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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Feb 12. 2023

싱가포르와 미얀마로 갈 결심을 하다 6-11

옥스포드의 졸업 리포트를 쓰기 위한 여정

옥스포드를 졸업하려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졸업을 위해 관심이 있는 나라에 가서 정책 연구를 하여 정책 리포트를 쓰는 것이었다. 전쟁, 테러, 기아, 양극화, 질병, 독재 등등 세상에는 다양한 이슈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가지 주제를 정해서 그 나라로 직접 가서 그 나라의 연구소나 정부기구, 국제기구 등에서 일하면서 그 나라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정책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그것이 옥스포드에서의 마지막 우리의 사명이었다.


예전에도 한번 적었지만 맨 처음에는 베네수엘라로 가서 독재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해 연구를 해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인권 변호사였던 친구가 위험하다고 절대 못가게 말려서 그곳은 일단 포기하게 되었다.


싱가포르의 Choson Exchange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주제를 빨리 다시 정해서 학교에 계획서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일단 내 주제는 폴콜리어 교수님과의 대화에서 인사이트를 얻은 주제인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통한 정상국가화"가 1순위였다. 그래서 당시 옥스포드 공공정책 박사학위를 공부하고 있었던 북한 전문가였던 백지은씨에게 내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백지은씨는 하버드 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하버드에 있을때 탈북민의 스토리를 접한 이후 충격을 받고 10년동안 꾸준하게 탈북민 문제와 북한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고 했다. 유명한 미국의 대학 출판사에서도 북한 관련 책을 출판하여 미국과 한국에서도 북한 관련하여 종종 인터뷰를 하는 유명한 북한학 학자이자 북한 인권 운동가이며 현재 루멘이라는 북한 인권 단체를 세워 운영하고 있으며 하버드 벨퍼 연구소 북한학 분야 연구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나는 백지은씨에게 싱가포르에 있는 대북 NGO인 Choson Exchange라는 곳을 소개받았다. Choson Exchanges는 알아보니 국내외적으로 매 유명한 곳이었다. 10년전 싱가포르 청년들이 세운 NGO였으며 전 세계의 경제학, 경영학 교수들을 초빙하여 북한에 보내 북한 주민들에게 경제학과 경영학 그리고 기업가정신을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폴콜리어 교수님에게 들었던 북한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뿌리내리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폴 콜리어 교수님은 북한에 기업가 정신이 많이 생겨 기업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하셨다. Choson Exchange에서 정확히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북한의 도시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는데 평소 북한의 도시에도 관심이 있었던 터라 좋은 기회였다.


나는 곧바로 Choson Exchange의 부대표 격인 Calvin Chua라는 담당자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방문 연구원으로 싱가포르에 와서 잠시 함께 일하고 대신 연구를 위한 북한 관련 데이터를 받기로 하였다. 서로 윈윈이었다.


미얀마의 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지부


두번째 내가 접촉했던 곳은 미국에 본부를 둔 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NDI)였다. NDI는 민주주의 연구소였는데 각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와 공정한 선거 감시 등, 민주주의에 관련된 활동을 하는 유명한 기관이었다. 나는 미얀마에 있는 NDI지부에도 방문 연구원으로 지원하였는데 민주주의에 대해 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미얀마에도 지원한 이유는 친한 동기 때문이었다. 동기 중에 미얀마 출신 여학생이 있었는데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친구였으며 나와도 개인적으로 매우 친했다. 어느날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미얀마에서 민주주의 운동을 하다가 군부에 의해 숙청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그 이후로 미얀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리서치도 하고 많은 것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미얀마는 다행히 얼마 전 처음 처음으로 민주주의 선거를 해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설립한 정당인 민주주의 민족동맹 NLD가 국회의원으로 대거 선출되었다. 하지만 미얀마는 당시 아직 군부가 실권을 잡고 있어 정권 유지가 위태했고 더 나아가 미얀마에서는 소수 민족들 또한 오랜 시간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관찰하고 민주주의 연구를 하기 위해 NDI(민주주의 연구소)에 지원하였고 미얀마 NDI 지부에서 흔쾌히 와서 일하라고 하였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쪽 일을 돕고 대신에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인터뷰 주선을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다만 미얀마는 위험할 수도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이 아직 군부의 힘이 작용하는 미얀마에서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동기들도 다들 사명을 가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내 여자 동기는 중동 전쟁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용병으로 고용되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다. 페이스북에는 방탄조끼와 총을 들고 전쟁 한복판에 있는 모습의 사진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만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아직도 그 생각은 유효하다.


다만 싱가포르 Choson Exchange나 미얀마의 NDI에서 급여는 받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일을 하고싶다고 제안하였고 그곳에서는 이미 일하는 직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옥스포드에서 여행의 여비를 장학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옥스포드를 떠나다


연구를 위해 나라 두 곳을 선택했지만 정책 리포트는 한 곳의 연구 결과만을 학교에 제출하면 되었다. 다만 나는 두 곳 모두에서 경험을 하고 싶었으며 어느 곳에서 정책 리포트를 쓸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두 군데를 모두 가보기로 하였다.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각각 2달씩 머무를 예정이었다.


이제 배운 것들을 써먹을 순간이 왔다. 지금까지 서생처럼 책만을 봤으니 이제 칼을 쥘 차례였다.


정든 옥스포드를 떠나 내 첫 번째 목표지는 싱가포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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