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상문고 현수막은 분명 너무 크다! 그러나 우리의 능력과 가능성에 비하면 한없이 작기만 하다!
* 조별예선 3조 3차전 상문 2:0 한마음 축구센터
마지막 경기에서 0:2로 패배. 똑같이 2승1패를 기록한 팀이 같은 조에 세 팀. 첫 두 경기를 이겼음에도 불구, 하마터면 탈락할 뻔도.. 한마음축구센터와 승점, 득실이 같고 다득점에서 앞섰으나 대회규정이 (이상하게도) 다득점을 따지지 않고 추첨으로 순위를 가리게 돼 있어 추첨을 통해 (억울하게) 조2위가 되어 이후 좀 더 강할 것 같은 팀들과 경기하게 됨. 후반 추가시간 그 한 골만 허용하지 않았어도..
2019년 경남 고성에서 열린 청룡기 고교축구 조별예선에서 우리 상문고는 첫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조별예선 통과를 일찌감치 확정한 줄 알았다. 세번째 상대는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없는 한마음 축구센터라는 팀이었는데 여러 정황으로 보아 쉽게 이길 줄 알았지만 의외로 0:2 패배,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대회규정에 따라 조2위가 되면서 16강 직행을 하지 못하여 28강을 거쳐 가야 했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진을 감수해야 했기에 홍시후가 뛰던 가장 좋은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6강전에서 보인이라는 큰 산을 만나 0:2로 패하며 기대했던 것보다 일찍 대회를 마치게 된다.
3년이 지나 경남 남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금배 고교축구 조별예선. 앞선 두 경기를 모두 2:0으로 이긴 상문고 축구부가 또다시 한마음 축구센터를 만났다. 한마음은 1승1무를 기록했고 우리와의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2위를 확보해 조별예선 통과가 가능한 상황. 동시에 열린 같은 조 다른 두 팀의 경기에서는 아주 낮은 가능성을 꼭 붙잡은 3위 팀이 7:3으로 승리를 거두고 한마음이 지기만을 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우리는 대체로 편안하지만, 되도록 조 1위를 지키는 가운데 모멘텀도 유지하고 구원도 씻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경기. 결국 종료 직전 추가골까지 더해 2:0으로 승리(세 경기 연속)하며 조1위로 당당하게 조별예선을 통과했다. 한마음은 결국 예선 탈락.
이제 위현범 코치가 또 한 번 대진 추첨의 마술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그의 왼손!
* 16강전 상문 2:1 중동
상문고 축구부 창단 첫해였던 2010년 우리 상문고는 서울동부권역에서 18전 18패 4득점 242실점을 기록하며 당연히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시즌 중반 중위권 팀들의 순위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상문을 상대로 20점 이상 다득점을 기록하는 팀들이 속속 생겨났다. 2010년 6월 9일은 상문고등학교가 사상 가장 큰 패배를 당한 날이다. 중동고등학교를 상대로 한 0:28 패배. 나의 대학 선배인 당시 중동고 감독은 나중에 내게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고..
12년이 지나 오늘 대통령금배 16강전에서 상문과 중동이 또 만났다. 전반 6분, 흔히 볼 수 없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 골키퍼의 반칙으로 중동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다행히 이 페널티킥은 골키퍼가 막았다. 그러나 뒤이어 달려들어오는 공격수가 튀어나온 공을 기어이 골문 안에 집어넣고야 말았다. 이번 대회 첫 실점. 초장에 흐름이 꼬였다. 하지만 우리 후배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 나갔다. 결국 전반 31분 박종현의 동점골, 후반 8분 김준용의 프리킥 역전골이 연이어 터져나오면서 상문고등학교는 역전승을 거두고 8강 진출을 확정해 낸다. 두 골 다 그림 같은 예술적인 골! 참으로 멋진 승부! 지난 금석배에 이어 두 대회 연속 8강! 팀 사상 여섯번째 전국대회 8강 진출!
중동 출신 축구인, 선후배 얼굴이 여럿 떠오른다. 상문이 짧은 시간 빠르게 많이 성장했다.
* 8강전 상문 : 보인
2010년 상문고에 축구부가 만들어진 것은 바뀐 정권의 새로운 정책에 부응한 대한축구협회의 새 사업 덕/탓이다. ‘공부하는 학생선수’ 시범학교를 지정해 거액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이었는데 사업 취지에 크게 공감한 당시 관선 이사장께서 전후 사정, 앞뒤 맥락을 크게 따지지 않고 다짜고짜 이 사업에 지원한 것이 느닷없는 축구부 창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선수 선발은 단순하게, 조회 혹은 종례 시간에 해 보겠다고 손 든 아이들로..
기존 팀 가운데 제시된 조건을 가장 잘 맞춰내는 팀이 지원을 받게 될 줄 알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한 지원대상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새 정책에 그야말로 딱 맞춘 팀이 난데없이 창단을 하겠다는 데야.. 한동안은 내가 상문 출신인 걸 알면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일이 적잖이 있기도 했다. 잠시 기대했던 거액의 지원금을 결국 상문 때문에 받지 못하게 됐다고 하는 이 학교는 바로 보인고등학교다.
창단팀 상문고등학교의 사상 첫 공식 경기 상대는 얄궂게도 보인고등학교였다. 2010년 3월 6일 펼쳐진 고교축구리그 서울동부권역 시즌 첫 경기에서 보인은 신생팀 상문을 상대로 가볍게 5:0 승리를 거둔다. 5월 14일 리턴매치에서는 16:0으로 더 크게 이겼고.. 이듬해에도 두 팀은 같은 권역에 속해 역시 두 경기를 치렀는데 두 경기 모두 보인이 10:0으로 승리를 거뒀다.
상문고 축구부는 보인을 이긴 적이 없다. 비겨 본 적도 없다. 계속 졌다. 서울시 대회 준우승도 차지해 보고 왕중왕전에도 몇차례 진출한 데다가 자그마치 프로 산하 팀을 이겨 본 적도 있지만, 여태껏 보인은 단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올시즌 전반기 주말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도, 홈경기였음에도 불구, 2:6으로 졌다. 그야말로 큰 벽이다. 솔직히 수준이 다르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이긴다. 그게 축구다. 상문고등학교가 초고교팀 보인을 처음으로 이기고 팀 사상 처음으로 전국대회 4강에 진출한다.”
이렇게 쓰고 싶었다.
잘 질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이길 일보다 질 일이 많은 세상이다. 질 때마다 극도로 좌절하고 포기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멀쩡하게 살 수 있을까?
지는 내가 아무리 싫어도 나는 나다. 받아들이기 싫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더욱 철저히 내가 되는 과정.
The winner takes it all. 승자독식의 세상. 패자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사람 세상의 원리는 여기까지.. 그런데 만약 천부인권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래도 이길 희망을 두루 소중하게 간직하는 일일 것이다.
모두 가치 있는 귀한 인생이다. 아무리 가슴이 아플지라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한 해에 전국대회 8강에 두 번 진출한 건 팀 사상 처음입니다. 모두 찬란히 피어났고 또 더욱 찬란하게 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