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Naypyidaw)에 있는 NDI(National Democratic Institute)에서 민주주의 연구를 졸업 연구로 하기로 했다.
NDI는 미국 워싱턴에 본부가 있다. 미얀마에 도착한 나는 미얀마가 매우 평화롭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친절하였고 특히 동남아 국가 방문 시 고질적으로 겪었던 택시 기사들의 바가지가 없었다.
나는 옥스퍼드 박사 출신으로 당시 박사 논문으로 미얀마에 먼저 온 미국교포 지은씨를 만나 미얀마 사람들이 왜 이렇게 친절한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미얀마 사람들이 오랜 군사 독재정권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된 가장 큰 이유가 외국인들의 관심이라고 느껴 외국인들에게 친절히 잘 대해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웅산 수치가 자택에 연금되고 15년 동안 국제사회는 미얀마의 민주주의에 오랜 관심을 기울여왔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미얀마 사람들이 얼마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큰지 이해하게 되었다.
NDI 입성 첫 주, 미얀마 NDI 대표는 나를 데리고 미얀마 국회로 갔다.
NDI는 미얀마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정책 자문을 하고 있었고, 매일 저녁마다 3시간 동안 정책을 가르쳤기 때문에 NDI는 군부출신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국회의원들과 네트워크가 있었다.
NDI 대표와 함께 미얀마 국회에서 국회의원들과 만나 인사하며 그들과 소통하고 의정활동을 참관하면서 나는 민주주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잠깐 미얀마의 국회 건물에 관해 말하자면, 거의 작은 도시 급으로 규모가 컸다.
내부는 대리석과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국회의 홀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있었는데 수백 가지의 보석들이 박혀있었다.
뒤에 벽에는 수백 종의 미얀마에서 나는 나무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는 미얀마가 얼마큼이나 자원의 부국인지 상징한다고 한다.
실제로 미얀마는 보석이 넘쳐난다. 나는 이것을 사치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원 부국인 만큼 언젠간 부유한 미얀마를 만들겠다는 열망이라고 느껴졌다. 실제로 미얀마의 교육열은 매우 높기 때문에 정치적인 안정만 되면 고도의 성장을 할 것이다.
그 후 NDI 사무실로 돌아오니 대표가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2015년 민주적인 투표로 선출된 미얀마 국회의원들이 평생 민주주의 운동만 했던 분들이라 공공정책과 행정 프로세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표는 그래서 나에게 미얀마의 국회의원들과 보좌진들을 위한 공공정책 교재와 커리큘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갑자기 큰 임무를 부탁받게 되어 잠시 당황하였으나 곧 이 일을 할 사람이 나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바로 직전까지 옥스퍼드에서 내가 공부했던 것들이 공공정책을 만드는 모든 프로세스를 배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또한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도 개발학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미얀마 같은 개발국가에 대해 잘 분석할 수 있었다.
모든 수업 자료들을 차근차근 검토하면서 공공정책의 프로세스를 쉽게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만들었다.
내가 교재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둔 사항은 미얀마의 현재 문제를 예시로 만들 것, 올바른 철학을 갖게 할 것, 그리고 정책을 만들 때는 의도와 결과가 다를 수 있으니 유의할 것이라는 세 가지였다.
특히, 나는 모든 정책을 만들기 앞서 정책적 철학으로 뼈대를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옥스퍼드 수업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정책을 만들 때 향후 미얀마가 고도의 경제성장을 할 때 소수도 배려할 수 있도록 철학적으로 녹여내었으며, 소수민족과의 평화와 융합, 올바른 민주주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민주주의의 이념을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이렇게 첫 수업이 시작되었고 미얀마 군부와 아웅산 수치의 여사가 이끄는 NLD 소속 국회의원들이 함께 수업을 들었다. 그들은 내가 만든 수업에 흥미를 보였고 쉽게 쓴 덕분에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나는 7주 동안 총 7개 커리큘럼을 만들고 떠나는 날, 미얀마 국회의 모든 보좌진들까지 내 공공정책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았다. NDI 대표는 나에게 고맙고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다른 옥스퍼드 동기들이 유엔, 유럽 의회, 월드 뱅크 등 좋은 곳으로 갈 때 미얀마로 가는 게 위험하기도 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큰 곳에 가면 나 같은 사람은 많으며 나는 아주 작은 역할밖에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계속해서 내 발걸음을 미얀마로 향하게 하였다.
미얀마에 와서 나는 짧은 시간동안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었고 미얀마를 위해 작은 씨앗을 뿌렸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나는 다수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