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축구 현장에서 겪은, 오래전 일, 근래 일
A, B, C, D 네 팀이 한 조에 속해 경기를 벌인다. A와 B가 경기를 하고 C와 D가 경기를 해서 A, C가 이겼다고 하자. 각조 2위까지 조별 예선을 통과한다고 할 때 풀리그의 경우 1패를 안은 B, D가 일찌감치 대회를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남은 두 경기의 성적이 좋으면 조별 예선을 능히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링크제’라는 흔치 않은 제도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링크제는 일종의 불완전한 리그다. 리그 뒷부분을 일정하게 쳐내고 앞부분의 경기 결과만으로 전체 성적을 갈음하는 특이한 제도다. 한 조에서 네 팀이 경기를 벌인다고 할 때 제대로 된 리그라면 각 팀이 세 경기씩 치르는 게 맞겠지만, 각기 두 경기씩만 치르고 그 결과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꽤 오래전 어느 고등학교 축구대회를 통해 나는 이 링크제라는 단어를 처음 듣게 되었다. 전문가에 문의를 해 보았더니 일본에서 많이 사용되는 제도란다. 일본 학원 축구의 경우 출전팀이 너무 많아 현실적으로 풀리그가 불가능한 일이 많을 수도.. 링크제는 이 같은 경우에 불가피하게 시행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궁여지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직접 목도한 링크제의 실상은 이랬다. 1차전에서 승리한 A, C가 2차전에서 각각 D, B와 맞붙게 된다. 모두 그냥 최선을 다하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원칙과 많이 다르다. D와 B는 이미 1패를 기록함으로써 사실상 조별리그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 동업자 정신을 가진 D와 B는 여전히 예선 통과 가능성이 있는 상대팀의 앞길을 애써 가로막지 않기 위해 건성건성 져 주는 경기를 하기 십상이다. 만약 각조 1위만 토너먼트에 진출한다면, D와 B는 ‘더 크게 져 주기’ 경쟁을 하기까지 한다. 혹 두 경기가 동시에 벌어지지 않고 순차적으로 벌어진다면, 뒷 경기 승자가 반드시 조 1위가 된다. 왜냐하면 뒷 경기 1패팀은 괜한 원망을 사지 않기 위해 앞 경기 1패팀이 져 준 것보다 반드시 더 크게 져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팀의 첫 경기 결과와 이후 경기 시간표만 보면 조별리그 전체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불완전한 링크제 말고 완전한 풀리그를 벌이면 될 일이다. 감당할 수 없이 많은 팀이 출전하는 게 아닌 이상 링크제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가만 보면 일부주최측의 공연한 집착일 뿐이다. 거기 말고 다른 데에는 링크제란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경기수를 줄여 대회 운영비나 좀 아껴 보려는 꼼수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축구대회는 일종의 수능이다. 지금 적은 건 꽤 오래전 경험이지만, 혹시 좋지 않은 흔적이 비슷하게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인생을 걸고 운동하는 청소년들 앞에서 어설픈 어른들이 되지 말자.
A: 강팀
B: 홈팀
C: 다른 팀
다른 두 팀을 죄다 5:0으로 이긴 강력한 우승후보 A가 약체와의 첫 경기에서 겨우 비긴 팀 B를 두 번째 경기에서 만나 놀랍게도 0:1로 진다. 쉽게 탈락할 것 같던 팀 B는 1승1무가 되어 다음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조별예선을 통과할 수 있게 되었고..
우승후보를 극적으로 이겼다는 팀 B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전반전에 절반의 점유율을 쉽게 가져가지 못한다. 이 와중에 의욕적인 건지, 믿는 게 있는 건지 태도는 매우 거칠다. 전반 종반에 접어들 즈음 매우 위험한 플레이로 결국 B의 선수 한 명이 퇴장을 당한다. 퇴장 선수 탓에 너무도 큰 부상을 당한 상대팀 C의 주전 골키퍼는 결국 앰뷸런스로 후송되기까지.. 졸지에 골키퍼를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게다가 경기 진행에 불만을 토로한 C팀 감독은 순식간에 퇴장을 당하고 만다. 피해자가 당한 피해가 결과적으로 너무 커서 가해자 퇴장이 지극히 미미한 제재였다는 느낌마저..
요즘 다른 대회에서는 거의 다 하는 실시간 유튜브 중계를 이 대회 조별예선에서만큼은 하지 않았다. 우연이겠지만, 특정팀의 경기 내용이 제시간에 업데이트되지 않기도 했고..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기고 결국 조별예선을 통과한 팀 B는 대회개최지팀, 이른바 홈팀이었고, 발판이 되어준 팀 A는..
총 48개 출전팀 중 개최지역 팀은 모두 11팀. 이 중 조별예선을 통과해 24강에 오른 팀은 모두 8팀이다. 생존확률 73%. 그런데 24강에 올라간 8팀 중 16강까지 올라간 팀은 불과 4팀밖에 되지 않고, 8강에 올라간 팀은 결국 한 팀도 없었다. 안배의 여지가 전혀 없는 토너먼트의 결과를 놓고 볼 때 이 대회 조별예선 결과는 의심의 여지가 매우 크다고 볼 수밖에..
조별예선에서 딱 한 경기 진 팀 A는 결국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전국대회 세 대회 출전에 세 번 다 우승이다. 다른 팀들은 4강이나 8강 한 번 가 보는 게 목표이고 소원인데.. 그래서 이 모든 게 더 이상하다.