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좀처럼 웃지 않는 제가 운전 중에 뉴스를 들으면서 소리 내어 크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 특목고 대비 유치원이 등장했다는 뉴스 때문이었습니다. 5~7세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논술을 가르치고, 그것도 시험 문제 풀이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며, 학원비가 200만 원이 넘는다고 하였습니다.
유치원 꼬맹이들이 무엇을 얼마나 배울 수 있을까요? 물론 배우는 것이야 있겠지요. 배워도 안 배워도 그만인 것을 조금은 배우겠지요. 그런데 잃는 것은 없을까요? 얻는 것만 생각하고 잃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 아닌가요? 중학생이 되어 배워도 충분한 영어를 조금 일찍 배운다고 얼마나 큰 이익이 있을까요? 영어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은 팽개쳐 버리는,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 아닌가요?
언어는 어렸을 때 배워야 효과가 있다면서 영어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목 놓아 외치는 사람들이 많고, 이 말에 많은 학부모님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효과도 미미하지만 설령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익힌 영어 실력, 중학생 때에는 3,4개월이면 익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 실력 조금 키우겠다고 정작 중요한 사고력, 추리상상력, 신나게 노는 행복, 인간으로 지녀야 할 감성 등을 키울 수 없는 것은 큰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올바른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영어를 공부한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영어를 배우지 않은 아이들보다 당장은 앞설 수 있지만 그 실력이 대학 입시까지는 절대 이어지지 않습니다. 진짜 현명한 사람이라면 득得뿐만 아니라 실失도 함께 따져야 합니다. 1천 원 싸게 구입한 것만 따질 것이 아니라 교통비 2천 원 지불한 것을 고려해야 하듯, 얻음뿐 아니라 잃음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영어 조기교육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바보짓입니다. 중학교 입학 후에 알파벳을 배운 사람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영어 교사는 물론 영어 교수님도 하고 외교관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박지성, 박세리, 박찬호, 손흥민 등 운동선수들도 학창 시절에는 운동만 하다가 스무 살 넘어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했을 터인데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합니다. 나이 들어 배워도 결코 늦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부는 어렸을 때보다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달을 만큼 성숙한 뒤에 하는 것이 투자 대비 실력이 큽니다. 대략 열다섯 살은 되어야겠지요. 공자는 열다섯 살의 나이를 ‘지학志學’이라 했습니다. 공자도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시작하였는데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열다섯 살 이전에 공부에 뜻을 둘 수 있을까요. 책을 많
이 읽는 일도 중요하고 신나게 노는 일도 중요한데 그까짓 영어 조금 빨리 배우겠다고 어린 시절의 행복을 팽개쳐 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물론 중학생 때에도 놀아야 합니다. 노는 것은 권리이고 노는 것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전혀 배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에는 적당히 배우고 많이 놀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공부를 강요받다니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아동 학대 아닌가요? 물론 본인이 하고 싶어서, 재미있어서 공부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강요에 의한 조기교육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억지로 하는 공부는 공부가 재미없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고, 처삼촌 벌초 하듯 대충 대충할 가능성이 높으며, 빨리 끝내야 한다는 욕심으로 생각 없는 헛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운동할 때 육체노동을 할 때에도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하는데 하물며 공부할 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생각하지 않음이 습관이 되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당연히 한글을 가르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도 잘못입니다. 생각하는 힘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캥거루 사진 밑에 ‘캥거루’가 쓰여 있는 책을 펼쳐 놓고 ‘캥거루’를 찾아보라고 하는 것은 답이 표시된 문제를 풀어 보라는 것과 같습니다. 캥거루의 생김새와 특징 등을 살펴보고 여우나 토끼나 낙타 등의 동물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면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데, 글자를 알기 때문에 고민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이는 생각하는 훈련을 방해하여 사고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호기심 상실입니다. 미리 배워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면 수업에 집중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면 중학교·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집니다. 욕심이 기대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지요. 공부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때가 언제쯤일까요? 저는 초등학교 때는 분명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1,2학년 때도 아니고 빨라야 중 3 때입니다. 이때부터의 공부가 노력 대비 실력 향상이 가장 큰 시기입니다. 나이를 먹은 만큼 이해력이 높아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 나이가 되어야 철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치를 알고 공부하니 이해가 빠르고 철이 들어 열심히 하니 공부 효과도 가장 크게 나타납니다. 초등학교·중학교 때 억지로 공부시켜 공부에 거부감만 갖게 만들지 말고 마음껏 놀면서 에너지를 축적한 다음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하도
록 해야 합니다.
전주에 문맹률 1위를 자랑하는 유치원이 있습니다. 이 유치원의 원장님은 아이들에게 글자나 숫자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고 오로지 뛰고 구르고 달리도록만 합니다. 놀 시간도 부족한데 무슨 공부냐면서 어렸을 때 잘 논 아이가 어른이 되어 일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차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을 논농사 밭농사에 참여시키고 비가 와도 야외 활동을 강행합니다. 아이들끼리 갈등이 있어도 가능하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고, 놀다가 넘어지고 다치는 것을 예방 주사로 생각하며, 위험하지 않으면 놀이터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음껏 뛰어놀면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고 그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고, 어린 시절을 순수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채우면 그 기억이 훗날 어려움을 이기는 힘의 원천이 된
다고 하면서, 어린 아이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유치원 출신 아이들을 학교에서 많이 만났는데 대부분 행복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였고 학업 성취도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한 농부가 씨앗을 뿌려 싹이 돋아나자 빨리 자라게 할 욕심으로 밭에 나가 그 싹들을 하나하나 뽑아 올려놓고 집에 돌아와서는 싹이 잘 자라도록 뽑아 올려 주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밭에 가 보니 싹이 모두 말라 죽어 있었지요. 싹을 빨리 자라게 하려고 했던 농부의 욕심이 식물을 말라 죽게 만든 것입니다. 이를 ‘뽑을 알揠’ ‘싹 묘苗’ ‘도울 조助’ ‘길 장長’을 써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 합니다. 지나친 욕심으로 일을 망치는 것을 경계하는 이 이야기가 특목고 대비 유치원까지 생긴 우리 현실에서 매우 아프게 다가옵니다.
많이 배워야만 많이 알 수 있다는, 비싼 돈 들여서 원어민 강사에게 배워야만 영어를 잘하게 된다는, 어릴 때부터 배워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대입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는 이야기에 쓴웃음이 납니다. 안타까운 대한민국의 교육, 정말 ‘이건 아니잖아’를 외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