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을 떠날 나이가 되어서야
바람직한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국어사전은 ‘교육’을
“인간 심신의 모든 능력을 발육시켜 인간으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
이라 적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교육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것이 된다.
아이들의 심신 발달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인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직 공부였고, 오직 성적이었으며, 오직 명문대 합격이었다.
교육은 믿음과 기다림과 용서와 솔선수범이라는 생각조차
5년 전에야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부끄럽게도.
회초리 들지 않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소리 지르며 화내지 않은 지도 5, 6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굳이 야단치지 않고 화내지 않아도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멋쩍어하며 행동을 바로 잡아 나갔다.
이제야 깨달음이 왔다.
체벌과 화냄은 아이들 마음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분노를 가져와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는 깨달음.
기다림, 용서, 관심, 부드러움이 아이들의 마음을 바꾸고
결국은 행동까지 바꾼다는 깨달음.
그래서일까? 방송인 유병재 씨가 쓴 다음과 같은 글에
크게 그리고 여러 번 고개 끄덕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겁내는 건,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냥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될 나를 겁내는 것이지,
당신을 겁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5년 전부터 시험 보는 날에는 내가 청소를 한다.
3년 전부터는 매일,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책상을 정돈한 다음
조용히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교실을 청소하는 이유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봉사 배려 기다림 등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교단을 떠날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음이 왔다.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학부모님께 보내는 가정통신문>>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