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됩니다. 의무로 몇 강좌 이상을 선택하라 강요하는 것, 저는 반대입니다. 아이들이 보충수업 싫어한다는 사실, 보충수업이 아이들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아시잖아요. 게다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이들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강제로 보충수업을 하도록 합니까? 자율학습이 보충수업보다 실력 향상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 대부분 압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보충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 아시잖아요? 보충수업 받기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보충수업 받도록 하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자율학습 원하는 아이들에게 자율학습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시간을 빼앗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강제로 보충수업 받도록 하는 것, 저는 절대 반대합니다.”
“……”
“진심은…… 보충수업 받겠다는 학생에게도 자기주도학습을 권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흥분하지 않으려 했지만 못난 성격은 또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또 흥분하였고, 그래서 목소리가 커졌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평소 의견 내기 좋아하지 않는 나였음에도 작심하고 의견을 낸 것이다.
보충수업 하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보충수업 수강을 강제하는 일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은 진즉부터 했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대다수 선생님이 하고 있었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뿐 아니라 시내 모든 학교가 하고 있기에 ‘아닌데’라는 내 생각을 뭉갤 수밖에 없었다. ‘하기 싫으면 김 선생님이나 하지 말 것이지 왜 보충수업 자체를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에요?’ ‘선생님들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세요?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아이들 공부시키는 것은 교사들의 책무 아닌가요?’라는 반론을 이겨낼 힘도 논리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혼자서 겁먹었다고 생각하며 ‘잘했어’라며 나 자신을 칭찬하려는 순간에 정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온종일 수업받도록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온종일 자습만 한다는 것에도 문제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율학습만 하다 보면 많이 자잖아요? 억지로라도 공부시키는 것이 교사의 의무 아닐까요? 세 시간이나 네 시간 정도 보충수업 받도록 하는 것은 옳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는 다짐은 순간, 또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인정합니다. 자율학습 시간에 자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인정합니다. 딴짓하는 아이들도 있지요. 그러면 보충수업 시간에는 모두 열심히 공부하던가요? 제 수업도 그렇지만 다른 선생님의 수업도 많이 졸고, 생각 없이 앉아 있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그러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은 공부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는 보충수업을 받는 것보다 자율 학습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는 도움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
반론을 기다렸지만 어떤 선생님도 말하지 않았다.
“나아가 방학 때 학교에 나오지 않겠다는 아이들을 강제로 등교시켜서도 안 됩니다. 고3이니까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설득하는 것은 괜찮지만, 강제로 출석시켜 시간을 낭비토록 하고 고통만 주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보충수업 하기를 바라고 자녀를 강제로라도 보충수업 시켜주기를 원하잖아요?”
수업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에 수업을 끝내는 경우가 한 번도 없다고 소문난 박선생이었다. 박선생의 수업에 대한 열정을 알기에, 또 박선생이 이렇게 이하기할 줄 예상하였기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러한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 인정합니다. 하지만 한두 분 학부모님 의견을 전체 학부모님의 의견으로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우리 반 학부모 중에는 보충수업 하지 않고 자율학습만 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도 계셨어요. 그러면 어떤 학부모님 의견을 들어야 합니까? ……만약 보충수업 해주기를 바라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그 부모님의 아이만 시키면 되잖아요. 보충수업이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보충수업을 강요하는 것은 죄짓는 일 아닌가요? 아무튼, 보충수업을 하겠다는 아이를 하지 말라고 강요해선 안 되는 것처럼, 하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해야 한다고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모든 아이를 의무로 몇 강좌 이상 들으라 강요하지 말고 1, 2, 3, 4, 5, 6, 7교시 보충수업 몽땅 듣고 싶다면 몽땅 듣도록 하고, 듣고 싶지 않으면 한 시간도 듣지 않고 자율학습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학교에 나오지 않겠다는 아이들은 학교에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요. 방학이잖아요, 방학. ‘놓을 방(放)’ ‘배울 학(學)’으로 배우는 일을 잠깐 놓자는 방학이잖아요.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면 좋겠습니다.”
목소리는 차분해져 있었다. 감정은 가라앉았고, 톤은 낮아졌으며, 떨림도 사라졌다. 시간이 약이라는 생각, 노력하면 나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 말에 공감해서였는지, 아니면 연장자인 나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함이었는지 더 이상의 의견 교환이 없는 상태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학년 부장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다른 학교와 비교하지 말고 다른 학년과도 비교하지 맙시다. 1, 2학년은 의무로 몇 강좌씩은 듣도록 설득하기도 하는가 보던데 우리는 3학년이고 또 상당수 아이가 자율학습을 원하고 있으니 희망하는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도록 하지요. 저도 보충수업 하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강제로 보충수업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미소 지을 수만은 없었다. 동료 선생님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고 선생님들의 열정을 빼앗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6년 전까지는 나도 보충수업을 했었다. 방과 후에도 했었고 방학 때에도 했었다. 남들은 선생은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고 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 선생인 나는 보충수업을 하느라 방학이라 할지라도 열흘 이상 쉰 적이 별로 없었다. 4교시가 끝나면 식당으로 가는 것처럼, 방학이 되면 보충수업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다른 학교도 하고 있고 다른 선생님들도 하고 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집에 빨리 가면 놀게 되니까 보충수업이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방학에도 집에 있으면 놀게 되니까 공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소리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과외나 학원과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수강료였다. 보충수업 강의료는 학원 강의료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보충수업은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에게 엄청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큰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