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여름에 중등부 학생들의 교회 생활이 좀 더 힘차고 활기차면 좋겠다는 장경철 (현 서울여대 교목실장) 당시 전도사님의 뜻에 따라 여름 수련회 주제가였던 '가서 제자 삼으라'에 고대(와 연대의) 응원 동작을 가져다 쓴 게 시작이었다. 고대 신입생으로 한껏 신이 나 있던 나를 하나님은 그렇게 쓰셨지.
겨울 수련회 주제가는 '호산나'였다. 고대 응원가에서 또 동작을 따다가 율동을 만들었다. '호산나! 호산나!' 할 때는 '젊은 그대'의 '보석보다 찬란한 무지개가 살고 있는' 할 때 동작, '호산나 눞은 곳에서'는 위아래로 큰 원을 그리는 '젊은 그대' 마무리 동작, '주의 이름 높여 다 찬양하라'는 '석탑'의 '은은한 너의 모습! 은은한 너의 모습!', '귀하신 주 나의 하나님'은 '무인도'의 '솟아라 태양아' 등..
찬양을 고대 응원가 풍으로 몇 달을 부르니 학생들이 좀 더 활기차면 좋겠다던 애초 취지는 확실히 그리고 충분히 살릴 수 있었고, 여기에 또 난데없이 중학생들이 고대생스러워지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열심이 차고 넘친 아이들이 다른 교회 집회까지 찾아다니며 은혜를 받고 누리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뜨거웠던 곳 중 하나가 온누리교회 '목요 경배와 찬양'. 한동안 거의 매주 단체로 이 집회에 참여해 넘치는 은혜를 받곤 하였다.
그런데 상상치 않게 고대생스러워진 아이들은 집회가 끝났는데도 그냥 돌아가지 않고 특유의 방법으로 여운을 이어가며 앉았던 자리에서 일종의 뒤풀이를.. 이때 율동과 함께 여느 곡보다 신나게 부르고 또 불렀던 것이 바로 ‘호산나’였다. 귀가하던 사람들도 재미있어 보이니까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함께 따라 하기도 한 것이 결국은 전국으로 퍼져 ‘호산나’ 공식 율동이 되고 만 것이다. 다만 사람들의 보는 눈과 따라 하는 손발이 나와 달리 매우 신성하여서 이 율동이 다른 교회에 전해질 때는 응원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이 아주 거룩한 느낌으로..
좌충우돌했던 청년기의 어느 날 육과 영에 썩 좋지 않은 것을 손에 들고 청량리역 앞을 지나는데 노방전도를 하는 사역자들이 찬양과 함께 적잖이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나름 은혜를 끼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기요. 제가 이 율동 만든 사람인데요.”
이 말을 했으면 믿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