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에서 진행된 전체 학년 교육 과정 설명회가 끝난 후, 2학년 학부모들만 회의실에 다시 모였다. 백 분 넘는 학부모님께서 오셨고 모두 목을 길게 뺀 모습에서 진지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뜻 저 열정 넘치는 학부모님들이 학생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학년 담임 소개와 인사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준비해 놓은 인쇄물과 학생 이해 자료 카드를 가지고 교실로 갔다. 학부모님들이 한 분 한 분 교실로 들어오셨다. 교실로 들어오시는 학부모님들과 눈인사를 마친 후 나의 핸드폰 번호, 전자우편 주소를 칠판에 크게 적었다.
두 분의 아버님과 열여섯 분의 어머님께서 아이들 대신 교실에 앉아계셨다. 아직도 교육은 어머님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5, 6년 전만 해도 학교 전체에서 한두 분만 아버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변화의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 분단 맨 앞자리의 아버님과 눈이 마주쳤고, 누구 아버님이냐는 질문에 영훈이 아버님이라 대답해 주셨다.
“영훈이가 많이 조는데 어떡하죠? 저녁에 늦게 자는가 봐요?”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하는 것 같긴 한데, 아들 키우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빨리 자도록 지도하겠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없나요?”
“조는 것 말고는……. 그런데 조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크고 중요한 문제이니까 스마트폰을 자제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 않아도 스마트폰 때문에 많이 싸우고 있네요. 스마트폰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깨진 지 오랩니다.”
“그러니까요. 스마트폰으로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게 너무 많아요.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두 번째 줄에 앉은 긴장한 흔적이 역력한 엄마에게 눈길을 주면서
“누구의 어머니시지요?”
“김철수 엄마예요.”
“아! 네. 철수, 공부 열심히 하지 않고 있는 것 알고 계시죠?”
“그러니까요. 걱정이 많습니다.”
“학원 보내고 계시지요?”
“학원을 보내도 성적이 나오지 않네요.”
“학원을 보내니까 당연히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이지요.”
“네?”
의아한 표정을 넘어 놀란 표정이었다.
“혼자서 스스로 익혀야 할 시간에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있으니까 실력이 쌓이지 않는 것이에요. 스스로 공부할 시간을 갖지 못하니까요.”
“집에서는 공부를 통 안 하니까 그렇지요. 집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제가 왜 학원에 보내겠어요? 돈도 없어 힘들어 죽겠는데…….”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학생은 학원에서도 별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동의하기 힘드시겠지만, 학원 다니면 성적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동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아이들은 잠깐 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가요? 그리고 부모 된 처지에서…….”
“좋아요, 잠시 후 말씀드릴게요.”
철수 어머니 뒤에 앉은 어머니에게로 눈길을 던졌다.
“재진이 엄마예요.”
“좋으시겠어요.”
“……”
“재진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 있을 것 분명합니다.”
“지가 열심히 해주니까 고맙지요.”
“그래요. 땀 흘린 만큼 거두는 것 당연하지요. 저도 많이 기대됩니다. 다음 어머니는?”
간단하게 열여덟 분의 부모님 소개를 받은 후 칠판 중앙에
1. 자기주도학습
2. 잠
이라고 크게 적었다. 그리고 준비된 인쇄물을 나눠준 후 크게 읽어보자고 하였다. 아이들보다 더 큰 목소리가 합창이 되어 울려 퍼졌다.
책상 위에 여러 개의 고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고치에는 나방이 빠져나왔음이 분명한 작은 구멍이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려다가 이렇게 조그마한 구멍으로 어떻게 저렇게 큰 나방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작은 구멍으로부터 누에나방이 나오는 것을 직접 보게 되었다. 누에나방은 긴 시간 동안 갖은 몸부림을 치다가 용케도 그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신기하면서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 나는 그 가엾은 나방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아직 나방이 나오지 않은 고치의 작은 구멍을 오려서 큰 구멍으로 만들었다. 고통을 겪고 상처를 입으면서 구멍에서 겨우 빠져나왔던 다른 나방들과는 달리 내가 가위로 구멍을 크게 만든 고치에서 나온 나방은 쉽게 또 조금의 상처도 없이 빠져나와서는 날개를 퍼덕이는 것이었다.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작은 구멍으로 힘들게 비집고 나온 후에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이전의 나방들과는 달리 내가 가위로 구멍을 크게 만들어주어 쉽게 세상으로 나왔던 나방은 날개를 몇 번 움직이다가는 비실비실 책상 위를 돌더니 잠시 후에 움직임마저 없어지는 것이었다. 한참이 지나고도 나방은 날지를 못하였다.
나중에 나는 알게 되었다.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는 사이, 어깨에 있던 영양분이 날개로 내려가서 날개에 힘이 생기고, 혈액순환이 되어 힘이 생기고, 날개의 물기가 말라서 날아갈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고통을 겪지 않은 나방은 영양분이 뭉쳐있고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힘을 낼 수 없어서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카프만 부인의 저서 ‘광야의 샘’>
읽기를 마친 부모님들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