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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박 Mar 02. 2019

누룩곰팡이와 웨딩케익

곰팡이 이야기 5

‘이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모든 생물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모든 사람이 이름을 가지는 것과 비슷하지요. 대한민국 사람들의 이름은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시장, 군수, 구청장이 관리합니다. 한국 사람이니까 한글로 쓰고 상황에 따라 한문을 병행합니다.


그럼, 생물의 이름(학명, 學名, Scientific name)은요? 


한글로 쓸까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생물의 이름은 전 세계 공용으로 써야 하니까 한글 이름을 쓰기는 어렵겠지요? 그럼 영어로? 유럽의 강자 프랑스, 독일, 스페인이 동의를 했을까요? 그래서 채택한 것이 라틴어입니다. 라틴어는 고대 로마가 쓰던 언어인데 학명을 체계화할 무렵인 1700년대에 이미 어떤 나라도 쓰지 않는 죽은 말이었어요. 그러니 중립 언어가 되는 셈이지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어(死語)이므로 더 이상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름을 한번 지으면 그 의미가 딱 고정되는 장점이 있지요. 그래서 모든 국가들이 동의하였고 생물의 이름은 라틴어로 씁니다.


생물의 이름의 형식은요? 우리는 이름을 성과 이름으로 쓰지요. 홍길동! 홍은 성이고 길동은 이름입니다. 이명법이지요! 생물의 이름도 이명법을 채택하였습니다. 이명법(binomial nomenclature) 하니까 거창한 데, 하나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냥 생물을 두 단어(binomial)로 이름짓는다(nomenclature)는 겁니다. 이명법 이전에 생물의 이름은 복잡했습니다. 


예를 들어 코끼리 하면 ‘코로 물건을 들어올리는 큰 짐승’ 이런 식으로 길고 복잡했어요. 이 때 스웨덴의 린네(Carl von Linné, 1707 ~ 1778)가 그냥 모든 생물의 이름을 딱 두단어로 정리했지요! ‘코큰 짐승’ 이런식으로. 뭐 별것도 아니지요. 이런 일로 세계인이 칭송하는 학자라니 예전에는 학자 노릇이 쉬웠어요^-^.


‘코큰 짐승’은 두 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코큰’은 수식어이고 ‘짐승’은 피수식어입니다. 학명에서 피수식어를 속(屬, genus)이라고 하고 수식어를 종(種, species)라고 합니다. 


생물의 이름(학명) : 속(피수식어, 명사) + 종(수식어, 형용사)


그런데 왜 수식어를 뒤에 둘까요? 우리말과 영어는 형용사를 앞에 두는데 라틴어는 명사를 앞에 형용사를 뒤에 둔다네요.



로퀘포르티 치즈를 만드는 Pecnicillium roqueforti 는 ‘로퀘포르티 지방에서 온 (roqueforti)’ ‘푸른곰팡이(Penicillium)’ 란 뜻입니다. 생물의 이름, 학명 뭐 별것 아니지요.


영어 알파벳을 쓰는 서양에서는 학명만 봐도 대충 그 뜻을 알고 이름을 기억하고 의사를 전달하는데 별로 문제가 없습니다. 해서 서양에 많은 나라들은 그냥 Penicillium roqueforti를 방송에서나 신문에서 그냥 씁니다. 그런데 영어 알파벳에 익숙하지 않은 동양에서가 문제입니다.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인데 방송에서 페니실리움 로퀘포르티라고 하면 국민들이 뭔말인지 이해하겠어요. 


그래서 동양에서는 국민들 간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이 학명에 해당하는 자국어를 만듭니다. Penicillium을 중국에서는 청매(靑霉)로, 일본에서는 あおかび[青黴]로 우리나라에서는 ‘푸른곰팡이’로 했습니다. 모두 같은 뜻이지요. 이 곰팡이는 많은 종이 있지만 모두 푸른색이므로 이해하기 좋고 부르기 좋고 모두가 만족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독자들 십중팔구는 도망 가셨겠어요. 따라 오신분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곰팡이 중에서 가장 흔한 곰팡이가 Penicillium속과 Aspergillus속입니다. Pecnicillium 속은 푸른곰팡이 속으로 이미 잘 정착되었습니다. 그런데 Aspergillus는 아직 우리 국민이 동감하는 이름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곰팡이에 대하여 좋은 이름을 지어 줘야 합니다. 이해하기 쉽고 부르기 쉽고 사랑스런 이름으로!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하여 제가 이 곰팡이에 대하여 잠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Aspergillus 속은 4아속(subgenera) 20섹션(section) 339종(species)으로 구성된 대식구입니다. 식구들의 성격도 다양한데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Aspergillus oryzae(황국), Aspergillus luchuensis(흑국, 백국)은 장, 술, 차를 만드는 대표적인 발효곰팡이입니다. Aspergillus terreus는 이름 ‘테리우스’처럼 콜레스테롤 저해제인 로바스타틴(lovastatin)이라는 소중한 약품을 만드는 멋진 곰팡이입니다(Samson et al., 2014). 


그런가 하면 Aspergillus flavus는 지구상에 가장 강력한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aflatoxin)을 생성하고요, Aspergillus fumigatus는 면역이 약한 사람의 폐에 침입하여 목숨을 위협하는 병원균입니다.


한글 이름을 지으려면 먼저 라틴어 Aspergillus를 이해하여야 하는데요, Aspergillus는 카톨릭 교회의 의식을 집전하는 성수체(Aspergillum)에서 왔습니다.

< 그림 2.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수체, Aspergillium. 곰팡이 Aspergillus의 어원이 되었다. 위키피디아 인용>


이 곰팡이는 1729년에 Micheli가 발견하고 이름지었는데요, 이분이 신부님이어서 주변에서 이 곰팡이와 가장 닮은 것으로 찾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비교해 보세요.


<Aspergillus 속 곰팡이 한종. KACC 41176. 대(stipe)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머리(vesicle)를 형성하고 여기에 머리카락처럼 경자(phialide)가 형성되어 포자(spore)가 형성된다. 저자 사진>


그 다음 주변 국가와 우리나라의 상황인데요.


중국은 曲霉(곡매)속, 일본은 麴黴(こうじかび, 코오지카비)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누룩곰팡이라는 이름이 일부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Aspergillus를 우리나라에서 누룩곰팡이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반대도 많습니다.


첫째, 중국의 曲과 일본의 こうじ(코오지)는 누룩도 포함하지만 메주도 포함하고 발효를 위하여 곰팡이를 키워 놓은 많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를 누룩으로 번역하면 세계최고 식품 된장을 만드는 메주는 어떻게 합니까? 메주도 코오지고 曲입니다.


둘째, 우리나라 전통 누룩의 주요곰팡이가 정말 Aspergillus 맞습니까? 실제 우리나라 누룩에서 Aspergillus oryzae, Aspergillus luchuensis가 얼마나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까?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누룩에서 Rhizopus가 또는 Saccharomycopsis가 더욱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Rhizopus로 막걸리는 만드는 ㄱㅅㄷ(주)는 어떻게 ......, 우리가 Aspergillus를 누룩곰팡이속이라고 하면 일본이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실제 우리나라 누룩의 주는 그게 아닌데 그저 일본을 따라 가는 것은 아닌가요?


셋째, Aspergillus를 누룩곰팡이라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발암력이 큰 아플라톡신을 생성하는 Aspergillus flavus(=노란색)는 노랑누룩곰팡이가 되고,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Aspergillus fumigatus(=연기)는 연기누룩곰팡이가 되는데 노랑누룩곰팡이가 만든 독소로 암에 걸리고, 연기누룩곰팡이로 사람이 감염되어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누룩이 편안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대안은요?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고민입니다. 평소에 많은 생각을 했는데 이거다 싶은 것을 떠올리지 못했어요. 좋은 의견을 주세요.


1) 소극적인 대안으로 발효곰팡이를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이는 중국의 ‘곡(曲)’자와 일본의 국(麴, 코오지)자를 우리나라에 맞게 해석한 것입니다.


2) 풍선곰팡이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는 원발명자 Michelli가 대(줄기)에서 부풀어 오른 곰팡이를 보고 성수체곰팡이라고 한 것처럼 이 곰팡이의 모양이 마치 막대 풍선 같아서 제안해 보는 이름입니다.


3) 아스페곰팡이를 생각해봤습니다. 곰팡이의 속명이 수천종인데 일일이 우리나라 이름을 붙이기가 어렵습니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그냥 원 속명의 앞 3글자를 따서 말하기 좋고 쓰기 좋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 곰팡이를 발음대로 읽으면 ‘아스페르길루스’ 인데 앞의 3글자를 따서 아스페곰팡이라고 한 것입니다.


환경부의 생물자원관에서 생물의 학명에 대한 우리말 새이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아주 뜻 깊은 일입니다. 곰팡이의 경우에 이미 작년에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곰팡이의 많은 속명에 대하여 우리말이름을 부여하고 책자를 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달 8월부터는 이 이름을 DB화하여 국민에게 공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Aspergillus’가 '누룩곰팡이'로 되어 있습니다. 이대로 DB화되고 일반인에게 공개되면 이름의 특성상 다시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20여년을 함께해온 Aspergillus가 날 보고 눈물 흘리는 것 같습니다.


‘이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https://www.youtube.com/watch?v=Ym4hzzvHiOg


(그림 4, 영화 쎄시봉, 네이버 영화)


P.S)  Aspergillus의 눈물을 닦아줄 좋은 이름과 의견 요청합니다.


(참고문헌).  Samson RA et al., 2014. Phylogeny, identification and nomenclature of the genus Aspergillus. Stud. Mycol. 78:14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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