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를 여행하고 백두산을 다녀온 이후 그리고 조선족이라고 불리우는 중국동포들을 만난 후부터 북한에 대해서도 많은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다. 또한 이 곳 연변에서 지내면서 한국에서 온 선교사분들이 탈북을 한 탈북민들을 만나고 돕는 것을 듣고 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탈북자와 탈북문제에 대해 관심이 갔다. 연변은 두만강을 끼고 북한과 마주보는 국경지역이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탈북자 분들이 종종 탈북하여 도움을 청하는 곳이었다.
어느날 나는 도문역을 통해 두만강에 가면 북한 땅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사촌동생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도문역으로 가기 위해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 70년대 정도의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낯설지만 정감가는 풍경이었다. 대부분의 집은 기와집으로 되어있는데 기와가 두가지로 구분된다고 하였다. 하나는 조선족, 즉 중국동포들이 사용하는 기와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한족이 사용하는 기와라고 하였는데 그 구분 방법은 아쉽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드디어 도문역에 도착했다. 도문은 중국어로 Tumen 투먼이라고 발음하는데 중국에서는 두만강을 투먼강이라고 부른다. 조선 말기 백두산정계비에서는 '서쪽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고, 동쪽으로는 도문강을 경게로 삼는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를 토대로 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정할 때 조선에서는 도문강이 송화강 지류라고 하여 간도를 우리땅으로 포함시키려고 했으나 중국은 두만강이라고 하였고 결국 이 회담은 양측의 의견 마찰로 중단되어 있었다. 후에 을사늑약을 통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갖고 있었던 일본이 청나라에게 만주 지역의 철도 부설권과 광산 채굴권을 갖는 대신 조선의 간도 지역 관할권을 넘겨버린다. 언젠가는 꼭 되찾아와야 할 간도 땅인 것이다.
도문 지역은 또한 탈북자들이 많이 있는 지역이었다. 도문역에 도착하여 두만강 쪽으로 걸었다. 걷는 도중에 당나귀들과 파인애플과 양꼬치를 파는 노점상인들이 보였다. 근처 상점에는 북한 담배, 그림, 지폐 등 북한 관련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북한 지폐를 기념품으로 몇장 구입하였는데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걷다보니 드디어 저 앞에 두만강이 보였다. 강 건너 초라한 건물과 민둥산을 보니 정말 저 앞에 북한이 있는가 싶었다. 북한 쪽 초라한 건물들 사이에 조금 좋은 건물들이 보였는데 세트장이라는 설이 있었다. 북한도 자신들이 잘 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가 보다.
도착하니 폭이 넓지 않는 두만강이 앞에 펼쳐졌다. 이 정도면 탈북자 분들이 충분히 헤엄쳐서 건널 만 한 거리였다. 다리에는 북한과 중국 사람들과 물건들이 왕래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 북한이 있다니'
나는 한국에 살면서 북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 먼 호주에 유학하면서도 북한은 바로 우리 위에 있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먼 국가로 생각하고 살았다. 부끄러웠다...
두만강 저편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북한 쪽을 바라보았다. 저 안에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 살고 있구나... 지금은 자유가 탄압받고 가난한 나라를 보면서 언젠가는 정말 통일에 이바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한을 통일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고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통일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고 주변국에 눈치나 보면서 휩쓸리지 않는 좀더 부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었다. 2022년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대미 대중 정책이 전략적 모호성 아닌가... 결국 전략은 없고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이후로 나는 가슴에 북한주민들과 통일을 가슴에 품고 살게 되었다. 2022년 지금까지 북한과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도 하고 연구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