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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Jul 03. 2022

4편 : 영국·일본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

미얀마 민족 간 갈등 불러오다

미얀마에는 두 가지 이슈가 있다. 민주주의와 소수민족 갈등이 그것이다.


내가 미얀마에 있었던 2018년도에는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한 민주 정당인 NLD가 다수당으로서 국정에 참여하고 있었고, 점차적인 민주주의로의 개혁이 조금씩 시도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 군부 독재와 민주주의 탄압 문제는 큰 이슈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 당시 미얀마의 정치 사회적 이슈는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버마인들과 나머지 30%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민족들 간의 갈등이었다.


미얀마의 소수민족들은 원래 135개 이상이지만 그 중 가장 큰 소수민족은 7개 정도로 카친, 까야, 카렌, 친, 몬, 카라인, 샨 등이다. 그들은 미얀마의 다수 민족인 버마 민족과 언어, 종교,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보인다.


내가 NDI에서 일하면서 만난 동료는 카렌족이었으며 기독교 신자였다. 미얀마의 기독교 신자는 약 4%이고 소수민족 중심이다.


미얀마는 90%이상이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민족이 얼마 많은 차별을 받았는지 나에게 이야기해주곤 했다.


역사적으로 미얀마는 제국주의 시절 영국, 일본, 다시 영국으로 이어지는 식민 지배 기간 동안 영국과 일본이 사용한 이이제이 전략으로 다수의 버마족과 소수민족간의 갈등이 깊어졌다.


기독교 신자가 많은 카렌족은 독립국을 세우기 위해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버마 독립군에게 학살을 당했다. 다른 소수민족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들은 그 이후 민족해방군이라는 반군을 결성해 무장 투쟁을 해왔다.


이러한 갈등을 봉합하고 외세를 물리치기 위하여 미얀마의 독립을 꿈꿔왔던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인 아웅 산 장군은 미얀마의 소수민족들과 버마족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힘을 합쳐 외세에 대항하고자 소수 민족들과 ‘팔롱 협정’을 맺고 그들의 자치와 독립을 약속하였다.


그 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정부와 협상을 벌인 끝에 버마 연방으로 독립에 성공하였다.


그는 먼저 샨, 친, 카친 등 3개 주요 소수민족들에게 자치를 허용하고 나머지 소수민족들에게도 점차적인 자치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아웅 산 장군은 버마 연방을 설립한 직후 암살당했고 그의 부하였던 네윈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소수민족에게 약속한 자치와 독립을 폐기하였다.


그 후 버마인으로 이루어진 군부독재 하에서 소수민족들은 다수의 버마 민족이 주도한 정치 참여와 경제성장에서 소외되었고 교육에서도 배제되었다.


나는 미얀마의 소수민족 출신 교사, 대학생, 정치인 및 시민들까지 다양하게 만나 인터뷰 하면서 소수민족들이 겪는 차별과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소수민족은 민족해방군을 창설하여 미얀마 군부에 대항하였고 지금까지 양쪽의 충돌로 수십 만 명이 사망하였다. 이에 2015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은 소수민족들과 평화 협정을 다시 맺으면서 소수민족들과의 평화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수민족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평화를 이루려면 정치와 행정부에 더 많은 소수민족들이 진출해야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편과 정부 조직 개편 같은 제도 개편이 필요하였다.


미얀마 소수 민족 국회의원을 만나다


나는 운이 좋게도 NDI에서 국회의원들을 가르치면서 소수민족 당 대표나 국회의원들을 쉽게 인터뷰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소수민족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였고, 특히 국회에서 세력이 작아 정치적인 발언권이 무시당해 자신들의 민족을 위한 정책적 혜택을 가져올 수 없다고 말하였다.


미얀마 소수민족 당 대표와 인터뷰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소수민족에게 조금 더 권력을 분배하는 비례 선거제도 및 선거구 개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선거제도 개편으로 소수민족 국회의원들이 많아진다면 발언권이 조금은 더 강화되어 그들의 이익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행정부 조직을 개편하여 소수민족 출신들이 더 많이 정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연구하였다.


NDI의 도움을 받아 미얀마 선거관리부 장관을 만날 수 있었는데, 건물에 들어갈 때부터 경계가 매우 삼엄하였다. 나는 그에게 현재 선거제도가 소수민족에게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말하였으며 소수민족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현재 선거제도에 문제점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하였다.


그 후 나는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소수민족 사람들을 만나고 선거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다양한 국제기구들의 실무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자료를 얻고 때로는 해결책에 대해 토론하였다.


인터뷰를 위해 네피도에서 양곤으로 여행하는 도중


너무 미얀마 전역을 들쑤시고 다녀서 군부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실제로 머무르는 호텔방을 새벽에 누가 강제로 열려고 하는 일도 일어났다. 범인은 못 찾았지만 아마 지금 내가 그때처럼 행동하며 다녔다면 정말 위험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현재 소수민족들의 군벌은 미얀마 민주진영을 도와 군부 독재에 맞서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을 했을 때 초롱초롱한 눈으로 관심을 가졌던 미얀마 동기가 생각이 난다.


올해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해 미얀마를 위한 민주주의 책을 쓰고 미얀마 언어로 번역하여 미얀마에 무료로 배포하려고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중이다.


몇 년 후 미얀마 사태가 조금 진정 된다면 미얀마의 양곤대학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싶다.


아무쪼록 미얀마에 빨리 민주주의의 봄이 다시 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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