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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Feb 05. 2023

옥스포드 대학에서의 첫 주 6-2

70여개국 120명의 공공정책 동기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는 공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으로 사회에서 연약한 이들을 한없이 사랑하시며 그 삶에 깊이 간섭하시는 속성이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아버지는 공부를 무척 좋아하시고 잘 하셨다. 아버지는 중고등학교때 늘 전교 순위권 안에 드셨고 도내 경시대회 트로피들이 집에 있었다. 특히 지리학을 좋아하셔서 박사도 하고 교수가 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집이 무척 가난하셔서 직업이 안정적인 사범대에 들어가셨고 선생님이 되셨다. 그 아쉬움 때문인지 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하시면서도 90년대에 유학가는 사람들이 많이 없을 당시 30대 중반의 나이로 휴직을 하시고 호주 시드니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셨다. 그래서인지 중고등학교 때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를 늘 아쉬워하셨다.


옥스포드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매우 기뻐하셨다. 20살때 까지만 해도 공부에 관심없었던 내가 옥스포드에 합격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효도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옥스포드와 영국 첫인상


공항에서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긴장이 되었다.


'과연 최고의 학생들이 모이는 곳에서 내가 수업을 따라 갈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어떻게 되든 일년동안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한번 보고 이해를 못하면 두번 세번 보면 된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시드니 대학에 다닐 때도 항상 나는 수업이 끝나면 교수의 사무실로 찾아가서 모르는 것을 계속 물었다. 다행히 한번도 귀찮게 생각하는 교수님들은 없었다. 그저 용기를 가지고 포기만 안하면 될 뿐이다.


어느덧 비행기는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다행히 여기저기서 들리는 영국식 영어가 호주의 영어와 비슷해서 낯설지는 않았다. 런던에 저녁에 떨어져서 한시 바삐 버스를 타고 옥스포드시로 떠났다. 버스를 타면서 모든 것이 긴장이 되었다. 꼭 큰 전투를 앞둔 사람처럼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 있었다.


두시간 정도 후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렸고 하숙을 하려고 하는 집으로 찾아갔다. 걷는 길에 주변을 보니 흡사 15세기에 온 듯한 정취가 느껴졌다. 오래되었지만 웅장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의 석학들이 모이는 대학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다.


30분 정도 걷자 숙소에 도착하였다. 그 곳은 옥스포드로 가기 전 급하게 구한 숙소였고 옥스포드에서 박사학위를 하시는 한국의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다. 낯설었지만 그분들은 날 친절하게 맞이해주셨다. 내 방은 여행자들이 머무는 곳이라 책상도 없이 작았기 때문에 곧 기숙사를 다시 구해야할 것 같았다.


전세계 70여개국 120명의 동기들과의 만남


내가 옥스포드에 도착한 날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일요일은 쉬면서 월요일에 학교를 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학교로 갔다. 공공정책학과 건물은 따로 크게 현대식으로 지어져있었는데 4층 정도의 원형 건물이었고 강의실은 지하 1층에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하시는 분들이 강의실에 가면 각자의 이름이 표시된 좌석이 있으니 내려가보라고 하셨다. 참고로 건물 안내데스크에는 두분의 멋지고 위트있는 영국 여성분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꼭 친 누나를 만난 것 처럼 항상 밝게 웃으면서 환영해주었다. 옥스포드로 다시 간다면 꼭 만나고 싶은 분들이기도 하다.


강의실로 내려가자 수백명이 들어갈 것 같은 강의실이 나왔고 강의실 오른쪽 편 좌석에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앞으로 1년간 공부할 내 지정석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내 양쪽 옆자리는 인도에서 온 여학생과 싱가포르 학생, 앞에는 중국에서 온 친구, 뒤에는 미국 학생들이 앉았다. 특히 옆자리에 앉은 인도 여학생에게 수업시간에 공부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학교에 며칠 늦게 와서 이미 오리엔테이션은 끝나고 없었지만 저녁에 웰컴 파티가 있다고 하여 참여하였다.


저녁에 정장으로 갈아입고 웰컴파티에 가자 무대 앞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고 와인과 샴페인 그리고 고급진 음식들이 있었다. 흡사 고급 레스토랑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공공정책 학과 학생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 서로 소통과 사교 매너도 익히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학생들 한명 한명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였고 항상 외국에서는 물어보는 것이 전에 무엇을 했느냐였다. 나는 항상 공군장교라고 말하고 다녔다. 서로 통성명이 끝난 후 정리해보니 고위 경찰, 정치인, 외교관, 공무원, 의사, 변호사, 국제기구 출신, 인권 운동가, 시민활동가, 심지어 박사학위가 이미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다들 나처럼 석사학위가 이미 1개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 나는 몽골에서 온 정치인, 싱가포르 공무원 친구들, 캐나다 시의원, 베네수엘라 인권변호사, 중국, 일본 외교관들, 일본 중앙은행 출신 친구, 시리아에서 온 친구, 미얀마, 캐나다 출신 의사와 친해졌다. 특히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의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인지라 나중에 공직에 갔을때 인맥을 활용할 수 있을까 싶어 중국, 일본 외교관들과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항상 모이면 커피타임을 할 때나, 점심을 먹을때나, 저녁을 먹을 때나 각 나라의 정치와 정책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는 고리타분한 주제라 말도 못했는데 여기서는 항상 이런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어서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너무 좋았다. 각 나라가 어떤 정치 사회적 이슈가 있는지 그리고 그 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각자 사명을 가지고 온 친구들이었다. 시리아 출신 친구는 내전과 테러로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왔다고 했고 아프리카 출신 친구들은 자국의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경제 발전 방법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남미의 온두라스 친구와 베네수엘라 친구는 민주주의를, 팔레스타인 친구는 평화를 찾으러 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친구는 브라질에서 온 친구였는데 눈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옥스포드에서는 학교 비용으로 그 친구의 눈이 되어줄 친구를 고용하여 필기를 대신 해주고 공부도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학업을 문제없이 이어갔고 결국 졸업하여 브라질에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다. 그 친구는 항상 내 목소리를 들으면 Ohk, 옥! 이라고 웃으며 반가워했다. 그 당시 내 영어이름은 내 성을 따서 Ohk이었다.


나 또한 한국에서 좋은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그 다음 비전을 찾고 싶었다.


옥스포드 블라바트닉 공공정책 대학원


옥스포드 공공정책 강의실에서


웰컴 파티


웰컴파티에서 동기들과. 왼쪽부터 나, 일본, 싱가포르, 아프가니스탄 동기들


아프리카 출신 동기들 (다들 대통령 아들이거나 부족장 아들 출신이라고 했다)



#영국 #옥스포드 #공공정책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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