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르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들딸이 두어 번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는데, 가르쳐주는 대신, 아빠가 지은 책에 다 나와 있으니까 아빠가 지은 책을 잘 보고 연구하라고 하였답니다.”
“…….”
“귀찮아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사랑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따님, 지금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입니다. 혼자서 생각하고 익혔기에 수학 교수님이 된 거지요.”
“……”
“저 역시, 국어 선생이지만 아들딸에게 국어 가르쳐 준 적 거의 없습니다. 차 타고 가는 도중에 아들딸의 몇 가지 질문에 답해주기는 하였습니다만 책상 앞에 앉아 가르쳐 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물어왔을 때, 아빠에게 배워서 알려하지 말고 책을 보면서 생각하면 확실하게 많이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였더니 이 이후로는 묻지 않고 책과 씨름하더군요.”
“…….”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 아시지요? 그런데, 요즘의 아이들, 뭔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도 아시나요?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고 누구의 잘못일까요? 아이들의 잘못 아니라 부모님들의 잘못입니다. 오직 공부만을 외친 부모님들의 잘못이고 무조건 학원으로 내몰아버린 엄마 아빠들의 잘못이며 아이들 스스로 뭔가를 해볼 기회를 주지 않은 부모님들의 잘못입니다. 쥐면 깨질까 불면 날아갈까 노심초사하신 부모님들의 불신이 낳은 결과이지요. 공부가 중요치 않냐고요? 중요하지요.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공부 잘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공부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를 강요하니까 공부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공부가 즐겁지 않은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데 어떻게 즐거울 수 있고 어떻게 잘할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준다면서 오히려 공부를 방해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반론이나 질문이 나오면 그 반론이나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었는데. 학부모님들은 반론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다만, 표정으로 공감을 나타내주어 그나마 힘을 낼 수 있었다.
“혹시, 청소하려고 했는데 청소하라는 이야기 듣고서 화가 나서 빗자루 던져버리신 적 없으신가요? 저는 여러 번 있었는데 (웃음) 물론 어렸을 때죠. 지금은 아니고요. (웃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지요? 스스로 하려고 했는데 누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마음, 명령을 받게 되면 짜증 나는 마음.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잘하던 짓도 멍석 깔아 주면 못한다는 속담도 이런 인간의 마음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아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학원에 열심히 다니는 아이들보다 좋은 결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같은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다는 전제에서지요. 우리 학교 졸업생 중 대학입시에서 뿐 아니라 대학에서, 또 취업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대부분 아이는 고등학교 때에 사교육을 받지 않았던 아이들이었어요. 사교육 많이 받은 아이들 대부분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어요.”
“선생님이 몰라서 그러시는데, 공부 잘하는 아이들치고 학원 안 다니거나 과외받지 않은 아이들은 정말 없어요.”
병석이 어머님이셨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상당히 도전적인 말투였다. 학부모님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진실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병석이 어머님 말씀대로 학원 다니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데 학원 다니는 모든 아이가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지요. 학원 다니는데 공부 못하는 아이도 엄청 많아요, 학원 다니지 않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많지요, 학원 열심히 다니는데 공부 못하는 아이는 어떻게 설명하고 학원 다니지 않는데 공부 잘하는 아이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