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승호 Mar 15. 2024

대학 입시가 중요한 게 아닌데

 대학교 정문에 “○○학과 ○○학번 ○○○ 육군 준장 진급”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장군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진심으로 그분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 주었지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분은 육군사관학교에 갈 실력이 있었는데도,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는데도 지방 사립대학에 입학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학 입학 이후에 노력하여 그 자리에 올랐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성적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대학 간판이 삶을 결정짓는다는 말인데, 이는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노력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기 때

문입니다.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 죽을 필요 없고 대학 입학 이후에 노력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이 땅의 중·고등학생들, 아니 초등학생들까지도 대학 입시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학 입시에 목을 매는 우리 교육이 안타깝습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슬프고, 교육청까지 나서서 교육이 아니라 대학 입시에 에너지를 쏟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대학입시가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 아닌데 왜 대학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여 대학 입시에 모든 것을 거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느 중·고등학교에든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한 선생님이 있고 지방대를 나온 선생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출신 대학을 알지 못하며, 설령 안다 하더라도 대학교와 선생님의 능력을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저 역시 동료 교사들을 보면서 출신 대학과 ‘좋은 선생님’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확인하곤 합니다. 어디 선생님뿐인가요? 국가고시 수석 합격자가 지방대에서 나오고, 명문대 출신 약사가 운영하는 약국보다 지방대 출신 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이 손님이 더 많고 좋다는 평판을 받기도 합니다. 지방대 졸업생이 장관도 하며 국회의원도 합니다. 대학 입시에 에너지를 몽땅 쏟기보다 대학 입시에 적당한 에

너지를 쏟고 대학에 가서 공부에 매진해도 충분한 것입니다.

 물론 공부와 행복이 어느 정도 비례하며, 공부를 잘하면 행복할 가능성이 좀 더 많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너나없이 자녀 교육에 목을 매는 것에는 이유가 있으며,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이 절대 나쁠 리 없고, 할 수만 있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고등학교 내내 계속 공부를 잘하면 좋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명문대 입학이 성공과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과학고, 외국어고, 자사고에 입학했지만 중간에 그만두거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도 적지 않고,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초라한 대학 생활을 하다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명문대 입학으로 인생이 결정된다거나,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공부하면 된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고, 100미터 달리기라고 말해 놓고 100미터 지점에 도달하니 사실은 400미터 달리기였으니 계속 뛰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성적은 하위권이었지만 대학 진학 후 열심히 노력하여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는 제자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고 3 때 

담임을 맡았던 제자가 찾아왔는데 모 은행에 근무하고 있다고하였습니다. 그 제자는 고등학교 입학할 때 330명 중 303등이었고, 중학교 때는 물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2학년까지는 공부는 밀쳐 놓고 신나게 놀기만 했다고 하였습니다. 고 3이 되면서 나름 열심히 공부했지만 국립대학교 진학에 실패하여 지방 사립

대학에 들어갔는데, 입학 후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 받으며 학교를 다녔고 ROTC 장교로 전역한 후 은행원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 제자뿐 아니라 고 3 때 철들어 꿈을 이룬 아이들도 많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 늦게는 군대 갔다 와서, 더 늦게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 하고 싶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꿈을 이룬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성적은 좋으나 대학 성적은 보잘것없는 명문대 졸업생 갑甲이 있고, 고등학교 성적은 형편없으나 대학 성적은 좋은 지방대 졸업생 을乙이 있다면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나은 평가를 받을까요? 당연히 을乙일 것입니다. 성적은 성실성을 평가하는 지표이고,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행복이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니까요. 공부는 못했지만 성공하여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공부가 좋고 재미있어서 한다면 좋은 일이고 굳이 말릴 이유가 없지만, 공부가 재미없고 잘하기 어렵다면 굳이 공부하라고 강요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두 프로축구 선수가 될 수 없고 누구나 가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학생이 공부 잘해서 학자가 되고 판검사가 되고 고급 공무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판검사나 변호사가 좋은 직업은 아니잖아요? 사회정의와 질서 유지를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들고 괴로운 일 아닌가요? 의사 역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직업이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항상 긴장해야 하고 주말과 밤에도 일해야 하는 힘든 직업 아닌가요?

 논밭이나 공장에서 땀 흘리는 노동을 좋아하고 그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모든 학생이 공부를 잘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지요. 게다가 공부는 부모가 욕심낸다고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구박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민주화되었고 평등을 지향하고 있으며 직업의 귀천 의식도 사라졌습니다. 자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에너지를 몽땅 쏟아붓지 말고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포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에서도 열심히 공부한다면 좋겠지만, 하나만 택한다면 대학에서의 공부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시가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엉터리입니다. 42.195킬로미터의 마라톤 경기에서 5킬로미터 지점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선수가 1등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5킬로미터 지점에서 예측해 볼 수 있고 5킬로미터 지점에서 1등을 하면 최종 지점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니까

요. 전반전 끝났을 때의 점수보다 후반전을 마친 뒤 최종 점수가 중요하듯,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가 아니라 대학에서 얼마만큼의 실력을 쌓았는지가 중요하고 사회와 가정에서 얼마만큼 성실하고 지혜롭게 사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