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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Sep 15. 2020

태국에서는 태국어를

태국은 영어가 잘 통해서 좋다는 분들이 많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꽤 낫고 영국이나 미국보다는 좀(?) 못한? 실은 영어가 잘 통한다기보다 한국과 태국, 양국인의 재치가 뛰어난 게 아닐지? 영어 단어 몇 개가 서로 대화하고 있다는 신호 정도로나 사용될 뿐인 가운데 서로 애쓰고 있을 뿐이지 어느 한쪽 영어를 잘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러나 태국을 오가는 사람은 참 많은데 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람은 왜 이렇게도 보기 힘든 것일까? 태국 글자는 워낙 알아보기도 힘들고 개수가 많기도 하니, 태국으로 여행이나 잠깐씩 다녀오는 사람, 또 이제 학업은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란 사람들은 포기한다고 쳐도, 그럼 태국말은?
 
태국어가 좀 특이하기는 하다. 일단 남자가 배울 말과 여자가 배울 말이 약간 다르다. 각기 다른 두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일단 남자와 여자가 문장을 마무리할 때 쓰는 말이 다르다. 그래 봐야 기껏 한 글자 차이지만.. 이를테면 고마움을 표현할 때 남자는 ‘컵쿤캅’, 여자는 ‘컵쿤카’. 인칭대명사 ‘나’도 남자는 ‘폼’, 여자는 ‘(디)찬’이라고 해야 하니, 태국 여자가 하는 얘기를 한국 남자가 그대로 외워서 하면 웃을 일 참 많을 것!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 전세기 소화물 가운데 섞여있는 우리 사무실 동료들의 짐을 골라내기 위해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 공항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동행한 선수단의 많은 짐 가운데 간간이 섞여 나오는 아나운서들의 짐을 찾아내기는 무척 어렵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매우 지루했다.
 
“폼 풋 파사 타이 닛 노이 캅. (나는 태국어를 조금 할 줄 압니다.)”
 
주위의, 대화할 여유 정도는 있어 보이는 공항 관리와 얘기를 시작했다. 태국에 오기 전 한 달쯤 읽은 초급 태국어 회화책의 효과도 좀 볼 겸, 또 이왕 건드려 본 태국어를 익히기에 최적의 조건, 즉 원어민의 나라에 와서 원어민을 만난 김에 대뜸.. 그리고 한참 뒤
 
“그런데 태국에서 살았어요?” (이 얘긴 아마 영어로?)
 
물론 그런 적도 없거니와 이런 얘기를 들을 수준이 결코 아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태국어를 아주 잘하든지 전혀 못하든지 둘 중 하나의 경우만 숱하게 보아온 사람으로서는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여하튼 지금 난 태국어를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당시 한 달 정도의 노력을 통해 이 같은 찬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크고도 큰 보람이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든 말이 잘 통하는 나라라지만, 태국을 여행하다 보면 (시시껄렁한 작업용 문장 몇 개 외에는) 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대처할까 싶은 상황이 숱하게 있다. 못하는 영어 괜히 믿지 말고, 태국에 갈 거면 조금만 관심을 갖고 태국어를 한번 해 보자. 우선 국내외에서 태국어 석차가 순식간에 올라갈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태국여행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아울러 당신에게는 차별이 없으며 또 당신이 그리 사대적이지 않다는 귀중한 증거를 또 하나 갖게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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