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학원을 시작할 때의 상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학원을 시작하면서 결정해야 할 문제가 많았지만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수강료를 얼마로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폭리를 취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학생들을 많이 모집해야겠다는 생각만은 분명했다. 학원 수강료와 학원생 모집과는 상관관계가 깊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편견이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혀있음을 자주 확인하였다. 수강료를 저렴하게 받으면 실력 없는 학원으로 인식되어 학원생이 오지 않지만, 수강료를 많이 받으면 좋은 학원, 실력 있는 선생님이 많은 학원으로 인식되어 학원생들이 많이 모여든다는 헛웃음 나오는 진실이 나를 갈등하도록 만든 것이다. 주변 학원들의 수강료는 대부분 중학생 국·영·수 종합반이 12만 원이었다. 한 과목만 받으면 5만 원이었고.
똑같이 12만 원을 받는다면 아이들이 우리 학원으로 옮겨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18만 원을 받게 되면 더 많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15만 원으로 확정하였다. 원장인 나만 경력이 있었을 뿐 나머지 선생님은 경력이 없거나 1년 이하의 경력뿐이었다. 시설 또한 다른 학원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수강료 15만 원은 신의 한 수였다. 다른 학원은 12만 원인데 우리 학원은 15만 원이라 하니까 학부모들은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진리라 믿고, 비싸면 뭔가 다를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학원보다 비싼 수강료 덕분(?)에 기대보다 많은 학생이 몰려왔고, 첫 달부터 쉽게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다. 최소 3개월, 길게는 1년 동안 적자라는 일반적인 법칙을 깨뜨려버린 것이다. 실제로 왜 우리 학원을 선택하였느냐는 질문에 다른 학원보다 비싸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원장인 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잘 파악해 버렸고 학생 학부모는 나의 교묘함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고등부는 다른 학원에서 과목당 6만 원을 받았는데 우리 학원은 10만 원을 받았다. 부모들은 의심 없이 비싼 수강료를 건네주면서 미소 지으셨다.
어떤 선생님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근무했던 학원이 ‘소수정예반’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 반 정원을 6명으로 하는 반을 모집하였다고 했다. 보통반 수강료가 4만 원인데 소수정예반은 8만 원으로 정하였단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발생하였다. 보통반은 3명, 소수정예반은 6명이 모인 것이다. 수업 시간도 같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같았음에도.
학부모님은 이해해 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학부모님께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한 다음에 협조를 구하고 싶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20명 정도 오시리라 예상했는데 서른한 분의 학부모님이 학원에 와 주셨다. 아이들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었을 것임에도 학부모님들의 표정은 심란함이나 슬픔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학원 아니어도 아이들이 갈 학원은 많이 있으니 원장님 뜻대로 하여도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읽혔다.
성적을 올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세상일이 그런 것처럼 성적 올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동안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치면 아이들의 성적이 오를 거라 기대하였노라 말한 후, 열심히 가르친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게 아님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열심히 가르치는 것과 아이들 성적 향상은 정비례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반비례 관계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고백까지 하였다.
아이들에게 말한 것과 같이 공부는 학습이고 학습은 배우고 익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한 다음에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배움만 중요하게 생각할 뿐 익힘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학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배울 학(學)’ ‘물을 문(問)’이라 말한 다음에 질문하는 일, 의문 품는 일이 공부에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배우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익히는 일과 질문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 주부터 앞으로 우리 학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익히는 시간을 많이 주고 질문을 받고 질문에 답해주는 방식으로 가겠다고 밝혔다. 이해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해되지 않으시고 걱정도 되시겠지만 3개월만 지켜봐 주시라고 간절하게 부탁하였다.
“그러면 다음 월요일부터는 수업은 안 해주시고 자율학습만 하도록 한다는 이야기인가요?”
현태 어머니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 공격적인 말투였다.
“네. 그렇습니다. 자율학습이 실력을 키우기 때문이지요.”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가르쳐달라고 학원 보내는 것이지 자습하라고 학원 보내는 것은 아니잖아요. 자습하려면 집에서 하지 뭐 하러 비싼 돈 주면서 학원에 보내요? 그리고 저는 자율학습만 시키는 학원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어요. 혹시 원장님, 대한민국에 방금 원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수업은 하지 않고 자율학습만 시키고 질문만 받는 학원이 있긴 있나요?”
당황스럽지 않았고 화나지도 않았다. 예견된 반응이자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당연한 걱정이고 반론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잘 배우고 많이 배우면 실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가르쳤고 다른 선생님에게 열심히 가르쳐달라 부탁하였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잘못된 방법임을 며칠 전에 깨달았습니다. 생각이 바뀐 것이지요. 학습법에 관한 책을 읽고 또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리고 학생들의 성적 변화를 분석해 본 결과,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잘 배우고 많이 배운다고 해서 성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공부는 학생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고 공부는 책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지요.”
진지하게 듣고는 있었지만, 이미 어느 학원을 보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으리라는 생각까지 들자 맥이 풀리고 말았다.
“3개월만 믿고 기다려 주신다면 그 믿음과 기다림에 성적으로 보답해 드릴 자신 있습니다.”
라고 힘주어 이야기했지만 싸늘한 학부모님의 표정은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말았다. 작은 희망의 싹까지 시들어버린 것이다. 후회가 밀려왔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쌌다. 그래도 해주어야 하는 말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선생님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동안 나를 믿고 아이들을 보내주었던 학부모님을 위해서.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힘을 냈다.
“조금 전에 공부는 학문이라 했고 학문은 ‘배울 학(學)’에 ‘물을 문(問)’이라 했습니다. 질문하는 일과 의문 품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스스로 공부하도록 도와주고, 의문 품고 질문하도록 하고 선생님들은 질문에 답해주면 아이들의 성적은 엄청나게 올라갈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것보다 자율학습하고, 고민하고, 탐구하고, 질문하고,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내는 방법으로 공부하면 성적은 반드시 오를 거라 확신합니다.”
학원생의 숫자가 하루 서너 명씩 네댓 명씩 줄었고 3개월 후 학원 문을 닫아야만 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았다. 아내와 아들딸에게 미안했을 뿐. 임용고시를 위해 도서관을 찾았고 교사 모집공고를 만나기 위해 신문과 인터넷을 꼼꼼히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