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부도 모르고 공부하는 학생들(3)

by 권승호

“내 나라이긴 하지만 웃기는 나라, 대한민국이지. 아이들이 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나라, 아이들이 바빠서 허둥대는 나라, 놀 시간,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없는 나라. 행복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고통을 위한 교육인 나라, 친구를 이기기 위해 공부하는 나라.”

“맞아요. 아이들이 불쌍하리만치 바쁘더군요. 초등학생들도 이 학원 저 학원 오고 가느라 정신없더라고요. 배운다고 알게 되는 것 아닌데도 배우면 알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 배우기만 하면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도 문제야. 명문 대학에 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도 문제고, 공부 잘하면 남 이길 수 있다는 생각, 공부 못하면 패배자라는 생각도 문제지.”

“……”

“배운다고 아는 게 아니잖아. 익힘이 있어야, 그것도 반복해서 익혀야만 알게 되는 것이지. 그런데도 현명하지 못한 엄마들은 배우기만 하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생각해요. 익힘의 중요성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이게 2023년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야.”

“그래요, 한국 교육에 문제가 많은데 가장 큰 문제의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이야기하는 내내 이름을 생각해 내려 무진 애를 썼으나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진료실 앞 전광판에 어머니 이름이 있었고 그 두 번째 앞에 ‘김수현’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음을 발견했다. 그랬다. 김수현이었다. 이름을 기억해 내자 다른 후배들의 이름을 꺼내면서 혹시 연락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사부님께서는 뭐 하셔?”라고 물으니

“△△대학교 ○○학과 교수예요.”

“아하, 그렇구나. 맞아 그때 박사과정 사람이랑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네.”

“그런데 우리 남편 이야기로는 한국 대학생들 실력이 형편없다고 하던데요. 우리 때만 해도 △△대학교 입학이 쉽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갈 수 있어서 그런가요?”

“누구나 가다니, 무슨 소리! △△대 입학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우리 때보다 쉬운 거 아닌가요?”

“그런가? 하기야 ‘인 (in) 서울’이 대세이니까 우리 때보다는 쉽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네. 우수한 아이들은 모두 서울로 가니까 말이야. 옛날에는 우수한 아이들도 가정 형편 때문에 지방 국립대에 갔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서울, 서울, 서울이야. 서울대학교가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교, 심지어 경기도에 있는 대학교, 우리 때에는 시시했던 서울의 대학들도 지금은 서울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학하기 힘든, 가려고 발버둥 치는 대학이 되었다니까.”

“우리 때에는 서울대 연·고대 아니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실력이 되더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그냥 고향의 국립대학에 간 경우 많았잖아요?”

“그랬지. 연·고대 갈 실력이 있음에도 국립대 진학한 친구들 있었어.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이놈의 ‘인 (in) 서울’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회문제가 된 것만은 분명해.”

“저도 얼마 전에 ‘인 (in) 서울’이란 말을 듣고 많이 놀랐어요. 그런데 요즈음 한국의 대학생들…… 한심하다고 하던데요?”

모르는 바 아니었고, 공감하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은 마음에 되물었다.

“어떤 면에서?”

“글쎄, 강의 시간에 강의는 듣지 않고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고등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했는지 기초 지식도 부족하고, 실험 하나 제대로 못 한대요. 가르쳐주기만 기다릴 뿐 능동적으로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대요.”

“어른의 눈으로 보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 초등학교 때에는 운동장이 매우 커 보였는데 어른이 되면 작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야.”

나 역시 크게 공감하였지만, 미국 생활을 한 사람의 눈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비치는지가 궁금하여 다른 사람들이 반박하는 것을 흉내 내어 물어보았다.

“그것을 참작하더라도 아니래요. 무엇보다 정신적 독립이 일어나지 않았대요. 미국 학생들하고 다르대요. 능동적으로 하려 하기보다는 누구에게 의지하려 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꼭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려 하고, 남들이 어떻게 하나 눈치 보면서 따라 하려고만 한데요, 글쎄.”

“맞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스스로 해보지 않아서, 스스로 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럴 거야.”

“아니 글쎄, 대학생이면서 자기 생각도 없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도 부족하고, 뭔가 해보려는 의지도 부족하고, 용기도 배짱도 없대요.”

“공부만 강요했기 때문이야. 스스로 하도록 하지 않고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기도 할 거야. 도와주는 것이 도와주는 게 아니고 오히려 바보 만드는 일인데, 부모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어. 아무튼, 우리나라는 엄마들이 문제야, 문제. 아이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니까. 아이들 처지에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서만 생각하는 부모들의 잘못이 가장 커. 자기만족을 위해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면 아이가 바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엄마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파.”

“……”

“……”

씁쓸하게 웃고 있는데 간호사가 ‘김수현’이라는 이름을 불렀다. 후배가 손을 흔든 후 진료실로 들어가자 아내가 다가왔다.

“진짜로 요즘 우리나라 엄마들 문제가 많아요. 자기들은 자식을 위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식 망치는 지름길인데……. 자기 위안이고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요.”

“공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고 대학입시에 목숨 거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비싼 과외를 시키고 잘 가르친다는 학원에 보내고 인기가 많은 선생을 만나게 해 주어야만 공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더 큰 문제야. 정말로 빨리 바로잡아야 할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문제지…….”

“여보, 우리는 진짜 잘한 거야, 학원 한 번 안 보내고 이렇게…….”

“나도 나지만 사실 당신이 정말 대단해. 엄마들 대부분이 극성인데 당신은 극성스럽지 않아서. 현명한 당신이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중심을 잘 잡아주었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당신이 다른 엄마들처럼 극성이었다면…… 어리석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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