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병나발을 함께 불다
미얀마 네피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국 북경으로 떠났다. 미얀마에서 북경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점심때 출발해서 늦은 저녁에 북경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이미 택시를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학교까지 가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중국 북경에는 2008년에 6개월간 칭화대에서 어학연수를 한 후 거의 10년만에 돌아온 것이었다. 중국 또한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내가 이곳에서 머물 곳은 외국인 기숙사였는데 방이 5개 정도 있었는데 거실과 화장실을 공유하였다. 나머지 4명의 룸메이트는 모두 덴마크 친구들이어서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덴마크에 대한 많은 것들을 물어보고 관찰하고 배울 참이었다.
내가 공부해야 하는 곳은 SDC (Sino-Danish Center)라고 덴마크의 8개 대학이 중국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과 중국과학원대학(University of the Chinese Academy of Science) 안에 세운 덴마크 공동 학위 교육 센터로 8개의 덴마크 대학에서 8개의 학위를 운영하고 있다. 반 정도의 학생은 덴마크 학생, 나머지 반 정도의 학생은 중국 학생들과 소수의 외국 학생들이 한 반을 구성하고 있었고 대략 덴마크 학생이 160명, 중국학생이 140명에 외국인 학생이 20명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Public Management and Social Development 전공으로서 1년간 중국에서 나머지 1년간은 덴마크에서 거주하며 덴마크 복지 정책을 한국식에 맞게 연구하고 공공과 민간이 함께 새로운 복지 정책을 협력하여 이루어나가는 사회적 시스템을 연구하려고 하였다. 앞으로 복지는 고도화 될 것이고 예산이 많이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복지 영역에서 정부와 기업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기업이 어느정도 사회적 의무를 통해 정부의 복지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미얀마에서 민주주의 연구와 국회의원들의 공공정책 커리큘럼을 완성시켜야 했기 때문에 첫 주 수업에는 참여를 못하고 2주 수업부터 들어가게 되었다. 수업에 들어가자 약 20명의 덴마크 학생들과 중국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첫주 수업을 빠진 후라 그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내가 신기했던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한명씩 인사를 했고 친구들은 늦게 온 나를 반기며 학교와 지난 수업들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다. 자세히 둘러보니 우리 전공 동기들은 대략 12명의 덴마크학생과 8명 정도의 중국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 과 대표는 한 중국인 여자학생이 맡고 있었는데 이름이 새턴이라는 친구였다. 24살 정도에 키가 큰 내몽골 출신인 그녀는 하루종일 내 옆에서 학교 등록과 생활에 관한 안내를 열심히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저녁에 과 파티가 있다고 나에게 말해주며 참여하라고 말해 주었다.
저녁이 되어 학교 홀에 가자 수십명의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맥주와 안주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내가 가서 놀랐던 한가지는 우리나라 소주가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덴마크 친구들에게 한국 과일 소주가 인기가 많았는데 그 친구들은 항상 모이면 우리나라 과일 소주를 한병씩 들고 병나발 불듯이 마셨다.
나는 한참을 그들과 이야기하며 친해졌다. 덴마크 친구들은 나에게 각자 자신을 소개했는데 재미있었던 건 한 친구는 게이였는데 알보고니 전직이 이탈리아의 카톨릭 사제였다. 그는 나에게 사제였을때 교황과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너무 재밌는 친구였다. 이때부터 덴마크 친구들과 대화하며 함께 어울리고 놀며 느꼈지만 덴마크 친구들은 내가 본 유럽인 중에서 가장 착하고 순수한 친구들이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파티가 대략 끝난 후 갑자기 노래방을 가지는 것이었다. 중국에도 우리나라처럼 노래방이 있었다. 가만히 보면 덴마크 친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닮은 점이 많았다. 흥을 좋아했고 노래방가는 걸 좋아했다. 파티를 자주 하며 항상 손에 우리나라 과일 소주가 들려있었다. 마셨다하면 2, 3차까지 가는 것을 보니 터키가 돌궐일때 고구려와 형제지간이었듯이 우리나라도 고대에 덴마크와 형제지간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결국 흥을 참지 못하고 다들 봉고 3대를 불러 나누어 타고 노래방으로 갔다. 당연히 덴마크 노래는 없었지만 그들은 영어 노래를 꽤 진지하게 불렀고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무대 가운대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OST였던 신승훈의 I Believe를 불렀다. 호흥이 좋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노래를 꽤 잘 부는다.
이렇게 나는 그들과 조금씩 형제처럼 남매처럼 친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