분은 영어 수학 과외까지 했다. 거의 매일 2시간씩. 거기에 수행 평가까지, 학교 숙제까지. 문제를 풀어놓는 일은 시간상 불가능했다. 야단칠 수 없었던 이유였다.

학생이 문제를 풀어놓지 않았다면 선생은 어떻게 해야 옳은가? 그 자리에서 풀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 여덟 번에 50만 원이면 한 번에 6만 원이 넘는 돈. 6만 원 넘는 돈을 받았는데 학생이 공부하는 모습을 구경만 하다가 돌아올 수는 없지 않은가? 무제 푸는 것만 쳐다보다가 돌아가는 선생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과외하는 시간에 부모님은 대부분 거실에서 대기한다. 문틈에 귀를 대고 엿듣지 않아도 아이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선생은 가능한 쉼 없이, 열심히, 그리고 많이 가르쳐 주어야 한다. 많은 돈을 받는 만큼 학생에게 많이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도 학생도 학부모도 많이 배우면 많이 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많이 가르치고 열심히 가르치면 그에 비례하여 실력이 향상되리라 착각했다. 많이 배우게 되면 익힐 시간이 부족하고, 익히지 못하게 되면 배운 것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배우는 일보다 익히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과외받는 일, 학원 다니는 일이 오히려 공부를 방해한다는 진실을 알지 못하였다.

정답을 움켜쥐었지만 움켜쥔 정답을 불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교실로 향하는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진지함을 숨기고 가볍게 물어보았다. 학원에 오기 전의 성적과 학원에 온 이후의 성적에 차이가 있냐고? 학원 다닌 후에 성적이 올랐냐고? 잘 모르겠다는 대답과 그대로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올랐다고 대답한 학생은 평소 공부를 전혀 하지 않다가 학원에 나오게 된 혁진이뿐이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말한 학생은 영익이와 동수였다. 둘 다 성실하고 실력도 좋은 학생이었다. 영익이는 그동안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하다가 불안한 마음에 우리 학원에 왔고, 동수는 반에서 3등 안에 들었던 학생이었다.

민지가 미웠다. 진리를 깨닫게 만든 민지가 없었다면 고민도 없었을 것이고 즐겁게 강의하고 경영하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 터인데 민지가 이 모든 것을 박살 내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아내의 눈물이 보였고 떴던 눈을 다시 감으면 아들딸의 흐느낌 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매주 화요일에 갖는 교사 회의 시간. 원장인 나는 선생님들에게 그동안 많이 고민했노라 말한 후, 지금까지의 강의식 수업을 버리고 자율학습 중심으로 학원을 운영하겠노라 이야기하였다. 눈동자가 커진 선생님들은 나와 동료 선생님들을 보면서 무슨 날벼락이냐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했다. 잠시 후, 그동안 학원 경영 방침에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이번에는 한결같이 ‘아니요’를 외쳤다. 한 달도 되지 않아 학원생이 전부 빠져나갈 것이라 이야기하였다. 예상된 반응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배우지 않고 자율학습만 한다면 학원 아니라 독서실 아닌가? 배우지 않으려면 학원에 다닐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어떤 학부모가 자율학습만 시키는 학원에 15만 원씩이나 지출하고 싶겠느냐고도 했다. 영어 선생님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라고 울먹이면서 부탁하기까지 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설득할 그 무슨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더 고민해 보자는 이야기로 교사 회의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에 몇몇 선생님들이 원장실로 찾아와, 석 달 정도 현행 체제를 유지하면서 고민한 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건의하였다. 3개월 후에도 원장님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그때는 원장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내 뜻을 굽히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운 삶은 지금까지로 충분했다. 더 이상 아이들의 시간과 학부모님들의 돈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단단해져 갔다.

목요일, 선생님들에게,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테니까 5분 정도 시간을 주시라 부탁하였다. 선생님들은 원장님께서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라고 부탁하였지만 나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가서 아이들 앞에 섰다.

“내가 지난주에 너희들 중 몇 명에게 물었었지? 우리 학원에 온 후로 성적이 올랐느냐고? 올랐다는 아이가 서너 명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오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떨어졌다는 아이들도 있었지……”

말을 멈췄다. 목이 메고 눈물이 났다. 농담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10분 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아이들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친구들을 쳐다보다가 하면서 어리둥절해하였다.

“너희들 지금 우리 학원에 놀러 온 것 아니잖아. 성적 올리려고 왔잖아. 지금까지는 오르지 않았을지라도 앞으로는 오를 거라 기대하고 있잖아. 계속 열심히 학원 다니면 성적 올라갈 거라 믿고 있잖아.”

원장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학원에 계속 다니면 오를 것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원장님 생각에는 앞으로도 오르지 않을 것, 거의 확실하다. 배운다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니거든. 학교에서도 배웠지만 모르는 것 많잖아. 학원도 마찬가지야. 우리 학원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학원 모두 마찬가지지.”

몇몇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인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너희들은 공부를, 배우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공부는 배우는 것이 아니야.”

아이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눈을 크게 떴다. 침을 삼켰다.

“공부를 학습이라고 하는 것 알지? ‘배울 학(學)’에 ‘익힐 습(習)’을 쓴단다. 배우고 익히는 일이 학습이고 공부인 거야. 배움보다 익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배우기만 해서는 성적을 올릴 수 없고 반드시 익혀야만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거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희들은, 아니 우리 대한민국 학생들은 배우기만 할 뿐 익히지는 않아. 성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지.”

“그러면 원장님! 학원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래.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지.”

“네! 뭐라고요?”

몇몇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몇몇 아이들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변화 없이는 발전도 없는 거란다. 그러니까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 되는 거야.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절대 성적을 올릴 수 없어.”

대다수 아이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학원 열심히 다니게 되면 성적이 오를 것이라 큰소리쳤던 원장님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한 시간 배웠다면 최소 2시간은 익혀야 해. 익히지 않으면 배운 것은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지. 점수가 나오지 않는 것은 잘 배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습 복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거야.”

대여섯 명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겠다는 표정으로 바뀌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음 주부터 우리 학원은 자율학습을 주로 하고, 학생들이 질문하면 선생님이 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할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렇게 해야 성적이 오르는 거라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아이들의 표정은 ‘그게 아닌데’ ‘우리 원장님 미치셨나 봐’ ‘다른 학원 알아보아야겠네’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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