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교회
어릴 때 친구들 데리고 교회에 가겠다고 하면 신앙을 갖지 않은 가정에서도 교회가 하는 일이니 좋은 일일 거라는 얘기를 흔히들 하곤 했다. 그러나 요즈음 교회가 무슨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여하튼 앞뒤 가리지 말고 하여튼 많이 오라는 얘기는 여전하지만..
반상의 차별과 남녀의 차별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사회변혁의 주체였으며, 선진문물과 함께 전래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방면에서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게 했던, 은혜로운 종교. 작은 교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누구보다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자랑스러운 기록이 있는가 하면, 신사 참배에 동원돼 집단적으로 민족과 신앙을 저버린, 어두운 과거가 혼재해 있는 우리의 기독교 역사.
태어나기 전 일은 차치하고, 나름 반백년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 갖게 된 생각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교회가 이 나라 현실에 잘 맞는 일이나 그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다니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기껏 술, 담배 하는 일에 거리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정도가 아닐지.. 욕심에 있어서는 하나도 다를 게 없고..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가 만사 제쳐놓고 몰두하고 있는 것은 이를테면 반동성애 운동이다. 성경이 동성애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가 매우 분명하니 그 근거를 모른다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이제 와 새삼 실정법을 뛰어넘어 특정 종교의 규범을 마음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율법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해도 왜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굳이 동성애만 이렇게 붙잡고 늘어지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가증하다고 하신 일이 단지 동성애뿐만이 아닌데..
해묵은 차별을 넘어서는 데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던 종교가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법안을 목숨 걸고 반대하는 특이한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동성애만큼은 기어코 막아야 하는데 동성애를 반대하는 얘기를 하면 그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 거의 유일한 이유다.
성경이 문제 삼는 것을 문제 삼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도한 해석이나 맥락 없는 접근, 경우 없는 방법으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라고 본다. 정죄가 아니라 진정한 안타까움에서 이 모든 일이 비롯되었더라면, 추상적인 논리나 생각보다 현실 속에서 실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가 받아들여졌더라면, 교세가 아니라 진정 진리의 힘에 의지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더라면, 적어도 교회가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데.. 이른바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행태를 앞뒤 따지지 않고 그냥 답습하는 것 같다는 느낌 또한 그리 좋을 게 없고..
자꾸 이런 문제만 갖고 지혜 없이 패착을 반복해 두면 우리 교회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사실만 더욱 분명해지고 말 것이다. 애초에 믿음과 인내심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많은 성도들이 진작 떠났을 일이다. 안 그래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선을 죽 그어 버리고 말았지만.. 이 일과 또 이런 일들 밖에는 이 나라 교회가 해야 할 일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사실상 이 일에 난데없이 사활을 걸고 있지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이웃을 섬기기는커녕 ‘감히 우리 말을 듣지 않느냐?’며 으르렁거리는 교회. 더 많은 영혼 구원 때문이 아니라 소수자로 억압 받지 않으려고, 또 결국 소수자 억압에 이렇게 앞장을 서려고 다수가 되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는지..
일찍이 ‘'교회'가 영어로 'phobia'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제목이 맞아떨어지는 글이 그냥 딱 한 편에 그치면 참 좋겠는데, 이후로도 자꾸만 반복해 이 문구가 떠오르는 것은..
하나님으로 포장만 되어 있을 뿐 실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교회, 교회의 크기와 그 안의 안락함만 탐닉하며 사는 자들은 때가 이르매 속히 무너질 것이다. 초자연적 섭리가 필요할 것도 없다. 상식을 가진 사람 가운데 과연 누가 무익하거나 해로운 일에 새로운 열심을 더하겠는가?
부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