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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May 24. 2021

나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출장은..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충분히 준비해서 자신 있게 간 적은 사실 단 한 번도 없다. 충분히 준비한다는 게 워낙 불가능하기도 하겠지만, 현실이 뒷받침되지 못할 때가 의외로 많다.


올림픽 중계방송에 처음 참여한 것은 1996년 애틀랜타. 입사 3년을 맞은 젊은이의 이름이 애초부터 출장자 명단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대회 직전 깜짝 발탁돼 대한민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20대 올림픽 중계방송 앵커가 된 것. 당시 아나운서실에 인터넷 되는 컴퓨터가 딱 한 대 있었는데 올림픽 홈페이지란 곳에 들어가 보고 '이걸 다 내려받아 인쇄해 가면 되겠다'는 야심찬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안 그래도 느려 터진 모뎀이 연결된 전화가 와서 받으면 끊어지기까지.. 그래서 결국 어느 한 부분도 제대로 정리를 할 수 없었다는.. 현지 가서 쓰겠다고 호기롭게 개인 노트북을 사기도 했으나 다른 짐이 너무 무거워 미국에는 가져가지도 못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앵커 자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종목 배정을 받았다. 직전 몇년 동안 제대로 된 중계 배당을 거의 받지 못했던 터라 ‘중계 바닥에서 이렇게 사라지게 되나 보다!’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올림픽이라니.. 대회가 임박한 어느 날 중계방송단 발대식이란 자리에서 내가 중계할 종목을 처음 들어 알게 되었는데, 이 같은 상황이면 과연 누구인들 충분한 준비가 가능했을까? ‘핸드볼은 몇 명이?’ 아테네 가는 길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연결편을 기다리는데, 바로 1~2m 앞에 2001년 국제핸드볼연맹 올해의 선수,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윤경신 선수가 그렇게 오랫동안 앞에 앉아 있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고 좀처럼 말도 걸지 못했던.. 그러나 결국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첫 탁구 중계를 하던 날엔 사실 그날 아침까지도 내가 탁구 중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날을 다시 떠올리자니, 너무도 중요한 일에 갑자기 등 떠밀려 나간 느낌이 너무나 커서 지금도 얼떨떨할 정도다. 카타르 사람들이 석유 팔아 번 돈으로 다른 대륙에서 데려다 썼던 백인 여자 현장 책임자가 지독히도 떽떽거리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탁구 경기장. 이 와중에 천하의 안재형 해설위원께서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자상하게 돌봐 주시었고, 어린 시절 아버지 또는 친구들과 허구한 날 탁구장 들락거렸던 가닥 덕택에 나름 무난하게 감당을 해낼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이 계기가 되었달까? 다음 대회였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가장 자주 가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 바로 탁구 경기장.


2012년에는 파업이 있었다. 파업기간 중 사측은 파업 참가자 중엔 누구도 런던올림픽 현장에 가지 못할 것이라며 기회만 있으면 협박을 일삼곤 하였다. 올림픽 전에 파업은 끝났지만, 파업에 참가했던 나는, 사측의 협박이 아무리 부당노동행위라 하나, '이번엔 가지 못하는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중계 준비를 떠올릴 이유는 전혀 없었던 상황. 그런데 공중파 3사가 모처럼 종목별로 중계를 나눈 결과, 우리 회사는 펜싱을 뽑았고, 우리 회사에 펜싱 중계를 해 온 아나운서는 나밖에 없었다는 사실. 따라서 KBS, MBC를 통틀어 파업에 참가했던 아나운서 가운데 나는 유일하게 런던에 가게 되었고, 당연히 준비는 부족했지만, 신아람 선수가 당했던 비극적인 일과 대한민국 펜싱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할 수 있었던 것.


돌이켜 보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도 런던과 비슷한 사례. 크게 다른 점은 파업이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중계방송에 투입된 아나운서들이 모두 파업 참가자였다는 사실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길었던 파업. 파업 후 2주 남짓 준비해 이처럼 큰 대회를 치른다는 것, 그것도 성공적으로 치른다는 것은 사실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정말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긴 시간, 많은 준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 준 평창 동계올림픽. 전형적인 많은 준비보다 바른 사람들이 기가 사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객관적 증거가 바로 돼 주었다.


큰 대회를 또 앞두고 있다. 게으름은 늘 반성해야 하지만, 경험이 주는 분명한 교훈을 손에 꼭 쥐고 적어도 조바심만큼은 내지 않으려고 한다. 언젠가, 주어진 방송시간 동안 그냥 다 읽지도 못할 것 같은, 너무도 많은 양의 자료를 지극히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는 후배에게 애정 어린 이야기를 한 마디 해 주었다.


"자료에만 너무 집착하면, 정작 현장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집중할 것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중요한 걸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 자료는 철저히 몰입을 위한 도구로.."


공부하기 위해 산다기보다 잘 살기 위해 공부한다. 공부 말고도, 그 흔한 준비 말고도, 중요한 게 또 있나 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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