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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Feb 17. 2023

민주주의 투쟁의 현장인 미얀마로의 목숨건 여행 8-1

낯설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미얀마의 석양

"민주주의는 결코 최종적 성취는 아니다. 그것은 지칠줄 모르는 노력, 계속적인 희생, 그리고 의지에의 소명이요, 필요하면 그것의 방어를 위해 죽으라는 명령이다.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미얀마로 떠나기 하루 전 나는 싱가포르의 친구들과 싱가포르의 멋진 야경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때 처음 맥주를 마셨는데 그 때는 정말 쓰기만 했고 군대에 장교생활을 하면서 마신 수많은 쏘맥은 반은 좋아서 나머지 반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마신 술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무더운 싱가포르에서 마신 한잔의 생맥주는 나에게는 천국과도 다름없는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두달간 싱가포르에 대해서 많이 관찰하였고 특히 도시 구조와 인프라 그리고 도시 디자인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였다. 나는 만약 내 인생에서 정치를 하게 되는 기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도시의 시장을 해보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고 그곳의 시장이 되어 싱가포르처럼 가장 부유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얀마에 도착하다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미얀마로 떠났다. 싱가포르에서 미얀마까지 정확히 몇시간을 비행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미얀마는 싱가포르의 북쪽으로 올라가 말레이시아 태국을 거쳐 바로 미얀마인 만큼 지리적으로도 가까웠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고와 최저의 차이가 있는 두 나라였다. 다수가 불교를 믿으며 살아가는 미얀마에서 나는 어떤 새로운 모험과 경험을 하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비행기가 드디어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Naypyidaw)에 도착했다. 공항 밖은 싱가포르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꼭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고, 애니메이션의 단골 주제인 이세게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네피도는 미얀마의 행정수도로 도시 자체가 계획도시이며 2005년에 양곤에서 현재의 수도로 이전하였다. 썰에 의하면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웅산수치 여사의 기운을 떨어뜨리기 위한 주술적 이유로 천도했다고 한다. 물론 그저 향간에 나도는 소문일 뿐이다. 내 생각에는 미얀마의 전 수도의 양곤은 이미 난개발이 되어 있어서 쾌적하고 새로운 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수도를 옮긴 것으로 생각한다.


미얀마의 아웅산수치 여사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그녀는 미얀마의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아웅 산 장군의 딸로서 군부 독재에 맞서 미얀마의 민주주의 운동을 이끌었고 그 공로로 1991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현재까지도 군부를 상대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정치인이었다. 다만 그녀가 2018년도에 정권을 잠시 잡았을때 소수민족인 로힝야를 탄압한 사실 때문에 국제적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아웅산수치 여사는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녀의 소속 컬리지에 당당하게 걸려있던 그녀의 초상화가 이번 일로 내려진 것을 내 눈앞에서 보았다.


네피도는 계획도시답게 다른 미얀마의 도시보다 도로가 20차선 이상일 정도로 넓고 건물들도 컸다. 아직은 공터가 많은 곳이지만 향후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만든 계획도시인 만큼 잘 정비되어 있었다. 나는 이 곳의 한 저렴한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곳에서 거진 2달 정도를 있을 예정이었고 옥스포드에서 지원금을 받은게 적었기 때문에 최대한 예산에 맞추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카운터를 보는 호텔보이가 친절했고 낯설은 미얀마 생활에서 그 친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행히 적은 비용으로 넓은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저녁도 먹어야하고 세탁도 해야 했기에 호텔 직원인 그 친구를 불러 2달치를 저렴하게 지불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친구가 나를 찾아와 퇴근 후에 자신의 오토바이로 시내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였다.


그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타서 시내 구경을 나갔다. 흡사 우리나라 60년대가 그러했을까. 낡은 집들이 많았고 사람들이 마을회관 같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단층인 식당과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고 논밭도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이었다. 미얀마의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 친절하고 사기를 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외국인이 미얀마의 아웅산수치를 도와 나라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책으로 배우지 않아도 몸과 마음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자신들의 소망으로 품고 있었다.


시내를 둘러보다가 나는 그 친구에게 미얀마 남자 전통 옷과 자전거를 하나 사자고 부탁하였다. 미얀마에 모든 남자들은 치마같은 천을 두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현지인들과 친해지려면 전통옷을 하나 사야할 것 같아서 약 한화 1만원을 주고 두벌을 구입하여 바로 입었다. 입는 방법이 매우 어려워 첫날은 걸어가다가 몇번이고 흘려내렸는데 자전거를 사다가 주인 가족이 내 흘러내리는 하의를 보고 기겁을 하며 잡아주었다. 다행히 나는 반바지를 따로 입고 대비를 하고 있었다.


물건을 다 구입 후 그 친구와 미얀마 맥주 한잔을 하였다. 미얀마 안주는 꼬치 종류였는데 고기, 메추리알, 채소 등을 선택하면 구워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날 이후 자주 그 친구와 맥주를 할 정도로 맥주 맛과 안주의 맛이 좋았다.


미얀마에서의 하루가 평화롭게 흘러갔다. 호텔로 돌아가는 그 순간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붉은 석양이 펼쳐졌다.


'미얀마는 하늘이 예쁘구나'


하늘이 정말 예뻤고 그 순간은 내 마음도 낯설은 가운데 평온해졌다.


호텔 직원이었던 친구와


불교 사원에서, 전통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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