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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Jul 03. 2022

3편 : 아웅산 수치와 로힝야, 그가 얻고 잃은 것은?

미얀마의 민주주의 연구소인 NDI(National Democtratic Institute)에서 미얀마 국회의원들의 공공정책 교재와 커리큘럼을 만들면서 많은 국회의원들을 만났다.


미얀마 국회에서 국회의장과 그의 딸. 내 NDI 동료이기도 한 그녀는 나에게 많은 인적 도움을 주었다


NDI는 미얀마 국회에 제도적᛫정책적인 조언을 하는 기관이었는데, 매일 저녁 미얀마의 국회의원들이 NDI 사무실에서 마련한 학습 장소로 찾아와 강의를 듣고 함께 토론하곤 했다.


나는 NDI에서 일 하며 수업과 토론에 참여하였는데, 미얀마 국회의원들이 처음 본 날,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 준 게 기억난다.


그날은 아웅산 수치의 정당인 NLD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 정당과 군부 의원들도 있었다. 군복을 입은 군부 의원들은 소수였고 약간 무표정 했지만, 공부에 있어서는 열의를 가지고 질문도 많이 하였다.


내가 미얀마에 있던 당시에는 민주진영과 군부의 갈등보다 소수민족과 버마 민족과의 갈등이 더 이슈였다. 버마 민족은 현재 미얀마에서 경제, 사회, 정치 분야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로힝야 사건이 터지면서 아웅산 수치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들끓었다. 내가 다니던 옥스포드 대학에 그녀의 초상화가 있었는데 로힝야 사건 이후로 그녀의 초상화가 치워진 것을 내 눈으로 보기도 했다.


아웅산 수치의 당은 2016년 첫 민주주의 투표에서 다수 정당이 되었고 대통령도 NLD 출신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아웅산 수치는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없었는데 이는 군부가 민주주의 선거 이전에 외국인과 결혼한 미얀마인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헌법에 명시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웅산 수치는 국가 자문역이라는 대통령보다 더 권한이 있는 자리를 만들어 미얀마를 실질적으로 통치한다.


하지만 이것도 초기에는 군부에서 위헌 입장을 내놓았다. 미얀마 군부가 군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를 다시 감금하고 민주주의 선거 이전의 군부 독재로 돌리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아웅산 수치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군부와 맞서지 않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로힝야 사태라고 생각한다.


옥스포드에 있을 때 미얀마 동기에게 로힝야에 사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아웅산 수치와 군부와의 줄다리기 속에 군부를 반대한다면 뜻을 이루기 전에 숙청을 당할 개연성이 있었다. 그래서 로힝야 사태를 방관하였다고 주장했다.


어찌 되었든 폭력 그리고 그것을 방조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나 정치 권력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는 판단과 선택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웅산 수치 입장에서 군부를 점진적으로 몰아내고 미얀마를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민의를 등에 업고 다수당을 유지하면서 군부를 설득하고 또 군부에게 유리한 헌법을 고쳐 나가는 것이 최대 과제였을 것이다.


또한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행정부 개혁도 필요했기 때문에 군부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다수당인 NLD가 정책을 집행하려고 해도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행정부 협조가 안 되어 무산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실제 2021년 미얀마 선거는 아웅산 수치 정당인 NLD에 2016년 보다 큰 승리를 가져가 주었지만 결국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며 독재의 길로 다시 들어섰다.


이러한 상황은 소수민족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아웅산 수치의 점진적인 민주화 전략이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할까?


아직 민의가 아웅산 수치를 지지하고 있고, 카렌 카친 등 소규모지만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들이 민주정권 이전 자신들을 탄압했던 군부와 맞서면서 NLD와 목적이 같은 편이 되어버렸다.


소수민족들의 목표는 독립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고도의 실질적 자치와 미얀마 내에서 경제, 사회, 정치 분야 지위 향상이기 때문에 군사정권 보다 민주정권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단 한 가지, 아웅산 수치 국가 자문역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대의를 이루기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은 명분과 당위성을 없애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특히 미얀마 민주주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서양에서는 과정에서의 명분과 정의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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