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가족들이 온통 부산경남 출신인 아내는 '우리 아이들이 둘 다 롯데 팬이 돼 준 게 무엇보다 신통하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각기 원하는 대학에 가서 척척 잘 붙어 준 것보다 훨씬 더 대견하게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고..
애들 아버지는 비광주전남 출신의 해태 팬이었고, 기아 타이거즈로 바뀌면서부터는 야구에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았다는 게 맞을 듯하다. 그러다 보니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애들이 아빠를 따라간다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이고 결국은 열성적인 외가의 영향을 받아 롯데 팬이 되기를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아무 상관없이.. 거의 매 시즌 그 모진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대학에서 첫 학기를 마친 아들은 친구들과 부산에 가서 2박 3일 동안 롯데 경기 두 경기를 직관하고 돌아왔다. 그 뒤에도 수도권에서 롯데 경기만 있으면 거의 대부분 경기장에 다녀오는 듯하다. 자기가 가서 직접 보는 경기의 승률이 매우 높아졌다며 마구 으쓱대기도 하고..
스포츠를 제대로 즐기려고 할 때 '어느 편이 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필수 선결 요소다. 정체성의 진공상태는 없다. 이 판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다. 애써 따져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걸 골라 잡기보다 훨씬 운명적인 것을 인식하고 적극 택하여 받아들이는 엄숙한 과정이다.
스포츠는 정체성이다. 그 흐름, 맥락 속에 스포츠가 살고 팬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