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부도 모르고 공부하는 학생들(2)

by 권승호

“미국 아이들은 그래도 토론을 많이 하니까 나름대로 생각하기가 생활화되어 있어요. 토론에 참여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생각하기를 귀찮아하지 않지요. 그리고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서 수학을 공부한다고 하는데, 사고력은 수학으로만 기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놀이를 통해서도 기를 수 있고, 여행을 통해서도 기를 수 있잖아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이고요. 소설, 수필, 시 등의 문학작품이나 철학 역사학 심리학 논리학이 사고력 기르기에 더 좋은 것 아닌가요?”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리고 한국 아이들 공부하는 것 보니까 생각 없이 그냥 베끼기만 하던데요 뭘. 사고력 기르는 게 아니라 숙제 검사받기 위한 숙제만 하는 것 같더라고요. 글쎄.”

“맞아. 학교 현장에서 보면 정말 안타까워. 선생님의 강의 열심히 듣는 학생보다 졸거나 자는 학생이 더 많지.”

“그런데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왜 수학에 목을 매는 거지요?”

“나도 그 부분이 이해되지 않아. 정말로.”

“……”

“가짜 뉴스 때문 아닐까? 수학이 대학입시를 결정한다는 가짜 뉴스. 수학 공부 못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가짜 뉴스. 그리고 맹목적인 남 따라 하기.”

“수학 공부 못해도 다른 과목 잘하면 웬만한 대학은 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좋은 대학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에 가서 공부 잘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똑똑하다는 사람들조차 왜 교육 문제에서는 그렇게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변별력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요?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구별해야 하는데 다른 과목에서는 차이가 크게 나지 않으니까 수학을 잣대로 이용한다고 하더라고요. 학생들만 불쌍하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웃기는 소리야. 국어도 영어도 탐구도 수학처럼 1등급, 2등급, 8등급 9등급 있는데. 수학도 다른 과목처럼 100명 중 4명만 1등급이고 말이야. 그리고 수학 점수 낮아도 다른 과목 잘하면 충분히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수학이 7, 8등급일지라도 다른 과목 모두 1등급이라면 웬만한 대학 입학 어렵지 않은데…… ”

“그러니까요. 수학에 목을 매는 게 이해되지 않아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목표가 웬만한 대학이 아니니까 그런 것 같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의 목표는 모두 서울의 명문 대학이니까.”

“명문 대학 입학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긴 하지만요……”

“나도 아니라 생각하는데…… 아니라고 큰소리치고 싶은데…… ”

“……”

“……”

환자들이 무표정한 얼굴, 지친 얼굴, 힘없는 눈동자, 심각한 얼굴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저들에게 물어보면 수학도 아니고 공부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건강이라고 대답할 것이 분명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간의 헛된 욕망과 어리석음에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

“그런데 선배님! 한국 진짜 많이 좋아졌더구먼요. 도서관이 동네마다 세워졌고 시설도 너무 훌륭해요, 체육시설도 여기저기에 많이 생겼고 공원도 잘 꾸며놓았고……”

“그래. 근래에 도서관이 많이 생겼고 시설도 좋게 잘 만들어 놓았지.”

“금암도서관 가보셨어요? 정말 대단하던데요.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대단한 시설이더라고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도서관 이용객 중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거의 없다는 거예요.”

“우리 학교 학생들 도서관에 가는 것 같던데……”

“예. 있긴 있어요. 그런데, 시험 기간에만 많이 와요. 그리고 도서관에 와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영어 수학을 공부해요. 시험 기간뿐 아니라 평소에도.”

“그래. 안타깝지. 아이들은 도서관이 아닌 학원에 가고, 부모들은 아이들 학원비 때문에 늦게까지 일터에 남아 있지. 도서관에 가서도 대학입시 공부를 하고……”

어이없다는 웃음인지, 웃기는 상황이라는 웃음인지 아무튼 유쾌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미소가 후배 얼굴에 번져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이들이 엄청 바빠요. 놀 시간이 없을 정도로. 글쎄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다니까. 그러니 어떻게 도서관에 갈 수 있겠어? 시간이 없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도 명절날 아니면 볼 수 없다고 하는데.”

“명절에도 못 보는 경우가 있대요, 공부 때문에. 특히 추석은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는 경우가 있어 상당수가 할머니 댁에 가는 게 아니라 학원이나 스터디카페에 간대요.”

“일부의 이야기니까 일반화시켜서는 안 될 것 같긴 한데…… 진짜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든 못하는 학생이든 학생들은 바쁘긴 바빠. 실력도 쌓지 못하면서 엄청 바쁘지. 학원에 가야 하니까. 인강 들어야 하니까. 어른들보다 더 바쁘고 어른들보다 더 힘들게 생활하지. 걱정 없이 놀아야 마땅한 나이에 말이야. 불행한 일이고 안타깝기 그지없지.”

“선배님! 우리 때에도 책 많이 읽지 않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보다 더더욱 책을 읽지 않은 것 같아요. 좋은 책은 옛날보다 훨씬 많은데.”

“그래, 우리 때에는 책이 없어서 못 읽고 노느라 못 읽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 가서 영어 수학 공부해야 하기에 책도 읽지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있어.”

“그래요. 맞아요. 너나없이 독서를 강조하긴 하지만 정작 책 읽지 않은 나라가 한국이에요. 독서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독서할 시간은 주지 않는 나라, 영어 수학에 목숨 거느라 책 읽지 못하는 나라, 영어 수학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바쁜 나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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