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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Sep 15. 2020

독어 배울 때가 좋았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제2외국어의 대명사였던 독어의 위세는 사뭇 예전 같지 않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독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지금은 일어를 가르치고 계시다고 하니.. ‘선생님은 진정한 독일어(독어+일어) 선생님이 되셨군요!’
 
그러나 유럽에 한번 다녀온 사람은 독어의 쓰임에 새삼 놀란다. 어디를 둘러보고 오느냐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생각보다 독어 쓰는 사람이 많고, 생각보다 불어 쓰는 사람이 좀 적은 듯하다는..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국어로 쓰이며, 또 동유럽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독일어! 십수 년 전, 영어는 못하고 독어는 할 줄 안다고 해서 결국 나와 독일어로 실랑이했던 체코의 입국관리가 갑자기 떠오른다.
 
독일 사람들은 대체로 영어를 잘해서 독일에서는 독어를 좀 할 줄 알아도 영어만큼 잘하지 않으면 그냥 영어를 하는 게 낫긴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동양 사람이 갑자기 예상치 않게 독일어로 얘기를 걸어오면 독일 사람들은 매우 놀라며 또 상상 이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차마 옮겨 적기 민망한 수준의 독일어 비문으로 전철역에서 길을 물었는데,
 
“Du sprichst sehr gut Deutsch! (너 독일어 정말 잘한다!)”
 
대뜸 반색을 하며 전화번호부보다 훨씬 더 두꺼운 전철 운행 시간표를 사무실에서 들고 나와 매우 쉬운 독일어로 자세히 길안내를 해 주시고는 전철을 타고 떠나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셨던 베를린의 어느 역무원 할아버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독일에 장기체류하는 동안에도 이와 같은 효과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식당에서 서비스를 받고 팁을 줄 때의 효과와 유사한.. 물론 팁을 줘야 하는 곳에서는 팁도 꼭 줘야 하겠지만..
 
예외가 거의 없이 매우 규칙적인, 그래서 너무도 예측 가능한 언어! 영어와 같은 어족에 속해 있어 영어를 좀 할 줄 안다면 한국 사람이 일어 배우는 심정으로 좀 더 쉽게 접근해 볼 수도 있는 말! 우리 이모가 청춘을 바쳐 간호사로 일했던 나라의 말이기도 하고..
 
Am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Ich träumt in seinem Schatten
So manchen süßen Traum.
Ich schnitt in seine Rinde
So manches liebe Wort;
Es zog in Freud’ und Leide
Zu ihm mich immer fort.
 
독어는 한마디도.. 하지만 독일 가곡이라면 원어로 몇 곡쯤은 부를 줄 아시는 우리 부모님! 독일어 생각과 함께 ‘옛날 교육이 훨씬 여유 있고 멋스러웠다’는 생각이 새삼..
 
‘지금은 일어를 가르치는 독일어 선생님께서 칠판에 독일어 노래 가사를 적어주실 날이 다시는 오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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