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승철 Feb 23. 2023

교수님에게 존대했다가 덴마크 친구들에게 혼났다 9-3

덴마크의 인간평등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와 덴마크의 '다른 시선'


덴마크 학교 수업을 들어간 첫 주였다. 나는 한국 교수님들에게 하듯이 “Professor”라고 교수님에게 먼저 인사하였고 항상 겸손하게 존대하였다. 교수님과 대화할 때면 항상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경청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의 바른 한국 청년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타국의 타인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는 것을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파티를 좋아하는 덴마크인들은 일주일에 한 번 씩 맥주 파티를 열었다. 어느날 맥주 파티에 참가해 덴마크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친해진 한 덴마크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가 첫날부터 교수들에게 존대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덴마크에서는 교수에게 존대하지 않는다."


여기서 존대란 아무래도 내가 교수님 앞에서 너무 나를 낮추며 극존대를 한 것에 대한 부분인것 같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교수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 사이에 사회적 차이가 없기 때문에 누구를 존대하거나 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유교적 문화 기반으로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님’이라고 칭하고 나를 낮추며 상대방을 존대한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을 쓴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국 사회를 아래 그럼처럼 표현한다.


일본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에서 '한국 일상 공간의 인간관계'를 '나와 너', '나와 님', '나와 놈'으로 표현했다.


한국의 인간관계에서는 ‘나와 너’가 있고 ‘님’이 있으며 ‘놈’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와 너’는 사회적으로 대등한 관계이다. ‘님’은 자신이 존경할 만한 윗사람을 부를 때 쓴다. 자신보다 나이·지위·신분 등이 높으면 쓰는 말이다. ‘놈’은 자신보다 나이·지위·신분이 열등한 사람에게 쓴다. 내려다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학생과 교수 사이의 관계는 학생의 관점에서 ‘나와 님’이 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주자학에서 비롯된 위계질서의 세계이다.


하지만 덴마크의 인간관계 철학을 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님’과 ‘놈’이 없고 나와 대등한 너가 있을 뿐이다.


‘나와 너’는 나이·지위·신분에 상관없이 평등하고 같은 존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의 인간관계 철학의 입장에서 덴마크 교수에게 ‘님’(Professor)이라고 불렀을 때 덴마크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본 것은 당연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유교적 위계질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덴마크 친구들은 이러한 유교적 위계질서에 관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다음 주에 덴마크와 중국 간의 행사로 덴마크 왕자가 중국에 방문하는데 자신이 덴마크 왕자를 만나도 그렇게 깍듯이 존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같은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서로 존대하겠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덴마크 친구들이 교수님을 편하게 대하는 것을 보았다. 편하게 대하는 것은 예의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닌 나와 같은 존엄성을 가진 타인을 서로 존중하는 행동이었다.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와 토론이 자유로웠다. 덴마크 친구들은 그래서 교수의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도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였다. 그리고 교수들은 학생들의 어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개선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나는 교수를 ‘님’으로 인식했을 때 내 의견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매번 교수님의 말씀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나를 잘 표현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교수를 ‘나와 너’의 동등한 객체로 받아들였을 때 교수와의 토론이 즐거웠다. 내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가 있었고 오히려 교수와의 깊은 학문적 대화가 가능하였다.


덴마크에서는 ‘님’과 ‘놈’이 없고 ‘나와 너’라는 사회적으로 평등한 존재만이 있기 때문에 청소부든 의사든 교수든 학생이든 인간으로서 같은 존중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님’과 ‘놈’이 너무 뿌리박혀 있어 사장이 사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회사 안에서도 위계질서 때문에 상사는 아랫사람을 하대하고 괴롭히기도 한다. 사람들은 아파트 경비원과 청소부들을 무시한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와 상대방의 위치를 끊임없이 설정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면 인간 대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대우하는 '사회적 평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에서도 위계질서를 없애려고 하는 이유는 가장 낮은 사원이라도 임원에게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말 할 수 있어야 기업에 혁신이 생기고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창의력 향상을 위해 직급을 없애고 호칭을 없앴다는 기사가 있었다. 과연 이러한 인간관계에 대한 철학을 바꾸지 않고 직급과 호칭을 없앤다고 과연 ‘님’과 ‘놈’이 없어지고 ‘나와 너’라는 평등한 존재만 남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나는 매우 부정적이다.


언제나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기에 앞서 철학이 그 사회에 확고히 뿌리박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사회적 평등의 국가로 변하려면 우리나라의 유교적 위계질서의 철학 보다는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철학을 뿌리내리도록 하는 노력이 이러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크르스 추종자인 덴마크 친구의 노동유연성 찬양 9-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