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돈 Sep 15. 2020

노어 산책

이른바 명문대 합격자 중에도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등한시했으니 대학에 와서는 한번 열심히 공부해 보자’ 마음먹는 사람이 있나 보다. ‘노문과’에 입학하게 된 어떤 학생이 입학 전 크게 마음을 먹고 시내 대형서점에 나가 어렵게 ‘노르웨이어책’을 구해 선행학습을 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입학 후 계속되는 러시아어 수업에 당황을 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여하튼 들은 얘기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동료 아나운서 김 모 씨도 대학 입학 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러시아어를 미리 익히기 위해 대형서점에 가서 러시아어 책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서점 직원이 안내해 준 곳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러시아어 책이 없더라나? 알고 보니 점원이 안내한 곳은 교통 관련 서적이 있는 곳이었고, 점원은 ‘러시아워’와 관련한 책이 있는 곳을 알려준 것이었다는..
 
러시아어에 대해 들은 얘기 한 가지 더! 딱히 표기체계가 없던 러시아에 글자를 구해 오기 위해 로마에 갔던 사람들이 로마자 활자를 가지고 오다가 술을 마신 뒤 취해서 죄다 땅에 떨어뜨린 것을 다시 주워가지고 오느라고 상하좌우가 마구 바뀐 뒤죽박죽 로마자가 결국 러시아 글자가 되었다는.. ‘이 그럴싸한 얘기가 맞느냐?’는 질문이 결국 인터넷에 오르기까지 했는데, 대답은 그게 ‘아니’라고.. 그리스 정교회 신부들이 글 없는 러시아 사람들을 어여삐 여겨 전도도 할 겸 그리스 문자를 전해 줬다는 것이 대략 정설이다.
 
냉전의 영향대로라면 아직도 적국의 이미지가 강하고, 사회주의적 관점에서라면 혁명의 결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바보스러운 느낌이 있는.. 여하튼 내 경우엔 딱히 가볼 일이 없을 것 같은, 그래서 딱히 시도조차 해 보지 않은 러시아의 말! 하지만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거장들의 걸작만큼은, '그래! 모르긴 몰라도 반드시 러시아어였어야 하지 않을까?' 원문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푸슈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도 애초에 러시아어로 쓰였기에 진정 온전한 '삶'의 '무게'를 갖게 된 것은 아닐지..
 
그러나 저러나 모교 응원가 중 명곡으로 꼽히는 ‘지야의 함성’ 원곡이 바로 러시아 민요를 대표하는 ‘카추샤’!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라스즈비딸리 야블루니 이 그루쉬      

빠쁠룰리 뚜마늬 나드 리꼬이             

븨하질라 나 베렉 카추샤                   

나 븨소끼 베렉 나 끄루또이               


사과꽃, 배꽃이 활짝 피어난 날

강가에는 물안개가 서려있네

카추샤는 언덕에 올랐네
높고 가파른 언덕으로


미군부대에서 복무하는 역전의 용사, 카투사(KATUSA) 말고, 아름다운 러시아 여인 카추샤는 언덕에 올라 조국을 지키기 위해 멀리 전장으로 떠난 연인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른다. 강가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사과꽃, 배꽃이 서럽게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날. 드라마 ‘모래시계’에 사용된 노래, ‘백학’도 역시 러시아 노래! '영어로 어떻게 부르느냐?'고 괜히 물어보지 마시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