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세상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1970년 중학교 진학률은 36퍼센트, 고등학교 진학률은 20퍼센트였습니다. 용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진학은 하였지만 등하교에 시간을 빼앗기고 집안일을 돕느라 공부할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학생도 많았지요. 저 역시 중학교 1, 2학년 때 하루에 4시간 정도를 등하교에 허비했고 주말에는 농사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더라도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할 시간을 갖지 못해 개천에서 용 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장학금도 거의 없었지요. 뛰어난 능력과 의지가 있음에도 기회조차 만나지 못하여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 중에도 저보다 공부 잘하고 똑똑했지만 가난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노동 현장으로 간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가난해도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도 다닐 수 있고, 의지만 있다면 대학원 공부도 가능합니다. 장학금도 적지 않습니다. 과거에 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세상, ‘개천에서 용 나올’ 확률이 훨씬 높은 사회인 것은 분명합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찬찬히 분석해 보면,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가난하면 사교육을 받을 수 없고 사교육 없이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판단이 과연 옳을까요? 환경이 공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경제적 어려움, 부모님의 불화나 갈등 등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는 근심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심리적 불안과 분노와 짜증으로 이어져 공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그러나 사교육을 받아야만 성적을 올릴 수 있고, 사교육을 받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교육 없이 대학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낸 아이들이 많고, 사교육에 매달렸으나 대학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도 많습니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아 헤맵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배우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실력 있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비싼 사교육에 매달리는 것이지요. 일상생활에서는 무척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이 어찌하여 학습법에 대해서는 이다지도 어리석을까요? 같은 선생님에게 배운 아이들이 제각각 다른 성적을 낸다는 사실을, 공부는 선생이 시켜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왜 모를까요?
좋은 선생님은 학교에 있고 도서관에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책을 통해 지식을 쌓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명문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은 비싼 돈 들여서 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받고 책을 스승 삼아 스스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기 때문에, 많이 고민하고 반복했기 때문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력 향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학생입니다. 학생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선생이 아무리 잘 가르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학생의 실력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학습의 주체가 선생이 아니고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가난 때문에 공부 못할 수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아이의 성적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와 원인이 사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환경적 어려움으로 인한 좌절, 부모와의 갈등, 가정불화와 가정해체에 따른 정서적 충격 등 다른 많은 요인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3, 40년 전까지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능력 있고 의지만 있다면 누구라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과거에 비해 복지제도가 굉장히 좋아졌고, 과거에 비해선 사회가 많이 정의로워지고 깨끗해졌습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 많지만 세상이 그런대로 살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개천에 용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학력이나 경제적 능력이나 정보력이 학생의 실력과 성적을 좌우한다는 말, 가난한 집 아이는 원하는 대학 진학이 불가능하다는 말에 흔들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