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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Feb 21. 2023

미얀마 소수민족 정치지도자와의 만남 8-6

생명의 위협을 받다

소수민족 당대표와의 만남


며칠 후 카렌족 출신 NDI 직원분이 나에게 소수민족 당대표와의 만남을 주선하였다고 알려주었다. 이 분들은 정말 진심으로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선거부 장관까지 만나서 무례한 질문만 했는데 소수민족 당대표까지 만난다면 미얀마 군부 쪽에서 나를 좋게 볼리가 없었다. 나는 며칠 전 군부가 만든 당의 국회의원과의 인터뷰까지 했던 참이었다. 군부 쪽에서 나를 본다면 낯선 외국인이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들 쑤시고 다니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항상 나는 어떤 두려운 상황도 이성과 용기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가지고는 세상을 진보시킬 수 없다. 목숨을 아까워해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음날 바로 카렌족 출신 직원분과 함께 소수민족 당대표를 찾아갔다. 우리는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였는데 도착하자 무슨 초록색 단층 건물들이 캠핑장처럼 빼곡히 들어서있었다. 생각보다 국회의원 숙소 치고 환경이 열악해보였다. 일반 미얀마 시민들이 사는 집과 별차이도 없없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미얀마 소수민족 정치지도자인 당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미얀마에는 각자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당이 있었고 당연히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카렌족의 수장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당대표는 나를 보자 반갑에 인사하였다. 그리고 집 안을 힐끔 보는 나에게 집을 소개시켜주었다. 집은 5평 남짓한 크기였고 그곳에 방은 없고 스튜디오 형식으로 책상, 침대, 화장실만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거의 감옥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곳도 2인 1실이라 좁게 느껴졌다. 자는 침대를 제외하고 책상위에 컴퓨터와 프린터만 높여있었고 무수한 서류가 쌓여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먹고 자고 일한다고 하였다. 이 분들은 오전 오후에는 국회에서, 저녁에는 우리 NDI 사무실에서 공부하고, 저녁 10시쯤 이곳에 와서 밀린 업무를 하고 잠을 자는 것이었다.


나는 미얀마의 정치인들이 너무 청렴하고 정직해보였다. 이와는 반대로 권력과 이익만을 탐내는 호와로운 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예전에 국회를 자주 간 적이 있었을때 많이 보았는데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비싼 정장을 입고 옆에 수많은 비서들을 대동하며 제네시스, 예전에는 에쿠스 등을 타고 다녔다. 그러면서 어떻게 서민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지 이해가 도저히 가지 않았다. 나는 미얀마에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없는 사명감과 청렴함 그리고 열정을 보며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졌다. 우리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정치인들이 많아져야 한다.


나는 드디어 당대표와 소수민족의 상황과 소수정당 등 선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나에게 소수민족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였고, 국회에서 세력이 작아 정치적인 발언권이 무시당해 자신의 민족을 위한 정책적 혜택을 가져올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와 나는 한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사진을 함께 찍자는 나의 말에 흔쾌히 함께 찍어주었다. 차를 타는 순간까지도 그는 마중나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에게 권위의식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다만 느껴지는 것은 사명감 뿐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나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소수민족에게 조금 더 권력을 분배하는 비례 선거제도 및 선거구 개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선거제도 개편으로 소수민족 국회의원들이 많아진다면 발언권이 조금은 더 강화되어 그들의 이익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행정부 조직을 개편하여 소수민족 출신들이 더 많이 정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연구하였다.


내 마음속에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저녁 새벽까지 연구를 하면서 있었다.


그때였다. 내 숙소 방문을 누가 미친듯이 잡아 당기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몰라 항상 생활할때는 운동화를 신고 위급할 시 사용할 돈과 옷가지와 중요 물건이 있는 가방을 싸놓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가방을 메고 창문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창문 근처로 갔다. 숙소는 2층이었지만 다리를 걸칠 곳이 있었고 빠져나갈 동선을 예상해 두었기에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페이스북으로 호텔 직원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SOS를 요청하였다.


"누가 내 문을 몇분째 두들기며 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매우 위급하니 빨리 남자 직원들을 모아서 내 방으로 와달라"


몇분째 누가 문을 두들기고 열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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