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말이야, 선생이 시켜주는 게 아니라 학생이 해야 하는 거란다. 강의를 들음으로써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진짜 공부는 자기가 책으로 해야 하는 거야. 꼼꼼히 읽고 많이 생각하고 반복해야만 잘할 수 있지. 공부 잘하는 대부분 아이는 사교육을 거부한단다. 예습 복습할 시간도 없는데 사교육 받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그때 민국이가 큰 소리로
“예, 알았습니다, 선생님. 사교육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공부를 방해한다는 사실,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사교육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진심이 느껴졌기에 기분이 좋아졌고 힘도 생겨났다.
“열 번도 더 넘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사고력(思考力)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사고력은 ‘생각 사(思)’ ‘생각할 고(考)’ ‘힘 력(力)’의 사고력은 생각하는 힘이라는 의미인데, 이 사고력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키워줄 수 없고 오직 자신만 키울 수 있다.”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찾아와서 교과서를 손에 들었지만, 곧바로 다시 놓아버렸다. 교과서에 있는 지식이야 혼자서도 깨우칠 수 있지만 공부 방법은 혼자서는 깨우치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여유를 부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칠판에 ‘學而不思則罔’이라고 큼지막하게 적었다.
“무슨 학이지?”
“배울 학이요.”
“무슨 이?”
“말 이을 이요.”
“그 다음은?”
“아니 불, 생각 사. 곧 즉.”
“그래. 아니 불, 생각 사. 곧 즉, 맞다.”
“마지막 글자는?”
“……”
겸연쩍어하는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자 아이들도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이 문장에서는 ‘없을 망’으로 하자.”
“없을 망.”
해석해 볼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였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배운다, 그러나 생각하지 아니한즉, 남는 것이 없다.”
“배우는 일과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런 해석도 괜찮지만, 많이 배운다고 해도 생각하지 않으면 쌓이는 지식이 없다는 뜻이다. 생각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지.”
아이들은 떠듬떠듬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진즉부터 여러 번 강조하였지만, 생각하는 일은 대학입시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배우기만 강요할 뿐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학창 시절에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못하니, 나중에 어떻게 생각하는 힘을 가질 수 있겠니? 학교에서 수학 문제 푸는 방법이나 영어 문법이나 해석 방법만을 가르칠 게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하는데……. 그래서 간곡하게 부탁한다. 너희들만이라도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을 깨닫고 생각하는 연습을 많이 하여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라고.”
“선생님! 제 아들딸에게는 생각하기의 중요성을 꼭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사고력이 죽어가고 있음이 안타까워. 배우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른들 때문에, 컴퓨터 때문에, 스마트폰 때문에, 인터넷 게임 때문에.”
“선생님! 내비게이션도요.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 옛날에는 내비게이션 없어도 길을 잘 찾아갔는데, 요즘은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을 찾지 못한대요.”
“선생님, 우리 엄마는요, 옛날에 전화번호 200개 이상을 외웠었는데 지금은 열 개도 못 외운대요. 전자기기가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대요. 생각하는 힘도 빼앗아 가고 기억하는 힘도 빼앗아 갔대요.”
“맞다, 맞아. 준성이 말도, 대희 말도 다 맞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 말씀이 옳고, 저 역시 사고력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말이 쉽지, 사고력을 가르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 아닌가요?”
“그렇지, 학원에 가는 것이 훨씬 쉽지. 학원에 가서 그냥 앉아 있는 일이 가장 쉽고 편하지. 부모님들도 자녀를 학원에 보내놓고 ‘나는 있는 돈 없는 돈 몽땅 들여서 너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라고 변명하고 방어하고 야단치면서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하는 일이 훨씬 쉬운 일이고…….”
“선생님, 생각하는 일은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어요.”
“선생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처음만 어렵다는 사실이다. 여자 손을 잡는 것도 말이야,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너무너무 쉬운 것처럼. 연애해 본 친구는 알 거야. 종원아, 맞지?”
종원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몇몇 아이들은 키득거렸다.
“시동 걸리지 않은 자동차를 중립에 놓고 밀 때 처음 움직이도록 하는 게 어렵지, 일단 움직이도록 해놓기만 하면 다음부터는 큰 힘 들이지 않고도 굴러갈 수 있어. 처음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꾸준히 하게 되면 쉽고 재미있어지는 거란다.”
시계를 보았다. 수업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4분 전이었다. 부리나케 분필을 쥐었다. 그리고
수업 = ☺
예습 + 수업 = ☺☺☺
수업 + 복습 = ☺☺☺
예습 + 수업 + 복습 = ☺☺☺☺☺☺☺
라고 적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예습과 복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잖아요.”
“그래. 맞다. 예습과 복습을 해야만 많이 웃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수업만으로는 하나를 얻을 수 있을 뿐이지만 예습하고 수업받고 복습하게 되면 일곱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선생님! 예습 복습이 중요하다는 것 알고, 또 예습도 하고 복습도 하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하면 어떻게 해요?”
“시간이 없다고? 왜 시간이 없을까?”
“……”
“학원 가고, 인강 듣기 때문이잖아?”
“네. 맞아요. 학원에 가야 하고 인강 들어야 하기에 시간이 없어요.”
“그러면 답은 나왔네. 학원에 가지 않으면 되고 인강 듣지 않으면 되겠네.”
“학원 가지 않고 인강 듣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지잖아요.”
“뭐라고! 그런 엉터리 말, 어디에서 들었니? 누가 그런 엉터리 말을 하니? 그리고 너는 왜 그런 엉터리 말, 웃기는 말을 진리라 믿는 거니?”
“……”
“학원 다니지 않고 인강 듣지 않는다고 성적이 떨어지는 거 아냐. 오히려 반대지. 학원 다니고 인강 들으니까 성적 떨어지는 거야. 예습 복습을 하지 않으면 공부 잘할 수 없다고 했지?. 그리고 예습 복습을 못 하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잖아. 예습 복습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학원 다니지 말아야 하고 인강 듣지 말아야 하는 거야.”
조용했다.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가 어떤 말이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게도 침묵을 두려워하는 영철이가 입을 열었다.
“사교육 하지 않으면 시간이 있을 것이고, 시간이 있으니까 예습하고 복습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면 성적이 올라갈 것이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래. 바로 그거야.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을 영철이가 정확하게 해 주었구나. 고맙다 영철아!”
영철이는 히죽히죽 웃었고 대다수 아이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실천으로 이어질지 의심이 갔지만 일단 마음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에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