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사진 한장을 KOBIC 바이오소재 총괄지원단에서 페북에 소개해 주었네요. 먼저 바이오소재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바이오소재 총괄지원단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 뜻에 부응하고자 이 사진과 관련된 사연을 소개합니다.
표제 사진의 출발은 2002년입니다. 저는 그때에 네덜란드에 있는 세계 최대 곰팡이 보존기관인 westerdijk Institute (WI)와 국제공동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중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곰팡이 분류를 제대로 배웠지요.
그때에 아스페곰팡이(Aspergillus)를 연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온성 곰팡이를요. 토양에서 곰팡이를 분리했는데 토양을 물에 희석시키고 75℃에 30분간 열처리를 한 후에 살아남는 곰팡이를 분리했습니다.
제게 좋은 실험결과를 주었던 토양이 옆 실험실의 원*연 박사가 채취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원박사가 무슨 실험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전과 충남지역의 경작지 토양을 여러 점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고온성 아스페곰팡이를 분리하였는데 글쎄 여기서 신종 곰팡이 2종을 분리하였습니다.
미생물 좀 하는 사람들은 신종 뭐 그까이꺼 어디라도 많은데 하겠지만 그건 세균의 이야기고, 곰팡이는 신종이 매우 귀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곰팡이 신종을 꽤 많이 발표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곰팡이 신종을 보고한 사람이 다섯 손가락 이내입니다. 그리고 보고한 신종수도 모두 해서 10종이나 될까요? 혹시 넘는다고 해도 20종도 안 될 겁니다. 그런데 원박사가 준 토양에서 한 번에 2개의 신종을 건졌으니 우리나라 곰팡이 분류 역사에서도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곰팡이의 신종 여부는 현미경 관찰과 특정 유전자의 DNA 염기서열로 판별합니다. 당시 저는 농업생명공학연구원에 근무하는 덕택에 DNA 염기서열 분석법을 일찍 접해서 DNA 서열 분석을 통하여 신종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때가 해를 넘긴 2003년이었습니다.
신종으로 판단하였더라도 이를 학계에 보고하기 위하여는 또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곰팡이 포자와 포자를 형성하는 기관의 현미경 사진이 필요합니다. 포자도 2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무성세대 포자인 분생포자만 만드는데 고온성 아스페곰팡이는 유성세대인 자낭포자를 만들기 때문에 이것까지 현미경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특히 고온성 아스페곰팡이의 자낭포자는 다양한 형태를 띠기 때문에 광학현미경으로는 최고로 볼 수 있는 1000배까지 올리더라도 특징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으므로 더 높은 해상도를 가지는 전자현미경(SEM)을 이용하여야 합니다.
때마침 농촌진흥청 작물보호과에 전자현미경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이*성 선생님인데 전자현미경에 있어서는 전문지식과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자현미경 관리도 철저하여 사용을 위해서는 정해진 절차를 잘 준수해야 했습니다. 뭐랄까요? 분명 친절하게 잘 대해주는 데도 범접할 수 없는 권위 이런게 있었습니다.
저는 곰팡이를 3주 정도 키워 자낭포자를 형성시킨 후에 이를 깨끗하게 수확해 가는 것이 제가 한 일이었습니다. 그다음은 이 선생님이 백금 코팅을 하고 전자현미경을 세팅해 주었습니다. 물론 제가 현미경을 보면서 사진 찍을 대상을 찾기는 하였으나 실상 대부분의 일은 이 선생님이 해 주었습니다.
저는 전자현미경 사진을 찍을 2003년 말에 이미 WI에서 전자현미경 사진에 대하여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이 선생님은 이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였습니다. WI의 수준이 세계 최정상인데 이 선생님은 그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그때 함께 찍은 사진인데요, 이 사진에서 포자 하나의 크기가 10㎛ 정도입니다. 10㎛가 얼마의 크기인가 하면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점이 지름이 100㎛ 정도입니다. 즉 이 곰팡이 자낭포자를 78개를 모아 평면 원을 만들면 예리한 샤프 연필로 점하나 찍은 크기가 됩니다. 즉 지름 100㎛의 점이 되고 맨눈으로 겨우 식별이 됩니다.
그런데도 이 사진을 보면 디테일이 살아있죠? 1 ㎛, 아니 0.1 ㎛짜리 돌기도 하나하나가 구분됩니다. 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전자현미경 사진을 찍고도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논문제출이 늦었고 2005년 10월에 영국에서 발간되는 IJSEM이라는 저널에 논문 게재가 승인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다음에 발간되는 IJSEM 논문 저널 표지에 사용되었습니다.
전자현미경 관련하여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는데 WI의 상대 연구책임자였던 Samson 박사가 우리의 전자현미경 수준에 대하여 상당히 높게 평가하였습니다. 이때 김대호 박사가 우리 실험실에서 임시직원으로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는데 김 박사 역시 전자현미경 사진을 잘 찍었습니다. 결국, 김 박사는 그 당시에 임시직원이었는데도 Samson 박사님께 스카우트 되어가서 몇 달간 WI에 머물면서 전자현미경 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멋지죠? 이 사진이 김 박사가 WI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WI의 그 해의 대표 사진으로 선발되어 이듬해 WI가 세계 균학계에 보내는 연하장에 사진으로 채택되어 사용되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손재주가 있지요! 그리고 그때 우리는 열심히, 그리고 될 때까지 노력했습니다. 네덜란드 친구들보다 우리가 훨씬 더 성실했죠. 그런데 지금은 ....., 괜히 더 이야기하면 서로가 불편하겠죠
이러한 연구 덕분으로 저는 이 논문과 다른 논문을 합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학위 후에는 저는 실용적인 곰팡이를 연구 쪽으로 돌아서 메주곰팡이를 연구하게 되면서 이 사진에 관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조*기 원장님이 농업유전자원센터 건물을 크게 신축합니다. 그리고 우리 농업미생물은행이 농업생명공학연구원에서 농업유전자원센터에 편재되어 이사를 하게 됩니다. 신축한 유전자원센터는 어리어리한 건물이었고 사용 공간도 넓었습니다. 그때에 새로 생긴 건물의 빈 벽이 너무 허전하였습니다.
WI에서 수학하면서 멋있는 현미경 사진이 벽면을 장식했다는 것을 상기하고 곰팡이 사진으로 벽면을 장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채택된 사진이 이 사진입니다.
이때 JJ라는 디자인 업체가 벽면 장식을 도와주었는데 JJ가 편집한 사진입니다. 원래 전자현미경 사진은 색이 없이 흑백인데 이때 중심에 있는 4개의 포자에 색깔을 입히게 되지요! 역시 전문가들이라 색깔을 입히니 한결 멋있어 보입니다. 이 사진은 수원 농업유전자원센터 시절에서 전주 농업미생물과 시절까지 쭈욱 벽면을 장식하게 됩니다.
2020년에 농업미생물은행이 과기정통부 등 10개 부처가 공동 설계한 ‘제4차 국가생명연구자원 관리·활용 기본계획’에 따라 국가미생물클러스터의 중앙은행이 됩니다. 제4차 기본계획은 기존에 다부처에서 산발적으로 관리되던 생물자원을 14개 클러스터로 묶고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입니다. 이 때에 14개 생물연구자원 클러스터와 국민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곳이 KOBIC의 바이오소재 총괄지원단입니다.
지원단에서 많은 일을 하는데 그중에 클러스터의 활동을 국민에게 홍보하는 것이 있고 그 일환으로 바이오갤러리를 통하여 다양한 생물소재를 국민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도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토양샘플을 제공해준 원*연 박사님, 전자현미경 사진을 찍어준 이*성 선생님, 그리고 신종 논문을 지도해준 Samson 박사님, 벽면에 사진을 걸 수 있도록 유전자원센터 건물을 지어 주신 조*기 원장님, 그리고 사진을 채색해준 JJ 직원분.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이오갤러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홍보해준 KOBIC 바이오소재 총괄지원단.
과연 세상에 홀로 되는 일이 있을까요?
이 한 장의 사진 앞에서도 다시 한번 겸손해집니다.
P.S.) 이런 반전이!!!
이 글을 쓰면서 2006년에 게재된 논문은 다시 한번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 논문에서 신종의 표준균주로 사용된 것이 부여 토마토 밭 토양에서 분리한 KACC 41657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사진은 이 균주가 아니고, KACC 41645입니다. 이는 41657이 신종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WI의 Houbraken 박사로부터 특성 비교를 위하여 참조균주로 받은 균주였습니다. 2개의 사진을 함께 논문에 실었고 논문 표지에는 원 박사 토양 균주가 아니라 Houbraken 박사 균주의 사진이 채택되었던 것입니다.
헐! 원 박사가 준 토양에서 분리한 균주의 사진으로 생각하고 써 내려왔는데 이런?!
뭐 그래도 원 박사 토양에서 분리한 균주가 신종이어서 이 실험을 했고 사진의 균주도 도입하고 했으니까 스토리가 크게 바뀌지는 않겠네요.
원 박사 토양에서 분리한 균주가 신종임을 확인하고 국외에서 참조균주를 도입하였고 그 사진이 논문 표지로 채택되고 지금까지 사용되어 왔다는 이야기로 수정하여 이해하여 주기 바랍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