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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Jan 31. 2023

군에서 리더십을 배우다 4-3

자대 배치를 받고 파주로 갔다. 파주 공군부대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부모님 집이 있었지만 비상상황에 대비하여 주중에는 부모님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부대에서 주는 숙소를 받았다. 주말에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군복을 입고 다음날 부대에 전입신고를 했다.


"필승" 부대장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다. 몇백명 밖에 안되는 소규모 부대라 나는 소위때부터 중대장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보통 처음 전입을 한 장교는 소위로서 말단 장교였다. 그리고 직급은 보통 하나의 부서를 관리하는 소대장부터 시작하는게 대부분이었는데 보급, 수송, 시설, 헌병 등 4개 부서를 거느리는 장이 된 것이다. 거의 100명 정도를 관리하는 중견기업 부사장 직급이 되었다. 사회로 따지면 신입사원에게 부사장 직급을 맡긴 거나 다름이 없었다.


군대는 일단 일반 병사-부사관-장교 3 종류로 나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군 복무는 병장에서 마치는 병사이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일반 병사로 군 복무를 지원해 다녀온다. 다음 부사관은 병사와 장교 사이의 계급으로 이때부터는 직업 군인이다. 군인을 직업으로 하기 위해 부사관으로 지원하여 하사부터 원사까지 복무한다. 그 다음 계급은 장교로서 소위부터 별을 단 장군까지의 계급을 뜻한다. 서로 처음부터 지원하는 자체 프로세스가 있고 다들 자기들만의 세계가 있다.


문제는 나이와 계급사이의 애매모호함이다. 나처럼 장교로 임관하면 소위가 보통 25살부터 시작한다. 부사관은 많은 분들이 40살에서 거의 60살로 은퇴를 앞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군대 계급상 25살 소위가 60살보다 윗 계급이기 때문에 인터넷에 자주 떠도는 25살 소위가 60이 다되어가는 부사관에게 "자네가 주임원사인가"라는 썰이 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나는 그 당시 군생활을 시작하는 28살이었고 내가 직접 관리해야 할 사람들 중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내가 아무리 계급상 위지만 부사관 분들은 나를 애송이로 보고 무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병사들 또한 나보다 대부분 군생활을 오래한 친구들이라 겉으로는 나를 따르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어떻게든 나를 속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하는지 답이 안보인다'


나는 일단 내가 관리하고 있는 100명의 병사와 부사관들에게 리더로서 인정을 받아야 했다. 업무도 잘 몰랐기 때문에 내가 물어보거나 무엇을 부탁해도 들어주는게 없었다. 회의를 하기 위해 부서장을 불러도 잘 오지도 않았다. 군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다보니 대부분 매우 거칠었다. 나를 쥐고 흔들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심했고 내성적인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이 참에 성격도 개조하고 정말 칭찬받는 리더가 되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리더가 되는 방법


일단 나는 중대장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지시만 하고 실제로 실무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병사들이 짐을 나르거나 눈이 와서 눈을 쓸어야 할 때는 함께 일을 하였다. 한번 눈이 오면 3키로가 되는 길을 제설해야 했는데 내 일중 하나는 눈을 제설하기 위한 차량 준비, 그리고 염화칼슘 준비, 제설 도구 준비, 인원 준비 등 모든 셋팅을 해놓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제설해야 하는지만 지시만 하면 되었는데 나는 모든 준비를 다 끝내놓고 맨 앞에서 사람들을 인솔하며 솔선수범하였다. 일과 때는 병사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그들의 고민도 듣고 조언도 해주다보니 스스로 나를 돕는 병사들이 많이 생겼다. 우군이 생긴 것이다.


병사보다 더 다루기가 힘든 분들이 부사관 분들이었다. 병사들은 일단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적었기 때문에 나를 형처럼 따랐는데 부사관 분들은 일단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일을 하려면 그들을 관리하고 지시를 해야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나는 사관학교 출신의 강한 리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내 성격의 장점인 부드러움과 강함을 적절히 섞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책에서만 읽던 서번트 리더십, 성경의 예수님처럼 섬기는 리더십으로 시도해보자고 생각하였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내가 관리하는 보급, 수송, 시설, 헌병 반에 찾아가서 병사와 부사관 분들에게 음료수를 하나씩 드리면서 자주 대화를 했다. 일단 절대 부사관 분들을 계급으로 누르지 않았다. 항상 존중하며 일을 지시할 때는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절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 않았다. 잘 먹지 못하는 술을 부사관 분들과 일과가 끝나면 마시면서 그들과 친해지길 노력했다. 우리 부대 회식이 있을때는 부사관 분들이 한명씩 따라준 술을 오십잔을 마신 적이 있었다. 나는 가끔씩 취할때면 몰래 편의점에 가서 숙취음료를 먹고 다시와서 마시곤 했다. 다들 모르게 화장실에서 속을 여러번 비우고 다시 태연하게 술을 마셨다. 절대 술을 거절하지 않았다. 생일이 되면 케익을 사드리고 함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함께 축구도 하고 그렇게 일년 끝이 나가왔다.


일년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인사 고과평가를 하는 것이다. 나는 4개 부서의 장이기 때문에 내가 관리하는 한 30명 정도의 부사관 분들의 인사평가를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나 말고도 다른 장교들이 맡고 있는 부서의 부사관 분들의 인사 고과도 함께 했기 때문에, 그리고 점수는 비율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다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없었고 어떤 분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아야만 했다.


나는 그 당시 소위로 장교 중 가장 낮은 계급이었고 내 선배들은 중위, 대위로 나보다 높았다. 그래서 보통 소위 막내가 맡은 부서의 부사관들은 계급에 밀려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내 부서 사람들을 통솔하기 위해 내가 그들을 책임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고 그래야 내 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사평가가 있던 날 나는 선배들에게 밀리지 않고 내 부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 고과를 줄 수가 있었다. 사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선배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전투적으로 인사 평가에 임했다.


다음날 내가 장교 중에 가장 낮은 계급이었지만 자신들을 위해 목숨걸고 싸워줬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이후로 부사관 분들이 나를 대하는게 달라졌다. 나를 진심으로 상관으로 그리고 리더로서 인정해주기 시작하였다. 다. 나는 그렇게 리더가 되고 있었고 일년이 지나 진급을 해서 중위가 되었다. 100여명이 넘는 내 부서원들은 이제는 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동지애를 느끼며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제대까지는 2년이 남았다.


내가 느낀 중요한 리더십의 두가지 요소


내가 군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절대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압적으로 대하면 그 사람은 나를 따를지라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진심으로 대해야 하고 인간으로서 그 사람에게 실수를 하여 실망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약속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고 계급이 낮다고 절대 인격적으로 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사권에 있어서 승진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승진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고 최대한 공평하게 인사평가를 하였다. 그렇게 나를 따르는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을 만들었다.


두번째는 내 자신이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들이 마음 껏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을 함에 있어서 책임자가 책임을 지지 못하면 실무를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 특히 직업 군인은 공무원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리스크가 있는 일은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하고 마음껏 일을 하시라고 하였다. 다만 그 일들이 규정에 맞는 일인지, 그리고 진행상황을 체크해 갔음은 물론이다.


이제 제대를 앞두고


나는 파주의 산 속의 부대에서 3년을 지냈고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산 속의 작은 부대는 장교의 수가 많아야 4명이고 대부분 수십명의 부사관, 수백명의 병사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장교들은 특히 실무자인 부사관 분들과 어떻게 지내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갈라졌다. 그래서 "자네가 주임원사인가"라는 마인드로는 절대 여기서 버틸 수가 없다. 나와 비슷한 곳으로 배치를 받았던 내 동기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1년만에 큰 비행장으로 갔다. 들어보면 이유가 하나같이 부사관 분들과의 마찰이었다.


2016년 말 공군을 제대하다


다행히 나는 부사관 분들과 3년 내내 끈끈한 사이로 지낼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제대하기가 싫을 정도로 군 생활을 재미있게 했다. 드디어 제대할 날이 다가왔고 제대하기 위해 인사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마중나와주셨다. 가끔씩 군생활을 못하면 제대할 때 마중나오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나 마중나오는지 그 숫자로 그 사람의 군생활을 평가하기도 하였다.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작별 인사를 받고 제대하였다.


제대를 하고 부대를 나오는데 지난 3년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도의 마음과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으로 내가 일했던 부대를 몇번이고 뒤돌아보았다.


나는 이곳에서 20대의 어린 나이에 리더십을 배울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부족한 나를 3년간 한 마음으로 따라주었던 부대원들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이러한 리더십 경험은 후에 내가 정치를 하던 무엇을 하던 분명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내 군생활의 이야기는 마친다. 다음 일년은 코이카 인턴으로서 시리아 난민들을 돕는 이야기와 본격적으로 나를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구체화시켜줄 옥스포드 대학 공공정책 석사로 입학한 이야기를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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