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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Feb 19. 2023

미얀마 국회의원들에게 공공정책을 가르치다 8-2

미얀마의 미래를 위해 소중한 씨앗을 심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 없는 사람이도 진심과 사명이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공의란 그저 나를 먼저 내려 놓고 눈 앞의 사람들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미얀마에서의 둘째날 아침이 되었다. 오늘은 드디어 내가 일하기로 한 곳인 NDI (National Democractic Institute)로 출근을 하는 날이다. NDI는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전세계에 지부를 두었으며 각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는 곳이었다.


NDI는 미얀마 최대의 도시 양곤과 수도 네피도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는데 양곤에 있는 곳이 미얀마 NDI 본부, 그리고 네피도는 제2사무소였다. 미얀마 본부에서는 국회의원 선거 등이 부정선거의 개입이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이 일이었고 제2사무소는 미얀마의 국회의원들에게 정책과 입법 등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소양과 지식을 가르치고 자문을 하는 곳이었다.


출근을 하기 위해 오후 1시 반쯤 호텔을 나섰다. NDI에서 나에게 이메일로 오후 2시 업무 시작 오후 10시 퇴근이라고 하였다. 왜그런지 궁금했는데 미얀마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일을 한 후 저녁 7시 쯤 퇴근하여 NDI사무실에 와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을 안고 얼마 전 구입한 자전거를 타고 20분이 걸려 큰 호텔에 도착했다. 특이하게도 호텔 안에 NDI를 비롯하여 다른 국제기구 사무실들이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네피도에 사무실을 쓸 건물들이 마땅치 않아서 외국 회사나 국제기구는 호텔을 사무실로 쓴다고 하였다.


호텔에 도착하자 여러명의 미얀마 호텔 직원들이 문 앞에서 친절하게 맞이하여 주었다.


"밍글라바"


안녕하세요란 미얀마의 인사이다. 양쪽 볼에 귀여운 하얀가루를 바른 호텔 여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미얀마 여성들은 얼굴에 타나카라는 나무 가루를 바르는데 자외선과 보습효과가 좋다고 한다. 미얀마 여성들의 상징이었는데 얼굴 양볼에 하얀 분을 바르고 매일 웃으며 인사하는 호텔 직원들의 밝은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호텔 로비를 지나 NDI사무소에 들어갔는데 현지 사무소 직원들이 반갑에 맞이해주었다. 사무소에는 미얀마 출신 여성 3명과 남성 1명, 그리고 외국인 소장님이 1분 계셨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하고 소장님과 1:1 면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장님은 내가 미얀마에 오기 전부터 연락을 꾸준히 했었기에 내가 옥스포드에서 공공정책을 공부한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분이 나에게 줄 임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면담하는 자리에서 소장님이 말을 꺼냈다.


"미얀마의 국회의원들은 평생을 민주주의 운동을 한 분들이지만 처음 국회의원의 역할을 하는 중이라 정책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우리가 당신에게 부탁할 일은 미얀마 국회의원들에게 공공정책을 가르칠 수 있도록 7주짜리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입니다"


'7주짜리 커리큘럼이라...' 나는 생각보다 도전적인 임무에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소장님, 혹시 미얀마의 국회의원들의 공공정책이나 입법에 관한 수준이 어떻게 될까요? 수준을 어느정도 알아야 그에 맞게 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물어보자 그가 고민을 하더니 말하였다.


"아까 말했듯이 평생 민주주의 운동만 한 분들이라 정책과 입법 등에 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결국, 가장 기초부터 가르쳐야 된다는 뜻이었다. 너무 큰 임무를 맡게되어 당황스러웠다. 다만 소장은 나에게 진심으로 부탁을 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큰 일을 내가 해도 되는지 걱정도 되었지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쉽게 구할 수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선진국에는 나같은 사람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미얀마에는 드물었다.


제안을 받고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바로 직전까지 옥스포드에서 공공정책을 만드는 과정을 배웠기에 내가 1년간 배운 것들을 가장 쉬운 단어와 방법으로 다시 바꾸면 될 것 같았다. 미니 공공정책 석사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좋습니다.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이렇게 큰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유엔 등 큰 기관에 갔다면 그곳에서는 워낙 뛰어난 인재들이 넘치기 때문에 나는 아마 복사만 하고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일당백의 역할을 해야했고, 분에 넘치는 막중한 임무를 받게되었다.


나는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도 개발학 공부를 했기 때문에 미얀마 같은 개발국가에 대해 잘 분석할 수 있었다. 나는 미얀마의 경제와 사회 등을 자세히 조사하였고 그에 맞는 정책 분석과 결정 과정 프로세스를 만들면서 최대한 미얀마 국회의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만들었다. 내가 교재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둔 사항은 미얀마의 현재 문제를 예시로 만들 것, 올바른 정치 철학을 갖게 할 것, 그리고 정책을 만들 때는 의도와 결과가 다를 수 있으니 항상 유의할 것이라는 세가지였다.


특히, 나는 모든 정책을 만들기 앞서 정책적 철학으로 뼈대를 세우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옥스포드 수업에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얀마의 국회의원들이 정책을 만들 때 향후 미얀마가 경제성장을 할 때 소수도 배려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에 녹여내었으며, 미얀마의 특성상 소수민족과의 평화와 융합, 올바른 민주주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민주주의 이념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일주일간의 시간동안 나는 챕터 1을 완성하였고 NDI의 소장에게 건내주었다. 그는 그 교재를 보면서 너무나도 만족하였다. 나 또한 그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소장에게 먼저 교재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어떤 내용이 중요한지 가르쳐주었다. 실제 가르치는 것은 NDI의 소장이 하고 내가 옆에서 거들기로 하였다.


미얀마의 국회의원들은 매일 오후 7시 정도가 되면 국회 일정을 마치고 NDI로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컴퓨터를 다루는법, 법지식, 공공정책 지식, 다양한 경제와 정치에 관한 지식을 공부했다.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매일 이렇게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나라를 위해 공부하겠다는 그 열정을 사랑했고 존경했다. 이런 마음만큼은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매일 공부를 하는 그들을 보며 내 모든 지식을 쏟아부었다.


드디어 오후 7시에 40여명 남짓한 미얀마의 국회의원들이 단체 버스를 타고 NDI 강의실로 왔다. 소장이 드디어 처음으로 공공정책을 분석하고 만드는 강의를 시작하였다. 수업이 시작되자 군부 출신 국회의원들도, 민주주의 진영 국회의원들도 하나가 되어 공부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그들이 쉽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옆에서 수업을 모니터링하며 빠진 부분이 있는지, 더할 부분이 있는지 적었다.


드디어 첫 수업이 끝나고 다들 흡족해한 표정이었다. NDI의 소장도 매우 기뻐하였다.


소장은 나에게 "Good job, Ohk!"이라고 외치면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는 수업이 끝난 후 미얀마 국회의원들이 자습을 할 때 옆에가서 많은 대화를 하면서 공부를 도왔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재 국회의원이 된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있는지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들에게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도 이러한 열정과 마음이 있을까?'


나는 그 순간 이렇게 생각하였다. 정치인들이 진심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정을 다해 공부하고 일한다면 우리나라는 머지안아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미얀마 국회의원들도 분명 머지않아 미얀마의 경제발전을 이끌고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이대로라면 예전에 우리나라처럼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빠르게 치고 나갈 것임이 분명했다. 정치인에게는 지식과 소명이 가장 중요하다. 그 두개가 있으면 나라와 사회가 발전한다.


나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챕터2, 챕터 3 등을 만들어나가며 미얀마 국회의원들을 위한 수업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그리고 곧 그 수업은 입소문이 나서 미얀마 국회의 비서들을 포함하여 모든 직원들이 듣게 되었다. 내가 내 소명을 마치고 떠난 이후로도 챕터 7까지의 공공정책 교재는 보완과 수정을 거듭하며 발전하여 몇년이 지난 순간까지 쓰이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미얀마의 미래에 작지만 중요한 씨앗을 심었다. 안타깝게도 3년뒤 2021년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그래도 그때 심은 사과나무 씨 하나가 싹을 피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이 곳에서 느낀 점은 다수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부족한 내 자신이 미얀마의 미래를 위해 기여한 순간이었으며 내 자신 스스로도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옥스포드 공공정책 대학원 페이스북에 소개된 내 소식


미얀마 국회의원을 위한 공공정책 커리큘럼을 만들면서


내가 만든 커리큘럼으로 미얀마 국회 직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 NDI 소장


미얀마 국회의원들 공공정책 수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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