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학원 그만두고 성적 엄청나게 올랐어요(1)

by 권승호

새 학년 첫 시간.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으로 첫 수업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을 아이들에게 알려준 적이 없다. 내 이름 대신 ‘공부’ 두 글자를 큼지막하게 적었다.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 이유는 귀찮아서가 아니고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도 아니다.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다.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리를 전달해주고 싶어서다.

4월 첫 시간,

“이정철! 선생님 이름이 뭐지?”

“네. 김승혁 선생님입니다.”

“어떻게 알았지? 가르쳐 준 적 없는데”

“……”

“선생님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선생님 이름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준 적 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선생님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더구나. 배우지 않았음에도.”

“……”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향해

“선생님 이름, 어떻게 알게 되었지?”

“시간표 보고 알았어요.”

“선배님이 알려주었어요.”

“친구에게 물어서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질문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대답해 주었다.

“사람들은 배워야만 알 수 있다고 생각해.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생각하지.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잘못된 생각이란다.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엄청 많으니까. 선생님의 이름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너희들 모두가 선생님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처럼, 공부 역시, 배우지 않아도 너희들 스스로 알아낼 수 있어.”

“……”

“선생님이 선생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 또 오늘 이상한 질문을 한 이유는 배워야만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

“지식을 쌓는 방법에 배우는 방법이 있긴 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란다. 경험을 통해 쌓을 수도 있고, 혼자 연구하여 쌓을 수도 있으며, 책을 읽으므로 쌓을 수도 있지. 그중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은 책을 읽는 방법이다. 책을 통한 지식 쌓음이 선생님에게 배우는 지식 쌓음보다 훨씬 확실하게 알 수 있고 시간도 적게 들일 수 있다. 효율이 높다는 이야기지. 선생님에게 배우려 하기보다 책으로 공부하라는 이야기야. 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고, 영어 수학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아. 책 속에 모든 지식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생각하면서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연구해 나가면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단다.”

칠판에 써 놓은 ‘공부’를 정성 들여 쳐다보며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적막의 시간 30초가 지난 다음 아이들을 향해 돌아섰다.

“공부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출석부를 펼쳤다.

“강상윤, 공부가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겠니?”

1초도 지나지 않아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겠습니다”

2번 고영만도, 3번 권영수도 4번 구상열도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흔들었다. 엉터리 답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모르겠습니다’만 외쳤다.

“공부를 한자로 쓸 줄 아는 사람?”

모두 쭈뼛거리고 있는데 네댓 명의 아이가 동시에 한 아이를 쳐다보았다. 주용이였다. 주용이에게 나오라고 하지 자신 없는 표정으로 칠판 앞으로 나와서 ‘公父’라고 썼다. 틀렸다고 하자. 침묵이 시작되었다. 기다려보기로 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려왔다. 경원이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좋아’를 외치자 칠판 앞으로 나와 ‘工父’라고 썼다. 아니라고 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리로 들어가고 정훈이가 나와서 ‘共父’라 썼다. 시간이 상당히 지나갔음을 확인한 나는 칠판에 ‘工夫’라 썼다. 맨 앞자리에 앉은 성훈이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감탄사의 주인공에게 ‘무슨 공’ ‘무슨 부’냐고 물으니 ‘장인 공’ ‘지아비 부’라고 대답했다. ‘장인’이 뭐고 ‘지아비’는 또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머뭇거렸다. 아는 사람 말해보라 했더니 종필이가 장인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고 지아비는 남편이라고 대답하였다.

“잘했어. 그러면 공부는 무슨 의미일까?”

“……”

잠시 후, 준수가

“선생님! 공부가 진짜로 한자어입니까? 우리말 아니고요?”

라고 물었다. 몇몇 아이들이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인 공’ ‘지아비 부’인 것 맞지만, 공부에서의 ‘공’은 ‘만들 공(工)’이고 ‘부’는 ‘대장부 부(夫)’라고 이해해야 옳다. 그래서 ‘대장부를 만드는 일’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거지.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옛날에는 대장부였지만 남녀평등인 오늘날에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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