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연쩍은 모습을 애써 감추며 자책하고 있는데 어머님 한 분께서 미소 지으면서 들어오셨다. 얼핏 비춰주는 미소에서 병석이의 미소를 발견하였기에, 또 반드시 참석하겠노라고 문자를 보내주신 어머님 중 한 분이 병석이 어머니셨기에
“혹시 병석이 어머님 맞는가요?”
라고 말하자, 놀라는 표정과 함께 알아봐 주어 고맙다는 듯 고개 끄덕이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병석이가 여태까지 학원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어머님께서 자리에 앉으시기도 전에 공격적인 말을 쏘아붙이고서는 또 후회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믿고 이렇게 학부모님들께 큰소리치고 있는 거지? 완장 채워주니 기고만장한다더니, 감투 쓰면 사람이 변한다더니……. 요새 ‘갑질’ ‘갑질’하던데 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 되어버렸구나. 그러나 진환이 어머니에게처럼 쏘아놓은 화살이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병석이 어머님은 좋은 사람인 것을 확인시켜 주려는 것처럼 계속 싱글벙글하셨다.
“수학만 보내고 있어요. 문과도 아니고 이과라서…… 워낙 공부할 분량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 할 분량은 많고 시간은 없고…….”
“시간이 왜 없어요? 공부 잘하는 애들은 모두 혼자서 잘만 하는데…… 학원에 다니니까 시간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 병석이는 능력이 부족해서…….”
“능력이 부족하다니요? 병석이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면 다른 아이들은……. 병석이는 부족한 아이가 아니잖아요? 아니 능력 있는 학생이잖아요? 성적이 말해주잖아요. 혼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아이잖아요. 믿고 기다려 주시면 누구보다 잘할 아이가 병석이라고요. 혼자서 할 수 있도록 기회 주시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병석이 어머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데 혼자서 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은 아이를 바보 만드는 일이에요. 어머님 마음 편하겠다고 아들의 능력을 빼앗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는 사이에 두 분의 학부모님들이 함께 들어오셨다. 정훈이 어머니, 주현이 어머니라고 하셨다. 미리 준비해 둔 최정례 시인의 ‘빵집이 다섯 개 있는 동네’라는 시가 인쇄된 종이를 드리면서 감상해 보시라고 하고 있을 때 동주 어머니와 승혁이 어머니께서 교실로 들어오셨고, 재혁이 어머님은 아버님과 함께 교실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오셨다.
병석이 어머니에게 해석을 부탁하였더니 잠시 뜸을 들이신 후에, 본질을 망각해 버리고 부수적인 것, 그러니까 중요하지 않은 것에 얽매인 우리들의 삶에 대해 비판하는 시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잘 이해하셨다고 말하고서 정훈이 어머님께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물었더니 미소 지으면서 같은 생각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신은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어리석은 판단과 선택을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 아니지요. 이 시는, A 빵집의 빵이 다른 빵집의 빵보다 맛있고 신선하고 값도 적당하다는 이유로 그 빵집에 가서 빵을 사는 것이 아니라, 쿠폰이나 간판이나 전통이나 친절에 현혹되어 빵집을 택하는 어리석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영리하고 현명한 선택을 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인 거지요.”
모두 시를 다시 한번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성적이 오른다는 확실한 사실을 확인하고서, 또는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과외비를 환급해 주겠다는 확인서를 받고서 과외시키거나 학원 보낸다면 이해가 가겠지만, 남들이 보낸다는 이유로, 아이가 집에서는 공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문 대학에 입학한 아이가 학원에 다녔다는 홍보에 현혹되어, 많이 배우면 많이 알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부모로서 뭔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원에 보낸다면 문제 아닌가요? 다른 학생들이 가니까, 학원버스가 데려갔다가 데려다주니까, 학원 선생님들이 친절하니까 학원에 보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 아닌가요?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해보지도 않고서, 그 학원에 다닌 아이들 성적이 올랐는지 오르지 않았는지 확인해보지도 않고, 성적이 오른 아이가 몇 퍼센트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학원에 다니게 되면 공부를 잘하게 되리라는 희망과 기대만으로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후회할 일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