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학원 그만두고 성적 엄청나게 올랐어요(3)

by 권승호

가슴이 울컥했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가는 아이들이 고마웠고, 사교육은 성적 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과 자기주도학습을 하여야만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가도록 유도하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그래. 너희들 시험 많이 치러보았지? 30점 만점의 1차 고사의 서답형 시험 문제에서 어떤 학생이 25점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만약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시험을 치렀다면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

“수업은 받았지만, 시험공부는 하지 않았다면 아마 10점도 못 받을 것 같아요.”

“시험공부 안 하면 5점 받기도 어려운 일 아닌가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성적을 결정하는 것은 배움이 아니라 익힘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

“사교육 받을 시간에 스스로 익혀야만 공부 잘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래. 잘 이해하였구나.”

진도를 나갈까 생각하여 책을 펼치려는데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라는 말이 생각났다. ‘지식을 주는 것보다 지식 얻는 방법 알려주는 일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라고 중얼거리면서 칠판에 讀書百遍義自見이라고 큼지막하게 적었다.

“자! 따라서 읽어보자. 독서백편의자현”

아이들은 작은 소리로 ‘독서백편의자현’을 따라 했고, 나는 다시 한번 따라 읽어보자면서 크게 소리 질렀다. 독서백편의자현. 고맙게도 아이들은 합창이나 하듯이 큰소리로 독서백편의자현을 외쳐주었다. 그런 다음 교편으로 ‘讀’을 가리키면서 ‘읽을 독’이라 외치니 아이들도 ‘읽을 독’이라 외쳤고, ‘書’를 가리키면서 ‘글 서’라 외치니 합창이나 하듯이 ‘글 서’라고 외쳐주었다. ‘일백 백’이라 하니 ‘일백 백’이라 외쳤다. 잠깐 멈추었다가 약간 자신 없는 소리로 ‘번 편’이라 하니 아이들도 작은 목소리로 ‘번 편’이라 따라 해 주었다.

“보통은 ‘두루 편’이라 하는데 여기에서는 한 번, 두 번, 세 번 할 때의 ‘번’이라는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번 편’이라 이야기한 거야. 다시 한번 따라 해 보자. ‘번 편’”

아이들은 다시 큰 소리로 ‘번 편’이라 따라 했다. ‘뜻 의’ ‘뜻 의’, ‘저절로 자’ ‘저절로 자’, ‘나타날 현’ ‘나타날 현’

“선생님! ‘옳을 의’ 아닌가요? 그리고 마지막 글자는 ‘볼 견’ 같은데요.”

“그래. 질문해 주어서 고맙구나. 맞아. ‘옳을 의’로 더 많이 쓰이고 ‘볼 견’으로 더 많이 쓰이지. 그런데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 알지? 그리고 가끔 한 글자가 두세 개로 발음된다는 사실도 알 거야. ‘義’가 ‘옳다’ ‘의롭다’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뜻’이라는 의미로 쓰였어. 그리고 ‘見’도 ‘보다’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견’으로 읽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나타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옳고 ‘현’으로 발음해야 옳단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 그럼, 해석해 보도록 하자. 해석해 볼 사람?”

조용했다. 몇 명 아이들은 ‘읽을 독’ ‘글 서’ ‘일백 백’ ‘번 편’ ‘뜻 의’ ‘저절로 자’ ‘나타날 현’을 중얼거리며 뜻을 알아내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였지만, 대다수 아이는 ‘그러지 말고 빨리 가르쳐 주세요’라는 표정이었다. 가르쳐주든지 말든지 자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도 있었다.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만큼 알려주었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스스로 알아내는 기쁨을 주고 싶었고, 힘들게 얻어야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며, 힘든 과정을 경험케 한는 것이 교육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디에선가

“글을 백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육은 기다려 주는 거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기쁨이 솟아났다.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가르쳐주는 게 교사 역할 아니라 스스로 할 기회를 주는 게 교사 역할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잘했다. 글을 읽음에 백 번을 읽으면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어떤 글이든 반복해서 읽게 되면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더라도 뜻을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 열심히 탐구하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행복했다. 모두 경청해주었기 때문이었고 누구 한 사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준 적 있었다. 어떤 친구는 들은 척도 않았고 어떤 친구는 반박해 와서 언쟁까지 하면서 기분이 언짢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귀 기울여 듣고 있지 않은가? 기쁨이 나를 감쌌다. 이런 맛에 선생을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업인 선생, 얼마나 좋은가? 정신이든 물질이든 주고 싶으면 마음껏 줄 수 있는 직업이 교사 말고 또 있는가?

“이 말은 중국 한나라 때 동우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당시 훌륭한 학자로 칭송받았던 동우에게 사람들이 찾아와서 가르침을 청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동우는 독서백편의자현을 이야기하면서 가르침을 사양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니 이해되는 경험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수학은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학원에 다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아. 배워서는 실력 쌓을 수 없어, 배우지 않고 혼자서 문제와 씨름하여야 실력을 키울 수 있지. 생각하고 생각하면 어떤 문제든 풀 수 있는 거야. 한번 생각해본 다음에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면서 배우려고만 해서는 절대 실력을 키울 수 없는 거란다. 영어도 마찬가지야. 단어와 숙어, 배운다고 암기되는 것 아니야. 스스로 외워야 하고 스스로 해석해 보아야 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씨름하고 또 씨름하면 해결 못 할 문제 하나도 없는 거야.”

“선생님! 그런데 그것은 시간 낭비 아닌가요? 선생님에게 배우면 10분이면 되는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해요? 시간 낭비인 것 분명하잖아요. 비효율적인 방법이고 어리석은 방법이잖아요.”

민석이였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이 의문이 해결되어야 사교육을 그만두고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민석이를 향해 90도 인사를 하였다. 진정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긴장감을 풀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민석이와 미소 짓는 아이들을 향해

“참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해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

“시간 낭비 같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 인정해. 하지만 한 시간에 열 개를 배웠는데 1주일이 지난 후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어떨까? 한 시간에 서너 개를 완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겠니? 열 개 배우면 열 개를, 최소 다섯 개는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아. 한 번에 두 마리 토끼 잡으려 욕심부리면 한 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하는 것과 같아. 욕심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 이치고 공부에서도 마찬가지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9. 학원 그만두고 성적 엄청나게 올랐어요(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