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승철 Jan 27. 2023

중국에서 만난 김구 선생님 2-3

내 사명을 찾다

"나는 우리나나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백범 김구


김구 선생님의 백범 일지를 읽다


중국 연변에서의 중국어 공부 후반기 어느날 사춘형 집 책꽂이에 꽂혀있던 백범 김구 선생님이 쓴 백범일지라는 책을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그 당시까지 나는 김구 선생님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셨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그의 삶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냥 우리나라에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젊은이었다. 공적인 것, 군대를 가는 것, 애국하는 것 다 관심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 돈 많이 벌고 잘 살면 되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었다. 이러던 와중에 백범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을 발견한 것이다.


침대에 누워 그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책에는 김구 선생님의 인생과 독립과 나라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이야기가 씌여 있었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나에게는 그의 삶이 놀라웠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이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우리나라와 한민족 그리고 우리가 이룩한 역사에 대해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목적이 없었던 나의 삶에 이정표가 주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보면 고리타분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조상들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고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었다는 것이 소중해보였다.


우리의 고토 만주에서 우리의 역사를 보다


다행히 이 곳은 만주 땅 아니었던가. 만주 땅에는 우리의 태초의 고향이 있었다. 우리 민족이 생겨난 곳, 최초의 고대 국가들, 부여, 고구려가 있는 장소였다. 나는 사촌형에게 말하여 우리나라의 역사적 장소들을 가보자고 부탁하였다. 어느날 형은 운전사가 있는 차를 빌려와 여행을 시켜주었다. 맨 먼저 간 곳은 장수왕릉과 광개토대왕릉이었다.


장수왕릉과 광개토대왕릉은 피라미드처럼 생겼는데 겉에는 큰 고인돌처럼 생긴 돌이 주변을 받치고 있었다. 장수왕릉은 상태가 좋았지만 광개토대왕릉은 여기저기 무너져서 흡사 언덕같았다. 하지만 그 위엄은 천오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만주가 우리의 땅이었던 그 당시 우리 민족이 강대국을 이루었던 상상을 해보았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광개토대왕비도 보았는데 내 키와 몸의 몇배가 컸다. 그 모습이 매우 장엄하여 잊을 수가 없다.


장수왕릉에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사춘형이 강을 가르키며 보라고 하였다.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하려고 하다가 강에 막히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강이라고 하였다.


부여, 고구려 관련 유적들을 돌아 본 이후에 이제는 우리의 아픈 역사였던 독립운동 장소들을 가보았다. 먼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썼던 민족 시인이었던 용정에 있는 윤동주의 생가에 가보았고 윤동주를 포함한 많은 의병장들과 독립 투사들을 배출한 용정의 대성중학교에 가보았다. 이 곳은 여기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근대교육을 실시하고 항일투사를 육성하는 곳이었다.


백두산에 오르다


중국 만주를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가야하는 곳을 한군데 빠뜨렸다. 백두산이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 아닌가... 나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유학생 몇분과 백두산에 가기로 결정했다. 백두산 입구에 도착하니 으슬으슬하게 비가 왔다. 나는 준비해온 우비를 입고 등산을 시작하였다. 초입에는 우리를 맞이하듯 엄청난 크기의 백두산 폭포가 장엄하게 우렁찬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를 압도하는 기운을 품은 백두산이었다.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려면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한가지는 suv같은 차를 타고 올라가거나 아니면 계단을 올라가거나였다.


'계단을 올라간다고?'


아직 젊었기 때문에 차를 타기보다는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차를 타고 백두산 천지에 간다면 백두산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도착 전까지만 하더라도 단순한 계단인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아래에서 꼭대기까지 끝없이 이어진 터널이 있었고 그 안에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백두산 천지만 볼 수 있다면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터널이 끝나자 다시 계단이 나왔다... 하지만 주변에 펼쳐진 풍경은 다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는 걱정을 누그러뜨릴 만큼 강렬했다. 갑자기 들판이 나타났고 더 들어가자 길 양쪽으로 우뚝 선 계곡이 흡사 장엄한 반지의제왕의 중간땅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안개가 자욱했고 신비로웠다. 왜 백두산을 영산이라고 그러는지 알것 같았다.


2008년 백두산에서


천지에 다다르자 다행히 안개가 걷혔다. 백두산에서 안개가 없는 천지를 보는 것은 천운이라고 할 만큼 보기 힘들다. 다행히 그날은 나에게 천운이었다. 하늘이 나에게 백두산을 허락한 것이다.


백두산 천지의 물이 곧 보였다. 엄청난 크기의 호수가 산 꼭대기에 있었다. 그 물 주변으로 높은 언덕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천지에 다가가서 발을 담고 손을 담갔다. 물은 매우 맑고 차가웠다.


백두산에 오른 순간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만주의 여행 끝에서 내 마음 속에서는 여렴풋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아보자는 마음이 밀려들어왔다. 수많은 조상들과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그 뜻을 이어받고 싶었다.


아직은 무계획이지만 이렇게 내 삶의 목적을 찾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만강에서 북한땅을 바라보며 2-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