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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May 05. 2022

체육대회를 지켜서 교회를 지키고 싶었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하는 형제자매들을 떠올리면서..

사명을 지키면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대만선교 접수창구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 숫자가 적어도 줄지는 않았다.    

 

20,000명이었던 교인이 1년 동안 줄어서 16,000명이 되었다. 주일예배 출석자수가 20,000명일 때 10,000명이 참여하던 전교인 체육대회. 산술적으로는 2,000명이 줄어 마땅한 상황이 되었고, 저조한 분위기 속 어디에서도 비관적 전망을 만회할 요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체육대회 참여자 계수는 다른 계수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 참여자 숫자에 따라 청소용역비를 지불하기 때문에 우리가 세고 관리자 측에서 또 센다. 어려움 가운데 맞은 첫 체육대회. 교인은 줄었지만 놀랍게도 체육대회 참여자는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보다 훨씬 많이 모인 가운데 애틋한 마음이 더욱 도드라졌다.    

  

'있을 사람은 다 있다!'   


이 자체로 선교가 된다든지 크나큰 갱신과 회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교회가 유지되고 지켜질 것이라는 소망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또 1년이 지나고 주일 출석 성도는 2,000명가량 더 줄었다. 가장 많았을 때의 20,000명을 기준으로 하면 6,000명이 줄어든 것이다. 낙관의 근거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저 믿음으로 또 준비를 했다.   

  

체육대회 참여자수가 과연 줄어들었다. 그러나 감소폭이 1,000명을 넘지 않았다. 불과 몇백 명 수준. 이듬해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체육대회에 이르기까지 체육대회 참여자수는 고난중임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 초막을 지으라 한지라 ..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느헤미야 8:14~17)

    

모세의 율법은 먹고살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때를 따라 모이고 절기를 지킬 것을 요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절기를 통해 때마다 큰 은혜를 주시었고.. 그러나 유대 민족에게 결국 위기가 닥친 것은 절기에 따라 모여 교제하고 말씀을 나누지 않은 탓이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웠다가 그 나라가 다 망한 뒤 70년 포로생활을 하고 남은 사람들이 겨우 본향으로 돌아오기까지 그 장구한 세월에..     


전교인 체육대회는 없어졌다. 진별로 나눠서 했다고 하기는 한다. 그런데 진별 체육대회는 전교인 체육대회를 하면 선수선발을 겸해서 안 그래도 하던 것이다. 새로 온 교역자들만 그 사실을 모를 뿐.


내년 혹은 후년에 다시 하겠다고 한다. 아마 잘 안 될 것이다. 갈수록 체육대회의 은혜를 알고 또 경험해 본 사람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또 이번에 경험해 봐서 아시겠지만, 그저 하겠다고만 하면 그냥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체육대회날 우리 교회의 체육대회 진행 노하우를 보러 오는 사람이 이단, 사이비 포함 수십 팀 있었다. 그런데 우리 다음 세대는 교회에서 한 때 대단히 큰 체육대회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고 신기해할지도 모르겠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열왕기하 22:8)     


'와!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단다! 그것도 대제사장씩이나 되는 분이 이제서야..'




"체육대회가 왜 필요한가?“   

 

무식해서 하는 소리다. 인류 최대 행사가 바로 체육행사, 일종의 체육대회다.


명목만 체육대회로 해놓고 부서별로 밥이나 먹고 술이나 마시다 헤어져서 문제지, 우리나라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에서 정기적으로 체육대회를 벌일 것을 법으로 정해 놓고 있기까지 하다.


기독교 신앙인의 관점으로 볼 때 올림픽과 같은 행사가 갖는 이방종교적 요소나 인본주의적 요소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겠으나, 올림픽 기간 중 멈추었던 전쟁, 세계대전 중에도 전장의 총성을 잠시나마 멈추게 했던 축구의 힘 같은 것을 생각해 볼 때 체육 혹은 스포츠의 힘과 효용은 결단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2-14)     


체육을 보조관념으로 삼은 사도 바울의 비유는 얼마나 명쾌하고 힘이 있는가? 흔히 '인생의 축소판'으로 불리곤 하는 여러 경기를 통해 우리는 농축된 삶의 경험을 한결 진지하게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린도전서 9:24-25)     


과열된 경쟁의 폐해도 있지만 모든 경기는 기본적으로 과정을 통해 절제를 배우는 장이다. 이와 같은 절제 가운데 승리를 목표로 최선을 다한다는..   


그런데 잘 어울려 지내던 사람들이 체육대회 같은 걸 통해 원수로 갈라서기도 하지 않는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7-8)     


사도 바울은 자기 혼자 면류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가 면류관을 받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믿는 자의 경쟁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일 수 없다. 따라서 성숙한 신앙인끼리의 일이라면 걱정할 것이 없는 게 마땅하리라.

   

매우 치열한 경쟁이 반드시 큰 문제로 비화되는 것도 아니다. 고대와 연대가 만나면 서로 정말 죽일 듯이 싸우지만, 이 모든 것이 실은 다 참 재미있는 일이고, 또 결과적으로 고대에게 연대만큼 살가운 학교가 없고 연대에게 고대만큼 정겨운 학교가 없다는 사실. 복잡한 설명이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참 좋다는 것.


온갖 근대 스포츠의 발상지 영국에서는 'sport'라는 말을 '운동경기'를 가리킬 때도 쓰지만 '(함께 운동경기를 즐기는) 좋은 친구'를 지칭할 때도 쓴다. '매너 있게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멋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다들 체육대회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모두 함께 멋진 'sport'가 될 수 있기를..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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