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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박 Jun 19. 2021

전주 막걸리

막걸리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술이다. 술은 곡물이나 과일을 효모로 발효한 후에 잘 걸러서 맑은 물만 받아 놓은 것이다. 해서 보리를 재료로 하면 맥주가 되고 포도를 재료로 하면 포도주가 된다. 같은 원리로 쌀을 재료로 해서 빚은 술은 청주(일본의 경우 사케)인데 우리나라에는 청주 대신에 막걸리를 주로 마신다. 우리의 주곡인 쌀로 술을 만드니 발효 후에 쌀을 버리기가 아까우니 막 걸러서 결국 술과 밥을 함께 먹는 것이 막걸리다.    


보통의 술의 역할은 본 음식의 맛과 소화와 흡수를 돕는다. 영양가가 높지 않은 맑은 물의 알코올이니 배는 부르지 않고 다른 음식을 더 잘 먹게 한다. 삼겹살만 먹는 것보다 소주와 함께 먹으면 1.5배는 먹는다. 그런데 막걸리는 다르다. 막걸리는 밥이다. 그러니 다른 술들이 본 음식이 주이고 술이 조연인 반면에, 막걸리는 막걸리가 주이고 다른 음식이 오히려 조연이다.    

  

전주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 김제평야와, 그리고 임산물이 풍부한 완주, 진안, 장수와 인접하고 있으며, 또한 해산물이 풍부한 군산, 부안, 고창 역시 지척이다. 농림수산물에 접근성이 좋은 전주가 음식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비빔밥, 콩나물국밥과 함께 한정식이 있다. 풍부한 음식을 기반으로 한 한상차림은 많은 반찬 수와 저렴한 가격으로 다른 지방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전주막걸리의 인기의 비결은 바로 이것, 풍부한 안주이다. 막걸리는 다른 술과 달리 밥인 셈인데 반찬이 많고 맛있으니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전주막걸리를 대표하는 곳이 삼천동 막걸리 골목의 용진집막걸리와 서신동 막걸리 골목의 옛촌막걸리다. 용진집은 간장게장, 홍어삼합, 조기조림, 낙지 등의 해산물이 풍부한 반면에 옛촌은 김치갈비찜, 삼계탕, 족발 등의 육류가 풍부하다. 해서 용진집은 4,50대의 중년층이 선호하고 옛촌은 육류를 좋아하는 젊은 층이 선호한다.     


2000년대 초반에 이러한 막걸리 한상이 10,000원, 12,000원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막걸리를 추가할 때마다 새로운 고급 안주가 추가되는 형태였다. 그래도 이 때에는 막걸리의 열풍으로 손님이 많았기 때문에 박리다매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경쟁업체가 늘고 막걸리 선호가 줄어들면서 박리다매 식의 무한리필 안주 시스템으로는 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결국 용진집과 옛촌도 막걸리 주전자에 따른 무한리필 안주 시스템을 멈추고 한상차림당 가격으로 전환하였다. 현재 용진집은 2인기준 커플상은 38,000원, 3-4인기준 가족한상차림은 65,000원 그리고 옛촌은 2인 기준 커플상은 38,000원, 3인기준 가족상은 53,000원, 4인기준 잔치상은 73,000원을 기준으로 하고 추가의 술과 단품 안주는 별도의 가격을 받는다.    


그렇다고 전주의 막걸리 집 모두가 가성비 좋은 안주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효자동의 홍도주막은 직접 삭힌 홍어를 기반으로 한 홍어삼합과 홍어탕, 홍어찜으로 유명하다. 청와대까지 소문이 나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는 2번이나 홍도주막에 홍어요리를 주문하였으나 주인장은 결국 제공하지 않았고, 후에 봉하마을에 홍어삼합을 보내 노무현 대통령이 하루 세끼를 홍도주막 삼합으로 즐겼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연탄시인 안도현, 섬진강 시인 김용택 등 시인 묵객들의 단골집이다.  

  

막걸리에 전주 문화를 더한 막걸리 집이 있다. 세계최대의 막걸리집이라는 간판을 단 중화산동의 달빛소리이다. 이 집은 큰 실내에 무대가 있고 시간마다 소리꾼과 가수가 나와 창과 노래를 한다. 흥에 겨운 술꾼들이 무대를 차지하기도 한다. 달빛소리의 주요 상품은 1인당 30,000원으로 막걸리와 안주가 무한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최근들어 옛촌이 자체 막걸리를 개발하여 제공하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전주의 막걸리집은 전주주조의 전주생막걸리를 사용한다. 하지만 서곡동의 고구려막걸리는 전주 생막걸리가 아닌 송명섭막걸리를 고집한다. 송명섭막걸리는 농식품부 술제조 송명섭 명인이 쌀과 누룩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만든 순수막걸리인데, 마셔보면 첫 맛은 싱거운 것 같은데 갈수록 그 맛에 빠져드는 뒷끝이 없는 매력적인 술이다. 막걸리 애호가 이낙연 전총리가 이 술을 선호하여 여야5당 대표의 청와대 만찬주로 사용되었다. 안주인이 맛깔스럽게 담아낸 홍어삼합이 심심한 송명섭막걸리와 매우 조화를 잘 이룬다는 느낌이다.    


결국 전주막걸리는 음식과 문화의 고장 전주의 고유 산물이다. 하지만 교통과 대중매체의 발달로 점점 서울화 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7년 전에 처음 전주에 왔을 때에는 전주막걸리의 고유 특색이 강했는데, 잘 나가는 막걸리집 위주로 점점 서울화되어 그저 가성비 좋은 막걸리집으로 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인데,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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