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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Feb 21. 2023

덴마크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에 합격하다 8-8

행복한 국민을 만드는 비법을 위해 떠난 나의 다음 여정

양곤에서 돌아온 후 모았던 인터뷰 내용과 데이터를 가지고 정책 리포트를 작성하는데 집중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미얀마의 소수민족이 미얀마에서 정치, 사회, 경제적 권리를 더 누릴 수 있도록 선거제도와 정부 조직 개편안에 대한 60페이지 정도의 정책 리포트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미얀마에 있는 마지막 일주일 전에 옥스포드에 정책 리포트를 제출함으로서 마지막 졸업 요건을 충족하게 되었다.


리포트 점수만을 제외한 나머지 시험 점수는 이미 다 나왔고 정책 리포트만 점수가 나오면 되었지만 점수에 상관없이 통과만 하면 일단은 졸업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옥스포드에서의 일정은 완전히 마무리가 되었다.


또한 그동안 나는 미얀마에서 미얀마 국회의원들을 위해 7주짜리 공공정책 커리큘럼을 완성하였다. 다행히도 미얀마에서 모든 미션을 완료하였고 가볍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덴마크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에 합격하다


옥스포드에서 공부할 당시 나는 다음 여정으로 두 곳의 석사에 지원을 하였다. 한곳은 프랑스에 있는 SciencePo라고 불리우는 파리정치대학이고 다른 한곳은 덴마크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이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덴마크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에 더 가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북유럽식 복지라고 불리우는 덴마크 복지 제도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박사 생각이 없었고 주변 외국친구들이 학위를 여러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아서 석사를 더 한다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덴마크 복지 공부를 더 하다가 공부에 확신이 들면 덴마크에서 박사로 바로 편입을 할 계산도 있었다.


내가 지원한 전공은 공공매니지먼트였는데 덴마크의 복지에 관한 수업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곳에서 공부하면서 덴마크 복지제도에 관해 공부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옥스포드에서 공부할 당시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다른 나라의 친구들은 전에도 이야기 하였듯이 자국의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둘을 이미 이룬 우리나라가 다음에 무엇을 이루어야 할지 항상 생각하며 고민중이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그 다음의 비전을 찾지 못하고 선진국의 문턱에 있었다. 나는 진정한 선진국이란 물질적인 것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래서 매일 고민하던 순간에 덴마크와 스웨덴 등 북유럽 친구들과 대화를 한 것이 떠올랐다.


'그들 나라에서는 청년들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 한마디가 나의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들조차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국가의 평균 두배로 압도적 1등이다. 10대~30까지 사망원인이 자살이 1위일 정도로 우리사회는 병들어 있다.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떠나는 여정


이와는 반대로 덴마크 등 북유럽은 행복지수가 세계 1, 2위를 할 정도로 국민들의 행복 수준이 높았다. 그래서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비법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다만 특이하게도 이 커리큘럼은 1년은 중국의 과학원대학교에서 먼저 공부하고 나머지 1년을 덴마크에서 논문을 위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중국 과학원대학교 안에는 덴마크의 7-8개 정도의 대학들이 공동으로 세운 덴마크 공동 대학 센터(Sino-Danish Center, SDC)가 있었다. 그 안에서 덴마크 7-8개 대학들이 각자 대학의 전공을 하나씩 이 센터에서 운영하고 있었고 입학생 반은 중국학생, 반은 덴마크 학생들, 그리고 소수의 외국인 학생들로 채워진다. 건물 또한 덴마크 스타일로 지었고 모든 교수들은 덴마크 출신 교수들이었다. 졸업을 하게 되면 공동학위가 수여된다. 따라서 나는 덴마크 학교에서 학위를 따면서도 중국 학위를 받을 수 있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원하였었다.


또한 학비가 일년에 500만원일 정도로 학비가 매우 저렴하였기 때문에 충분히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국내 석사 학위 비용의 반도 안되는 돈으로 덴마크, 중국 석사 학위를 2개를 따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정말 매력적인 일이었다. 다만 나에게는 이미 석사학위가 2개가 있었기에 학위보다는 덴마크의 복지 공부를 할 생각에 기대가 꽉차 있었다.


다만 덴마크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과 함께 합격한 파리정치대학(SciencePo)는 혹시 몰라서 1년 입학을 연기하였다. 나중에 이야기를 할 것이지만 오히려 이 결정이 결국 나를 살리게 되었다.


먼저 중국으로 가다


미얀마에서 중국으로 가기 위해서 양곤에 잠시 들렸을 때 미리 비자를 받아놓았기 때문에 중국으로 가는 준비는 모두 마친 상태였다. 이제 3일 후면 신학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가야 했다. 다만 이때부터 몸에 조금씩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지고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만 해도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고 애써 몸의 이상을 무시했다.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모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최고의 순간에 갑자기 낭떠러지가 오게 될 줄은 이때는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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