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쯤 해서 가까운 곳에 다녀온다면 현지에서 대략 예닐곱 끼 정도 식사를 하게 된다. 이 와중에 선택의 여지가 적은, 또 거르기도 쉬운 아침 식사가 두 번씩이나 되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길을 떠나기 전 수십 군데 맛집이 소개된 두꺼운 책을 여러 권 훑고 또 훑고.. 정성이 갸륵하고 열심이 대단하긴 하지만, 가기도 전에 진이 쏙 빠지고, 또 다녀와서는 결국 먹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도 크게 남는 부작용이 있다.
그랑플라스가 내려다 보이는 숙소에서 딱 하룻밤 자고 나오는 것만 대충 목표로 삼았더니 브뤼셀에서 맞은 1박2일의 짧은 시간이 오히려 얼마나 여유 있고 풍성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정말 밤낮 호텔방에서 그랑플라스만 내려다보다 온 것도 아니고.. 못 가 봐서 아쉬운 곳, 못 해 봐서 안타까운 일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만, 휴식과 충전이라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완벽한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통해 여러 곳을 다녀 보는 것은 참으로 큰 즐거움이지만, 다녀본 곳의 숫자만 무작정 늘리려는 탐욕 가득한 접근은 오히려 여행자를 피곤하게 만들 뿐, 득은커녕 독이 되기 십상이다.
여유를 갖자. 서울에서 반세기 남짓 살았지만, 내가 서울의 어지간한 곳을 죄다 가 보고 사는지.. 서울 구경은 오히려 타지 사람들 몫이 아니던가? 이제는 여행을 해도 좀 더 현지인 생활에 가까운 여행을 해야 할 때라고 하는데..
아내와 함께 갔던 교토에서 늦잠 실컷 자고 적당히 한두 군데 산책하듯 걷다가 눈에 띄는 맛있는 것 실컷 사 먹고 돌아왔던, 몸살 걸렸던 아내가 오히려 완전히 회복되어 돌아왔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