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때 제2외국어의 대명사였던 독어의 위세는 사뭇 예전 같지 않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독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지금은 일어를 가르치고 계시다고 하니.. ‘선생님은 진정한 독일어(독어+일어) 선생님이 되셨군요!’
그러나 유럽에 한번 다녀온 사람은 독어의 쓰임에 새삼 놀란다. 어디를 둘러보고 오느냐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생각보다 독어 쓰는 사람이 많고, 생각보다 불어 쓰는 사람이 좀 적은 듯하다는..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국어로 쓰이며, 또 동유럽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독일어! 십수 년 전, 영어는 못하고 독어는 할 줄 안다고 해서 결국 나와 독일어로 실랑이했던 체코의 입국관리가 갑자기 떠오른다.
독일 사람들은 대체로 영어를 잘해서 독일에서는 독어를 좀 할 줄 알아도 영어만큼 잘하지 않으면 그냥 영어를 하는 게 낫긴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동양 사람이 갑자기 예상치 않게 독일어로 얘기를 걸어오면 독일 사람들은 매우 놀라며 또 상상 이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차마 옮겨 적기 민망한 수준의 독일어 비문으로 전철역에서 길을 물었는데,
“Du sprichst sehr gut Deutsch! (너 독일어 정말 잘한다!)”
대뜸 반색을 하며 전화번호부보다 훨씬 더 두꺼운 전철 운행 시간표를 사무실에서 들고 나와 매우 쉬운 독일어로 자세히 길안내를 해 주시고는 전철을 타고 떠나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셨던 베를린의 어느 역무원 할아버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독일에 장기체류하는 동안에도 이와 같은 효과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식당에서 서비스를 받고 팁을 줄 때의 효과와 유사한.. 물론 팁을 줘야 하는 곳에서는 팁도 꼭 줘야 하겠지만..
예외가 거의 없이 매우 규칙적인, 그래서 너무도 예측 가능한 언어! 영어와 같은 어족에 속해 있어 영어를 좀 할 줄 안다면 한국 사람이 일어 배우는 심정으로 좀 더 쉽게 접근해 볼 수도 있는 말! 우리 이모가 청춘을 바쳐 간호사로 일했던 나라의 말이기도 하고..
Am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Ich träumt in seinem Schatten
So manchen süßen Traum.
Ich schnitt in seine Rinde
So manches liebe Wort;
Es zog in Freud’ und Leide
Zu ihm mich immer fort.
독어는 한마디도.. 하지만 독일 가곡이라면 원어로 몇 곡쯤은 부를 줄 아시는 우리 부모님! 독일어 생각과 함께 ‘옛날 교육이 훨씬 여유 있고 멋스러웠다’는 생각이 새삼..
‘지금은 일어를 가르치는 독일어 선생님께서 칠판에 독일어 노래 가사를 적어주실 날이 다시는 오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