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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박 Mar 02. 2019

곰팡이가 없으면 지구도 없다. (저자 신현동)

곰팡이 이야기 12

가디언(The Guardian)지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경우에 가장 큰 영향을 줄 다섯가지 생명체에 곰팡이를 포함시켰다. 곰팡이가 지구상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인데 이들이 없으면 지구는 쓰레기로 가득차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곰팡이가 없으면 지구도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국내의 대표적인 곰팡이 분류학자인 신현동 교수님의 곰팡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오늘은 ‘곰팡이가 없으면 지구도 없다’라는 책과 저자인 신현동 교수님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99년으로 기억한다. 농과대학 건물의 교수님 사무실이었고 여름이었던 것 같다. 처음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의자에 앉아계신 교수님은 양복바지를 걷어 올리고 연신 종아리를 긁으셨다. 스승으로 모시고자 한 첫 자리에다가 명문대학교 교수가 주는 권위에 눌러 긴장하고 있었는데 소탈한 모습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당시에 우리 실험실에는 지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곰팡이연구를 하고 있는 이선주 박사가 포닥(post doctor)으로 와 있었다. 분자생물학으로 곰팡이분류를 시작한 나에게 이박사님은 현미경 관찰법 등의 형태분류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는 곰팡이분류를 제대로 하려면 신현동 교수님께 가서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었다. 


교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던 중에 ‘식물병과 농업’이라는 논문집에서 ‘식물병원곰팡이와 관련된 학술용어 : 반성과 제안’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곰팡이 분류의 기본이 되는 특징들의 한글명 제안이었는데 짧은 글이었지만 감동이었다. 


예를 들어 곰팡이포자인 conidia는 그때까지 일본에서 쓰는 용어인 분생자 대신에 분생포자(分生胞子)를 제안하였고, 곰팡이 포자가 열리는 줄기(conidiophore)는 기존에 분생자병이었는데 분생포자경(分生胞子梗)으로 제안하였다. 


그리고 균사 중간에 맺히는 두꺼운 포자(Clamydospore)는 후막포자가 아니라 후벽포자로 제안하였다. 이 용어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후막포자라고 씀에도 불구하고 후벽포자가 맞다는 주장이었는데 실제 포자를 구분 짓는 것은 세포막이 아니고 세포벽이므로 후벽포자가 타당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느낌이 생생한데 매우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이후 내게는 이 용어들이 표준이 되었다. 


여름날에 그렇게 배움을 청하고는 2학기 진균분류학 수업에 바로 참가하였다. 대학원을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냥 수업에 참가하였다. 그 수업은 곰팡이 분류학을 한번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실무를 했던 내게는 가뭄의 마른 논에 물을 대는 격이었다. 우리나라의 곰팡이 분류는 대부분 식물병리학자들이 하고 식물병리학을 통하여 강의를 하는데 교수님은 제대로 곰팡이분류학을 강의하셨다. 교재는 Hawksworth의 Mycologist’s Handbook 이었는데 곰팡이 명명규약을 다루는 법전으로 매우 어려웠다. 후에 Hawksworth 박사를 만나 이 책으로 곰팡이분류를 처음 배웠다고 했더니 그 책은 본인의 지식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대학원생 때에 쓴 책이라 쉽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어쨌든 열심히 공부했다. 수원에서 학교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직장에서 걸어서 화서역까지 가는데 15분, 화서역에서 신설동역까지 1호선 전철로 꼬박 1시간 15분, 그리고 신설동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신설동로타리까지 가서 다시 농과대학 건물까지, 근 2시간의 등교길이었다. 대학원에 입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공부를 위하여 참석하였는데 한번도 결석 없이 한 학기를 수강하였다. 그것이 가능하였던 것이 당시의 우리직장은 공부하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관대하였다. 연구실장님과 과장님은 내가 1주일에 한나절씩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하여 기꺼이 허락을 해 주셨고 복무관리에 있어서도 연가를 사용하지 않고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 때는 규정보다는 인간적 신뢰에 바탕을 둔 시스템이었다.


한 학기 청강을 하고 이듬해에 정식으로 대학원에 입학을 하고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곰팡이 채집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셨는데 실제 선생님은 세계균학회장 Pedro Crous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곰팡이 사냥꾼이다. 


얼었던 대지에 봄이 오면 새싹이 돋아나고 식물이 자라는 곳엔 곰팡이도 따라온다. 5월 초에 대관령, 동해, 삼척 등 강원도 일대에 곰팡이 채집을 나갔다. 야산의 햇볕 잘 드는 개울가를 다니며 야생초의 잎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곰팡이가 핀 잎을 수집하였다. 봄 햇살을 받아 풀들이 빼곡히 올라오는데 선생님께서는 이 풀은 뭐고 지금 철에 어떤 곰팡이가 발생하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곰팡이뿐만이 아니라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놀랐다. 풀이면 풀, 나무면 나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당시에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다. 혹시 교통사고라도 나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국가적으로 큰 손해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성계의 조상 중에 한분이 모셔진 영경묘 주변의 시골 동네였다. 조그만 개울가 햇볕 잘 드는 곳에 황기가 막 잎을 내어 자라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잎을 자세히 보면 노균병균이 있을 거라 하셨다. 과연 황기 잎의 뒷면에 하얀 노균병균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보시지도 않고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아셨을까? 


몇 년째에 곰팡이 채집을 위하여 여기에 오는데 지금 시즌이면 그 자리에 반드시 황기가 돋아나고 그 잎에는 노균병이 자란다는 것이다. 노균병은 이 때만 잠깐 나오고 5월말이 되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무슨 칠월칠석날의 견우와 직녀의 만남도 아니고, 매년 5월이 되면 황기가 싹을 틔우고 거기에 노균병이 발생하여 짧은 사랑(?)을 나누다가 잎이 짙어지면 떠난다. 봄이오면 또 다시 황기가 자라고 노균병이 찾아오고. 참 이들도 어렵게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마다 반복되는 기후와 여기에 맞추어 자라는 식물 그리고 이를 찾는 곰팡이, 참으로 흥미로운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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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곰팡이가 없으면 지구도 없다(이하 곰지)’ 책을 보내주신다고 하신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의 사비로 제공하신다고 한다. 곰팡이의 대중화를 위하여 주변 사람들한테 나누어 주라신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에 이 책을 소개하고 희망자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지책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님의 전공은 식물병원성 곰팡이 분류이다. 야생식물에 발생하는 곰팡이를 관찰하고 이를 분리 보고하는 것에 세계 최고이시다. 선생님이 분리한 많은 세계 최초의 곰팡이들이 농업미생물은행(KACC)에 보존되어 있고 KACC를 통하여 세계에 분양되어 이용되고 있다.


분류학자들은 생물을 발견하고 그들의 특성을 기술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을 한다. 따라서 좋은 균을 분리하고 잘 관찰해야 하지만 또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이름을 잘 붙이고 특성을 잘 묘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에 강해야 한다. 선생님의 영어능력은 최상이다. 학부 시절 영자신문 편집국장을 하였으며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세계의 석학들과 손편지로 지식을 교환하였다. 영어만이 아니다. 한문에 능하여 웬만한 고문헌을 해석하고 중국 문헌도 독해가 가능하다. 또한 분류학자들이 알아야하는 라틴어도 하신다. 


이러한 기본을 바탕으로 처음 뵈었을 때부터 주요 곰팡이 종에 대하여 라틴어 학명의 뜻풀이를 하고 이 곰팡이에 대하여 설명하는 책을 내고 싶어 하셨다. 이에 오십여종의 곰팡이에 대하여 내용을 작성하고 읽어보라고 하셨다. 라틴어 뜻풀이가 주를 이루었고 곰팡이에 대한 일반 설명은 많지 않았다. 너무 전공 쪽에 가까운 책이었기에 출판사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늘 곰팡이 대중화에 관심이 많으셨다. 10년 전쯤부터 곰팡이를 학부학생들에게 쉽게 소개하기 위하여 ‘곰팡이와 인간’이라는 대중강의를 개설하였다. 교재는 특별히 없었으며 곰팡이와 관련된 신문기사, 책자, 인터넷 등의 자료를 주제별로 모아서 학생들에게 알려 주었다. 교과서도 없이 강의를 하실려니 자료 수집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셨을까? 이 강의는 자연계 학생뿐만이 아니라 인문계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선생님은 이 강의로 대학의 최우수 강의에 주는 석탑강의상도 수상하셨다. 


2014년 겨울 선생님께서 이번에는 곰팡이 대중서를 쓰시겠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보내오셨다. 곰팡이에 관한 100여편의 짧은 단편들 모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쓰셨냐고 여쭈니까 강의하던 내용이고 머릿속에 있는 것들인데 시간 걸릴 것이 뭐가 있냐고. 한자리에 앉으면 3-4편의 글을 써내려 갔다고 하셨다. 


놀랍다. 글을 써보면 A4 한 장을 채우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그런데 한자리 앉아서 A4 2매짜리 단편을 3-4편 써 내려 가신다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선생님께서는 20년전부터 곰팡이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 하셨다. 처음에는 주요곰팡이에 대한 라틴어 학명을 풀어 쓴 책을 원하셨고 이후에는 그 주요곰팡이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학생들에게 전달하면서 내용들이 익어갔다. 오오래 전부터 기획하고 푹 익은 내용들을 글로 옮기니 뭐가 어렵겠는가? 그러니 하루에 10쪽씩 써내려 가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글도 연구도 오오래 생각하고 처절하게 고민한 것이 당연히 좋은 결과를 낸다. 그런 측면에서 곰지는 오래 익힌 깊은 맛을 내는 발효된 책이다.


선생님의 원고는 일단 술술 잘 읽혔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우리생활과 밀접한 이야기라 흥미진진했다. 분량도 곰팡이별 A4용지 2매 정도여서 틈나는 시간에 읽기가 좋았다. 특히 화장실에서 읽기가 좋았다.


이번에는 대중들을 위한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출판사도 섭외되었다. 내용도 그렇지만 금전적으로 이익을 원치 않으셨기에 쉽게 출판사와 계약이 이루어졌다. 잘 발효된 책은 역시 독자들이 선택한다. 1쇄가 금방 동이나고 4쇄가 발행되었다. 2015년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우수도서인 세종도서 교양부분에도 선정되었다. 과학계에서는 이 정도면 베스트셀러다. 


책이 잘 팔린 덕에 수입이 생기자 선생님께서는 이 돈으로 다시 책을 사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곰팡이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나누어 주라신다. 이에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이 책을 원하는 분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한다. 나는 하는 것도 없이 생색만 내는 것 같아 택배비는 내가 지불하겠다. 


“이 책이 필요하신 분은 댓글로 주소를 써 주십시오. 쓰여진 순서에 따라 15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만 농진청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곰팡이에 관한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으므로 신청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배부를 기다리고 있는 곰지책


선생님께서는 다시 책을 준비하고 계신다. 처음 이야기 했던 인간에게 큰 영향을 주는 곰팡이 100여종에 대하여 학명을 풀이하고 우리말 이름을 짓고 관련된 이야기를 추가하고자 하신다. ‘곰지’보다는 더 전문 서적이다. 출판사와 협의하였는데 출판사에서는 상업성이 없다고 더 대중적인 내용을 원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업성이 떨어지드라도 학문적으로 남을 만한 책을 쓰시겠다고 하신다. 어떤 방식으로 책이 출판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페친들께서 곰지 책에 대하여 좋은 피드백을 해 주시면 아마도 더 좋은 책이 나오고 출판시기도 당겨지지 않을까? <2018. 12. 7. 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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