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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Feb 12. 2023

옥스포드에서의 마지막 시험 6-9

꽃을 다는 옥스포드의 이상한 시험 문화

"Dominus Illuminatio Mea 주님은 내가 가는 곳을 밝혀주시는 등불" 옥스포드 대학교의 표어


옥스포드의 시험 문화


3학기가 마무리될 시점에 마지막 시험 일정이 잡혔다. 3일 동안 보는 기말 시험 스케줄이 나왔다. 하루에 2-3과목씩 몇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논술을 쓰듯이 쓰는 주관식 문제를 푸는 것이다. 호주에 있었을때도 느꼈지만 시험에서는 단 한번도 객관식 문제가 나오진 않았다. 시험도 한 과목당 2-3시간 정도를 본 것 같은데 그 시간동안 집중해서 내가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답안지에 쏟고 나와야했다. 호주와 영국은 같은 영연방 국가라 시험 방식이 비슷하다.


시험을 몇주 앞두고 학교에서 늦게까지 남아 공부를 하였다. 나는 마음이 맞는 동기들과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시험 공부를 하며 모르는 것들을 서로 물어보며 공부하였다. 경제학같은 것은 답이 어느정도 정해져 있어서 할만 했는데 정치철학 과목은 답이 정해져있다기 보단 예를들어 양극화 등 현실 문제를 분석하고 철학적 이론을 대입하여 내 의견을 만들고 입증하는 논리적 과정이 중요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공부에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터디 모임 동기들과 함께 서로 답을 적어 설명을 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연습을 하였다.


또한 정치철학 시험의 특성은 내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내 의견을 적고, 다른 이론을 가져와 내 의견의 단점과 약점을 파헤치고 그 다음 다시 반박하고를 3-5번 정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내 의견을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 보강을 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다듬어 간다. 나중에는 도저히 내 의견에서 무엇을 더 보강해야 하는지, 더 약점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머리를 싸메면서 생각과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답을 내는 것보다는 그 사고 과정의 훈련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드디어 시험날 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 장소는 내가 공부하는 곳이 아니고 모든 옥스포드의 학생들이 시험으로 모이는 장소가 있다. Examination School이라고 엄청나게 오래된 교회 예배당 같은 건물이 있는데 그 안에서 시험을 보아야 한다. 복장도 제대로 갖추어야 했다. 입학식때 입었던 검은 정장과 흰 셔츠를 입고 옥스포드를 상징하는 가운을 둘러야 하고 걸을 때 학사모를 옆에 끼고 걸어야 한다. 그리고 흰 나비 넥타이를 맨다. 이정도면 무슨 꼭 행사를 뛰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옥스포드의 시험 문화는 특이했다.


옥스포드의 Examination School. 학생들이 장미를 달고 있다.


더 특이한 것은 시험을 보는 내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다는 것이다. 첫 시험날은 흰색, 시험 둘쨋날은 핑크색 카네이션을, 마지막 날은 빨간색 카네이션을 단다. 나는 사실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시험 장소에 도착하니 동기들이 서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었다.


드디어 시험 장소에 들어갔는데 큰 홀에 수백개의 책상과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꼭 유럽의 오래된 교회 예배당처럼 웅장했다. 스태인드 글라스 유리창 사이로 빛이 들어와 학생들을 비추었다.


그 순간 옥스포드의 표어가 떠올랐다. "Dominus Illuminatio Mea" 주님은 나의 빛, 조금더 깊게 해석하자면 주님은 나의 길을 밝혀주시는 등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빛이 모든 학생에게 비추는 순간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나는 항상 시험을 볼때 5분정도 기도를 드린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너무 부족한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항상 빌려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래서 시험 시간이 촉박했지만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5분간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가 부족하고 똑똑하지 않으니 공부한 것들을 모두 기억나게 하시고, 올바른 방향으로 시험 문제를 적을 수 있도록 지혜를 빌려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는 'Dominus Illuminatio Mea'였다.


무사히 첫 시험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내 가슴에 달란 하얀 카네이션을 보고 시험을 잘 보라고 응원해주었다. 이래서 카네이션을 다는 것인가 보다.


둘째날이 지나 셋째날 드디어 마지막 시험을 보기 위해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았다. 시험을 보러 길을 걷는데 역시나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고 마지막 시험을 잘 보라고 응원해주었다. 시험장에 도착하여 드디어 결전의 마지막 시험을 보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공부한 것들을 모두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쓰고 펜을 내려놓았다. 드디어 모든 시험이 끝난 것이다. 일년간의 옥스포드에서의 모든 과정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지난 옥스포드의 생활과 20살 초반에 몇년간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방황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정말 치열하고 힘들었던 지난 날이었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갑자기 축제가 펼쳐졌다. 사람들이 풍선과 밀가루 등을 들고 있었다. 이게 뭐지... 하는 순간 물폭탄과 페인트 그리고 밀가루 세례가 이어졌다. 긴 공부와 시험의 여정이 끝났다는 의미의 행사였다. 나 또한 물과 밀가루를 친구들에게 던지며 축제를 만끽하였다. 생각해보니 옷을 입고 꽃을 다는 순간 축제로 들어온 것이었다. 모든 시험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날라가며 시험을 축제로 승화시킨 옥스포드의 시험 문화에 다시한번 놀라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옥스포드에서의 공부가 거의 막바지에 오게 되었다.


지금 이순간이 기적같았고 행복했다.


32살, 2018년의 어느날이었다.


시험이 끝난 후 시험장 앞에서 축제를 벌이다


두번째 시험을 상징하는 핑크색 카네이션을 달았다. 다행히 머리에 안달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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