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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호 Mar 14. 2024

‘인서울’이라는 슬픈 이야기

 고 3 진학실에는 전국 대학교에서 보내는 입학 안내 홍보물이 수시로 배달됩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 관계자들이 직접 방문하여 학교를 홍보하고 우수한 학생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곤 합니다. 입시설명회도 여기저기서 시시때때로 열려 아이들의 고민을 크게 만듭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성적이 좋아야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또 좋은 정보가 있어야 명문대 입학이 가능하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여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저울질하기 바쁩니다.

 고 3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들은 숫자 놀음에 머리가 아픕니다. 컴퓨터 속의 엄청난 자료들, 입시 전문기관에서 제공한 두꺼운 책자들, 장판지라 불리는 신문지 크기의 종이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를 심각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또 쳐다보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없는 보물을 찾겠노라 몸부림칩니다. 사설 업체에 수십만 원을 지불하고 컨설팅을 받기도 합니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목표는 ‘인in 서울’입니다. 합격할 수만 있다면 인 서울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서울 앞에서 등록금이나 생활비 걱정은 뒷전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야 취업이 잘되고 승진도 잘된다고 믿는 학생과 학부모가 98퍼센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야만 성공하고 지방 대학을 나오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일까요? 확실하지 않은 추측과 소문이 진실로 둔갑한 것은 아닐까요? 남들이 모두 그렇다고 이야기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차근차근 냉정하게 따져 보지 않고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먼저 우리 사회에서 성공의 징표로 여겨지는 고시 합격의 경우를 보면, 고시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교는 서울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서울대 교수님들에게 배워서가 아니라 고시에 합격할 능력이 있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장 많이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고시에 합격한 서울대 출신 사람이, 서울대가 아니라 지방대에서 공부하였더라도 같은 힘을 쏟아 공부하고 준비했다면 고시에 합격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 모 기업이 대학별 신입사원 추천 할당 인원을 제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일이 있습니다. 그 기업이 제시한 기준을 보면 서울대 110명, 연세대와 고려대 각 100명, 그리고 지방 국립대는 학교에 따라 100명, 90명, 40명, 30명 선이었습니다. 저는 이 자료를 보고 굳이 인 서울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이유를 확인하였습니다. 오늘의 대학 입시 환경에서 소위 ‘SKY대’에 입학해 100등 하는 것이 쉬울까요 아니면 지방 국립대에서 40등 하는 것이 쉬울까요? 기업 입사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요즘처럼 청년 실업이 심각한 시대에 기업 입사 자체만 생각한다면 지방 국립대에 진학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인 교사의 경우도 살펴봅시다. 이른바 명문대 사범대학 졸업생의 임용고시 합격률이 지방대 졸업생의 합격률보다 약간 높긴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명문대를 졸업했

기 때문이 아니라 그 학교 학생들이 원래 시험 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국어교육과의 예를 들어보지요. 명문대 국어교육과 입학 커트라인과 지방대 입학 커트라인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냉정하게 말해 지방대 국어교육과 학생 중 서울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은 없거나 있어도 서너 명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에 치르는 임용고시 결과는 입학 성적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방대 졸업생과 명문대 졸업생의 합격률에 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고시에 응시하겠다며 인서울을 외치고, 중등학교 교사를 목표로 인서울을 고집하고, 초등 교사가 꿈이라면서 서울교대만을 목표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충분한 성적과 합리적인 목표,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서울로 유학을 간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요. 그러나 서울에서 유학하느라 경제적·정신적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좀 달리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인 서울을 위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감수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포기한 채 공부

의 노예가 되어 생활한다면 억울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시에 합격한 이후에, 혹은 회사에 입사한 뒤 승진을 해야 하는데 그때 학벌이 중요하다고, 대학 선배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도 말합니다. 슬프지만 그런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러했는지 몰라도 앞으로는  달라질 것입니다. 앞으로는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 사회, 학연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사라지는 사회,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로 바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힘을 보태야 하겠지요. 

 학연 중시 풍토 때문에 명문대를 꼭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실력이 아니라 학연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생각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학연의 혜택으로 성공을 일군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며 그런 사람들은 떳떳하지 못하여 기 죽어 살았을 것이라고,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 거기에 

편승했다면 그리 행복하거나 자랑스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행정·외교·정치·경제·사회·문화·언론·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능력이 학벌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해야만 가능한 일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명문대나 인 서울 자체를 목표로 

삼을 필요가 없는 이유이지요.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는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어리석은 사람, 정작 알아야 할 것은 모르거나 선택의 상황에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무조건 인 서울을 외치는 사람들이 바로 헛똑똑이가 아닌가 합니다. 서울의 명문대를 나오고도 별 볼 일 없이 손가락질 받으며 사

는 사람이 있고, 지방대를 졸업하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아니 대학 문턱조차 밟아 보지 못했지만 훌륭한 사람도 많습니다. 존경받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 중에 명문대 나오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인서울에 목을 매는 학생과 학부모님들께 지역 거점 국립대학교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방대에서 공부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뜻을 이룰 수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지방대에서 공부한 친구, 선후배,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변명일 뿐입니다. 

 ‘인서울’이 우리 사회를 좀먹어 가고 있습니다. 전국의 대다수 젊은이들이 그렇지 않아도 포화 상태인 서울로 진학하겠다며 너나없이 인 서울을 외치는 안타까운 현실을 팔짱 끼고 바라만 봐야 할까요? 인 서울이 목표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요? 국가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혁신도시를 만들고 지방으로 공

공기관을 이전하면서 인 서울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손 놓고 있는 것은 대단히 큰 잘못입니다. 인구 분산과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해 놓고서 인 서울을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국가적으로 엄청난 낭비입니다.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등록금 차별화든, 지방대 우대 정책이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자기 지역 학생에게는 등록금을 적게 받고 다른 지역 출신 학생에게는 등록금을 많이 받는 등의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여 학생들이 자기 지역 대학에 입학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기업도 인서울을 부르짖는 오늘의 안타까운 상황을 고쳐 나가는 데 동참해야 합니다. 신입사원 채용에서 지방대 출신에게 인센티브를 주라는 것이 아니라, 채용과 승진에 학벌을 고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반갑게도 얼마 전부터 공기업들이 학력, 출신, 지역, 가족 관계 등을 입사 지원서에 적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있고, 이 같은 분위기가 일반 기업들로도 확산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학벌이 아니라 실력과 인성을 공정하게 평가하여 지방대 학생들이 오로지 학벌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자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채용뿐 아니라 승진도 투명하게 공개하여 지방대가 불리하다는 편견을 없애 주어야 합니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인식도 변화해야 합니다. 서울 명문대가 아니어도 실력 있고 성실하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내일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행복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가족과 헤어져 생활하느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주거비를 들이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으면 합니다. 

 공부도 학생 하기 나름입니다. 성공과 행복 역시 대학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 성공과 행복이 보장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좇느라 소중한 오늘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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