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학만! 앞으로.”
나는 특유의 저음으로 무게를 잡으며 학만이를 불렀고, 잠이 덜 깬 학만이는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교단 앞으로 나왔다.
“어젯밤 몇 시에 잔 거야, 도대체?”
“12시요.”
짜증 섞인 말투가 분명하였지만 잠자다 일어난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 또 선생인 나에 대한 짜증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짜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니야, 네 눈은 3시에 잤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그런데 네 입은 왜 12시라고 말하지? 야단치지 않을 테니까 사실대로 이야기해 봐! 진짜로는 몇 시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감정을 죽이고 미소 지으며 최대한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였을까
“1시요.”
여전히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야단치려고 묻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안타까워서 확인하려고 묻는 거니까 사실대로 말해줄 수 있겠니? 학만아! 진짜로는 몇 시에 잤어?”
나의 엷은 미소에서 혼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귀찮아서인지
“2시 좀 넘어서요.”
“그렇지? 12시에 잤는데 이렇게 심하게 잠이 올 리 없지. 그래, 11시부터 2시까지 뭘 했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
“11시 반까지 학원에서 공부했고요, 12시에 집에 와서 이것저것 먹고, 텔레비전 좀 보고, 스마트폰 하다가 2시 조금 넘어서 잤어요.”
미움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크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랬구나. 얼마나 잠이 올까…….”
“선생님, 죄송합니다. 오늘부터는 빨리 잘게요.”
“그래, 거듭 이야기하지만 12시 이전, 가능하면 11시 이전에 잤으면 좋겠다. 세상에 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귀신은 이길 수 있어도 잠은 이길 수 없는 거야.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라고 했어. 오늘부터 빨리 잔다고 약속할 수 있다면 자리로 들어가도 된다.”
학만이를 자리로 돌려보낸 나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학만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문제이니까 잘 들어주면 좋겠다. 텔레비전 보고 스마트폰 하면서 놀다가 2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잘못이 더 크긴 하지만, 설령 2시까지 공부하다가 잤다고 하더라도 잘못이다. 자야만 할 시간에 자지 않았기 때문이지. 밤에 한두 시간 더 공부해서 얻은 이익만 생각하고 다음 날 5시간, 6시간 동안 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낭비해 버리는 건 어리석음이란다. 사람은 7시간 정도 자야만 제대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지.”
“선생님, 나폴레옹은 하루 4시간만 잤어도 작전 수행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올바른 지도력과 판단력으로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제 친구 중에 공부 엄청나게 잘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4시간이나 5시간 정도만 잔다고 하였어요…….”
민성이였다. 나의 말에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한 마음에서,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질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몇 명의 아이들은 나의 말이 틀렸음을 지적하는 질문으로 생각해서인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의 반응을 살폈다.
“인정한다. 나폴레옹도, 민성이의 친구도 4시간 정도 잠을 잤지만, 생활에 지장이 없었다는 것 인정한다. 선천적으로 적게 자고도 활동하는 데 무리가 없는 사람들이 있단다. 이들을 ‘쇼트 슬리퍼 (short sleeper)’라 하는데, 수면량이 적어도 에너지 넘치고, 활동적이며 낙천적인 사람들을 일컫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전 세계 인구 가운데 1~3%만 이런 DNA를 타고난다고 하더구나. 키 크고 얼굴이 잘생긴 사람이 1~3%인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돼. 부러운 DNA지. 자신이 ‘쇼트 슬리퍼 (short sleeper)’에 들어갈 확률보다는 들어가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 알지? 키 작은 DNA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작은 키를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100명 중 98명은 7시간 자야만 하는 걸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키 키우려 노력하는 게 어리석음인 것처럼 7시간 이하로 자려고 노력하는 것도 어리석음이니까.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하루 7시간 이상 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희들이 보통 사람이라는 전제에서 하는 이야기야. 4시간을 자고서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4시간만 자도 괜찮아. 그런 사람이 굳이 7시간 자야 할 이유는 없지.”
고맙게도 대부분 아이는 고개 끄덕여주었다. 맨 앞자리에서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던 성호가
“선생님, 그런데 밤에 공부가 더 잘되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말투가 약간 거슬렸으나 말투를 문제 삼다가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가라앉혔다.
“수면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 ‘아침형 인간’이 있고 ‘저녁형 인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공부나 작업을 밤늦게 할 때 더 높은 효율을 얻는 사람을 저녁형 인간이라고 하겠지. 그런데 선생님은 아침형 인간 따로 있고 저녁형 인간 따로 있다는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설령 동의한다 해도 학생들이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너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시험인데, 그 시험이 모두 낮에, 그것도 대부분 오전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지? 습관이라는 것은 아주 무서운 것이어서 아침 7시에 밥을 먹는 사람은 7시가 되면 배고프지만, 아침밥을 먹지 않은 사람은 오전 내내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거란다. 마찬가지로 밤 12시에 잠자는 사람은 밤 12시가 되면 잠이 오고, 새벽 2시에 자는 사람은 2시가 되어야 잠이 오지. 문제는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공부가 잘되는 사람은 새벽 2시 이후에 잠을 자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다음 날 오전에는, 아니 오전뿐 아니라 어쩌면 오후까지도 머리가 맑지 못할 수밖에 없어. 시험 치르는 시간에 잠이 오고 머리가 맑지 못하는데 어떻게 시험을 잘 치를 수 있겠니?”
고개 끄덕여주는 아이들이 많아 기분이 좋았는데 민혁이가 머리를 긁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