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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휘력

학생, 학부모에게 드리는 편지

by 권승호


모래밭에 집을 짓고 있다. 무너지는 집을 보면서도 기초를 단단히 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휘력이 부족하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뜻을 모르면서도 궁금해 할 줄 모른다. 문맥을 통해 대충 추측하고 넘어가고 그 추측이 옳은지 그른지 확인조차 않는다. 한자사전은 구경조차 해보지 않았고 국어사전도 찾아보는 학생이 없다. 공부는 많이 하는데 실력은 보잘 것 없는 결정적인 이유다. 집 짓는 일에서만 기초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부에서도 기초가 중요함에도, 어휘 공부가 공부의 기초임에도 기초 쌓기를 너무 소홀히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의 대부분은 한자어(漢字語)다. 한자(漢字) 한 글자는 적게는 20개, 많게는 200개 이상의 단어에 쓰인다. 한자 500자만 확실하게 알아도 2만 개 어휘를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이해가 되니 암기도 저절로 되고 오래 기억할 수도 있다. 한자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고 한자를 활용하여 어휘를 익혀야 하는 이유다.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도 많고 돈도 많은데 지식도 지혜도, 사고력도 추리상상력도 빈곤한 대한민국 학생들. 탐구심 없기 때문이고 배우기에만 힘쓸 뿐 익히기에는 힘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자를 활용한 어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미없는 공부, 힘든 공부, 효율성 없는 공부를 하는 이유 역시 어휘력 부족 때문이다. 그리고 어휘력이 부족한 이유는 한자를 활용하는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는데 어떻게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겠으며 문장 이해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글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영어 단어 숙어 공부에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면서도 우리말 단어 숙어 공부에는 조금도 투자하지 않는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도 국어 어휘력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학생 학부모, 심지어 교사까지도 이 사실을 외면한다. 한자를 무시한 공부는 하나를 공부해서 하나만 알았다가 그 하나마저 잊어버리는 공부이지만 한자를 활용한 공부는 하나를 공부해 열을 아는 공부다.

어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좋겠고 어휘력이 갖추어지면 공부도 재미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영어 어휘력 공부가 영어공부에 필수인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어휘력이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 좋겠다. ‘국경일’을 ‘나라 국(國)’ ‘경사스러울 경(慶)’ ‘날 일(日)’로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고 ‘진분수’의 ‘진’이 ‘진짜 진(眞)’임을 알아서 진짜 분수, 1보다 작은 분수라고 생각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부정사’가 ‘아닐 부(不)’ ‘정할 정(定)’ ‘품사 사(詞)’인 줄 알면 좋겠고 ‘배금주의’의 배금이 ‘절할 배(拜)’ ‘돈 금(金)’인 줄 알게 되면 참 좋겠다.

길을 가다가 미소를 짓곤 한다. 아들딸과 함께 걸으면서 간판으로 공부했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간판이나 안내문의 한글을 한자로 바꾸는 작업이 아들딸에게 알아가는 기쁨을 주었고 탐구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한자를 쓸 줄 몰라도 된다. ‘자동’이 ‘저절로 자’ ‘움직일 동’임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고 ‘양복’이 ‘서양 양’ ‘옷 복’임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며, ‘방충망’이 ‘막을 방’ ‘벌레 충’ ‘망 망’임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자가 공부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좋겠다. 국어사전 한자사전으로 어휘력을 키워가면 공부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참 좋겠다. 공부도 즐거운 작업이라는 사실까지 인정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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