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곰팡이가 그 유명한 알렌산더 플레밍의 푸른곰팡이입니다. 플레밍이 실험실을 비운 사이에 그가 연구하던 포도상구균 배양접시에 내려 앉아 생장을 멈추게 하였죠. 이걸 보고 플레밍은 곰팡이가 세균을 죽인다, 그래서 사람의 세균병을 곰팡이가 치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 결과는 1929년에 영국실험병리학회지에 논문으로 실렸습니다.
그 후 플레밍의 연구는 하워드 플로리로 이어지는데 플로리는 당시 2차 세계대전으로 연구 여건이 좋지 않은 영국을 떠나 페오리아의 미국 농촌진흥청 북부지소(NRRL)로 이 곰팡이를 가지고 갑니다. 여기서 플로리는 결국 페니실린대량생산 기술 개발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화이자(Pfizer)사가 페니실린을 대량생산하게 되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부상으로 세균병에 감염된 많은 환자의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있습니다https://brunch.co.kr/@seungbeomhong/23.>
이것이 첫 항생제인 페닐실린 개발 이야기로, 항생제의 개발로 인류는 세균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장수하게 됩니다. 혹자들은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명이 사람의 수명을 15년 이상 연장하게 했다고 합니다.
플로리가 40년대 초에 가지고 온 플레밍의 푸른곰팡이는 미국 농촌진흥청 북부지소 농업미생물은행(NRRL)에 824번으로 보관되게 됩니다. 그리고, 2009년도일 겁니다. 제가 NRRL을 방문하였을 때에 이 곰팡이를 한국으로 도입하게 됩니다. 그래서 농촌진흥청 농업미생물은행(KACC)에는 44964번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플레밍의 푸른곰팡이를 KACC에서 쉽게 분양받아 쓸 수 있습니다.
플레밍의 논문은 1929년에 나왔지만 이 곰팡이가 플레밍의 실험실을 찾은 것은 1년전인 1928년입니다. 28년생이니 현재로 94세인 셈입니다. 장수하고 있지요. 이 곰팡이는 아직도 정정하여 백수를 아니, 천수를 누릴겁니다.
플레밍의 푸른곰팡이보다도 나이가 더 많은 곰팡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곰팡이는 제가 매우 아끼는 곰팡이입니다. 왜냐면 무명이었던 이 곰팡이를 스타로 만들어 준 사람이 저입니다.
이 곰팡이는 1901년에 일본 동경대 대학원생이었던 이누이가 분리한 곰팡이입니다. 당시 동경대에서 일본 부속 섬의 전통술을 연구하였는데, 이누이는 오키나와를 방문하고 지역 토속주인 아와모리 술을 만들던 검은누룩(흑국)에서 이 곰팡이를 처음 분리합니다. 그리고는 이름을 Aspergillus luchuensis라고 지었습니다.
luchuensis라는 이름이 생소하시죠? 하지만 류큐열도는 들어보셨지요? 일본 본섬과 대만 사이에 있는 오키나와를 포함한 작은 섬들을 류큐열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류큐의 영어식 표기가 luchu이고 –ensis는 어디에서 유래한 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luchuensis는 ‘류큐열도에서 유래한’, ‘류큐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누이 입장에서는 일본 본섬에서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류큐열도까지 가서 누룩 곰팡이를 분리해 왔으니 ‘류큐산’ 누룩곰팡이라고 이름 붙일만 하죠!
하지만 이 곰팡이 역시 학계에서 금방 잊혀져 버리고 긴 잠에 빠집니다. 더군다나 일본의 유명 균학자 나카자와 박사가 오키나와를 방문하고 역시 아와모리를 만드는 검은누룩곰팡이를 분리하고는 이를 Aspergillus awamori 즉 아와모리 누룩곰팡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오키나와에서 아와모리를 만들고, 일본 본토에서 소주를 만드는 균주를 A. luhuensis가 아니라 A. awamori라고 불렀죠! 약 100년간요!
그런데 제가 막걸리를 만드는 낱알누룩(입국)의 흰누룩곰팡이(백국균)를 공부하면서 잠들어 있던 이누이의 류쿠산 누룩곰팡이를 깨웠습니다. 2013년까지 막걸리 누룩곰팡이의 학명은 Aspergillus kawachii, 카와치 누룩곰팡이였습니다. 여기서 kawachi는 일본 양조업자 성씨입니다. 우리 고유술을 만드는 곰팡이 이름이 일본양조업자 이름이라는 것이 못마땅하여 바꿀 수 있으면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시작하였던 거죠.
그 결과 막걸리를 만드는 주요 곰팡이인 카와치 누룩곰팡이(A. kawachii)의 아버지가 아와모리 누룩곰팡이(A. awamori)고, 이 곰팡이의 원조는 이누이의 류큐산 누룩곰팡이( A. luchuensis)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곰팡이가 아니라 하나의 조상에서 유래된 같은 곰팡이 종(種)이였던거죠. 결국 우리나라 막걸리 만드는 백국균, 일본에서 소주 만드는 흑국균, 오키나와에서 아와모리를 만드는 흑국균 모두 원조인 A. luchuensis로 정리되었습니다.
<*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요, https://brunch.co.kr/@seungbeomhong/2 >
이 공부를 하면서 놀라왔던 것은 실험의 결과보다 일본의 곰팡이 자원 관리에 대한 자세였습니다. 이누이라는 대학원생이 분리한 균주가 동경대학교 미생물은행(FAT)에 보관되고, 이것이 다시 오사카발효연구소 미생물은행(IFO)으로 옮겨지고, 다시 경제산업성 미생물은행(NBRC)으로 옮겨져 4281번으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1901년에 대학원생이 분리한 균주가 일본 군국주의 시절, 그리고 미국과의 태평양전쟁 등의 격동의 세월을 지나서 121년간 무사히 보관되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Nakazawa 박사가 1915년에 분리하여 아와모리 누룩곰팡이(A. awamori)라고 이름 붙인 균주는 일본미생물은행(JCM)에 2261번으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1930년대에 카와치 씨가 검은누룩곰팡이의 돌연변이주로 분리한 흰누룩곰팡이, 그래서 한국까지 와서 막걸리 제조에 많이 쓰이는 곰팡이 역시 원균주가 일본경제산업성 미생물은행(NBRC) 4308번으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욕하고 무시하는 일본의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고유의 술, 막걸리를 만드는 곰팡이 이름을 공부하는데, 역설적으로 이 공부가 가능했던 것이 일본의 철저한 미생물 자원관리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곰팡이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농업미생물은행(KACC)이 설립되고 처음 도입한 곰팡이가 오*석 박사님의 박사학위 논문 실험에 사용된 고추탄저병원균 14균주입니다. 그 중의 한 균주가 위의 사진의 KACC 40042 균주입니다.
이 곰팡이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역할을 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 탄저병 이슈가 있었습니다. 고추와 사과 등의 원예작물 탄저병이 1900년대에는 Colletotrichum gloeosporioides가 주였는데 2000연대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C. acutatum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에 KACC 40042를 포함한 1990년대에 분리하여 C. gloeosporioides로 보관되어 있는 균주들을 분석했지요. 그 결과 이들 중의 다수가 C. acutatum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1900년대에 이미 C. acutatum이 많이 발생하였는데 그것들이 C. gloeosporioides로 잘못 이름이 붙혀졌던 것이었죠.
실은 잘 못 붙혀졌다고 하면 그렇고, 그 당시의 분류 체계가 그랬던 것이죠. 무슨말이냐 하면, 1900년대의 곰팡이 동정은 현미경관찰에 의존하였습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곰팡이 동정에 유전자 분석 기술이 도입되었지요. 1990년대에 현미경 관찰로 C. gloeosporioides로 동정되었던 탄저병 균주들이 유전자 분석에서는 C. acutatum로 동정되었다는 겁니다. 결국 세기가 바뀌면서 새로운 원예작물 탄저병균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같은 곰팡이가 발생하였는데 동정하는 방법이 바뀜에 따라 생긴 착시 현상이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KACC 40042를 포함한 90년대에 분리한 균주를 농업미생물은행이 보관하고 있지 않았다면 답을 얻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곰팡이가 중요하고 미생물은행이 중요한 것이죠!
또한 이 곰팡이는 농업미생물은행에 보관된 지난 27년간 농약회사, 대학, 연구소 등의 226명의 연구자에게 분양되어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이 곰팡이가 KACC에 보존되어 있지 않고 외국에서 도입했다면 6000여만원의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갔을 거고, 그리고 외국에서 도입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였을 겁니다.
이 고추탄저병 곰팡이는 위에서 말씀드린것처럼 95년도에 농업미생물은행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오박사님의 실험을 위하여 92년 7월 1일에 분리되었다고 대장에 기록 되어 있네요. 그러면 이 곰팡이는 만으로 30세를 채웠습니다.
이 곰팡이도 플레밍 푸른곰팡이처럼, 이누이의 검은누룩곰팡이처럼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소 100살까지는 살았으면 좋겠어요. 충남농업기술원에 있던 것을 농업미생물은행으로 모셔서 지난 27년간은 제가 직접 돌보았는데, 이제 제가 돌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를 않았습니다. 곧 후배에게 물려줘야 하고, 또한 후배는 다음 후배에게 물려줘야 되겠지요! 그렇게 2번 3번 더 무사히 물러줘야 이 곰팡이가 100수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곰팡이를 관리하는 방법을 후배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곰팡이 자원 관리 업무매뉴얼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현재의 자원관리 노하우가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자세히 정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매뉴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많이 대화하고 토의하고 함께 작업하고자 하였습니다.
위에서 제가 곰팡이를 예로 들어서 그렇치, 농업미생물은행에는 세균 자원도 많습니다. 이에 당연히 세균도 포함하고, 특허도 포함한 모든 자원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농업미생물은행(KACC) 구성원 모두가 함께 각자가 하는 현재 일을 업무매뉴얼로 정리하였습니다.
이것이 업무매뉴얼을 묶어서 만든 업무편람입니다. 아무쪼록 후배님들이 이 업무편람을 잘 활용하여 고추 탄저병 곰팡이를 포함한 26,000여 농업미생물자원을 잘 관리해 주시고 이를 또한 후배에게 잘 물려 주시기를 고대합니다.
<에필로그>
실상 이 업무편람이 농업미생물은행의 첫 편람이 아닙니다. 2005년에 농업미생물은행 설립 10년차에 향후 자원을 제대로 관리해 보자며 ‘한국농업미생물자원센터(KACC) 미생물자원관리 업무편람’을 만들었습니다. 1판인 셈이죠. 그리고 이를 보완하여 2010년에 ‘농업유전자원센터 미생물은행(KACC) 미생물자원관리 업무지침서 (2판)’를 발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12년만에 이번에 ‘농업미생물은행(KACC) 업무편람(3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12년만에 나오는 것이고 2판에 비해서는 ‘산업용 분양’, ‘국가미생물안전중복보존’ 등 매우 많은 부분이 추가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농업미생물은행(KACC)에 근무하면서 만드는 마지막 업무편람입니다. 그래서 여러 생각으로 센티멘탈해져서 이 글을 남깁니다.
<2022. 10. 22, 곰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